최근 지역의 작은도서관들이 공정무역을 배우고 체험하는 일상적 공간으로 자리 잡으며, 지역 기반의 공정무역실천기관으로 확산되고 있다.
공정무역실천기관은 공정무역 제품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교육과 캠페인을 통해 구성원들의 인식을 높이며, 전담 인력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공정무역운동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작은도서관은 시민들이 부담 없이 드나드는 생활문화 공간으로서, 판매 중심의 기존 공정무역 확산 방식과는 다른 접근을 제공한다. 이들 도서관은 교육·체험·전시를 결합해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공정무역의 가치를 접하도록 돕고 있으며, 공정무역은 이 공간을 통해 더 이상 낯선 이슈가 아니라 '일상의 실천'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지난 12월 4일 경기 광명시의 두 도서관을 직접 찾아 공정무역 실천의 현장을 들여다봤다.
[글빛누리작은도서관] 공정무역과의 만남, '배움'에서 '실천'으로

▲글빛누리작은도서관에 마련된 공정무역 전시존 ⓒ 글빛누리작은도서관
'글빛누리작은도서관'은 광명역 인근의 아파트 커뮤니티 공간에 있다. 윤은민 관장이 공정무역을 처음 접한 건 2021년 광명시 사회적경제 양성과정이었다. 이후 공정무역 활동가로 참여하며 관심이 깊어졌고, 광명시의 사회적경제와 공정무역 제품들을 직접 체험해 보고, 교육을 들으며 사회적경제와 공정무역에 대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시민 체험형 프로그램인 '오픈박스(Open Box)' 활동을 통해 실천 경험을 넓혔다.
이사를 하며 작은도서관이 없는 지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공간만 주어지면 도서관을 열겠다"는 결심으로 직접 도서관을 개관했다. 자연스럽게 공정무역 실천 활동도 도서관 운영 속에 녹아들었다.
"큰 뜻을 품고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제가 활동가이다 보니, 도서관에서도 공정무역을 해보고 싶었죠."
윤 관장의 말처럼, 도서관은 일상 속에서 꾸준히 공정무역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글빛누리작은도서관의 특징은 문턱이 낮다는 점이다. 판매처와 달리, 도서관은 누구나 자연스럽게 드나들 수 있는 지역의 생활 공간이다. 윤 관장은 "책을 읽으러 왔다가 공정무역을 접하게 되는 구조가 가장 의미 있다"고 강조한다.
도서관은 분기별로 전시 콘셉트를 바꾸어 공정무역 제품을 소개하고, 공정무역 관련 정보도 함께 제공한다. 작은 공간이지만 꾸준히 전시를 유지해 시민들의 일상에 공정무역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하고 있다. 매년 5월 '세계 공정무역의 날'과 공정무역 주간에 맞춰 ▲ 공정무역 초콜릿 여행 체험수업 ▲ 공정무역 도서 특별전 및 윤리적 소비 북큐레이션 ▲ 초등학생 대상 공정무역 미션 행사 등을 운영해왔다.
특히 도서관은 경기도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마을학교'로 선정돼, 공정무역을 교육 프로그램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 포함하고 있다. 성인 대상 프로그램뿐 아니라 지역 초등학교, 지역 내 도서관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공정무역 수업도 진행한다. 윤 관장은 "마을학교는 공정무역을 실천하기 좋은 구조"라며, 공정무역과 지역경제를 연결하는 안내자 역할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작은 실천이 만드는 변화
주민들의 인식 변화도 뚜렷하다. 초기에는 막연히 '공정한 무역'이라는 단어 뜻 정도로만 이해하던 주민들이 도서관 프로그램을 통해 생산지 이야기를 접하면서 점차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윤 관장은 "이런 변화를 볼 때 활동가로서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윤 관장은 앞으로 광명시의 여러 작은도서관이 함께 공정무역을 실천하길 기대한다. "각 도서관이 프로그램 하나라도 공정무역을 넣는다면 시민 접점은 훨씬 넓어질 거예요." 그의 바람처럼, 글빛누리작은도서관은 작은 실천들이 지역의 소비문화와 시민 인식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고 있다.
[넓은세상작은도서관] "공정무역을 몸으로 느끼는 곳, 관계를 회복하는 배움터"

▲넓은세상작은도서관에 마련된 공정무역필사존 ⓒ 넓은세상작은도서관
광명 하안주공 5단지에 위치한 '넓은세상작은도서관'은 지역사회에서 공정무역 가치를 실천하는 독특한 교육·공동체 공간으로 아파트 주민의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람을 우선하는 도서관'이라는 모토 아래, 이곳은 공정무역을 단순한 소비행위가 아닌 관계 회복과 공동체 회복의 가치로 바라본다. 활동가 대부분이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이 작은도서관은 공정무역을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실천"으로 인식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가치를 나누고 있다.
정인애 관장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공정무역은 착한 소비가 아니라, 사람을 사람답게 대우하자는 선언이에요. 이 가치를 아이들에게 알려주면 자연스럽게 타인과 지구를 배려하는 감수성이 생깁니다. 그게 도서관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넓은세상작은도서관의 공정무역 참여는 2019년 광명시 공정무역 교육이 시작점이었다. 이후 2020년 광명시가 공정무역도시 인증을 받으면서 활동은 더욱 적극적으로 확장됐다. 정 관장은 "내가 사는 지역을 행복하게 만드는 활동이 우리와 멀리 떨어진 나라의 삶까지 함께 살필 수 있다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며 "세계시민으로서 삶을 실천하는 마음으로 마을 행사와 프로그램마다 공정무역을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 결과, 지역에서 공정무역을 인지하는 주민이 꾸준히 늘고 있으며, 도서관은 공정무역 활동의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도서관이라는 '문턱 낮은 공간'을 활용해 초콜릿·커피 외에도 다양한 공정무역 물품을 소개하고, 연말에는 '이웃에게 편지쓰기 운동'을 진행해 따뜻한 메시지와 함께 공정무역 제품을 이웃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프로그램은 '공정무역 도서 필사' 활동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선정해 필사를 진행했으며, 현재도 진행 중인 이 프로젝트에는 지난 3개월간 34명의 지역 주민이 참여했다. 두 차례 필사에 참여한 주민에게는 공정무역 간식이 선물로 제공돼 호응을 얻었다. 또한, 도서관에서는 30~60대를 대상으로 공정무역 제품으로 구성한 브런치를 나누며 공정무역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시간도 마련했다.
정인애 관장은 "세계시민으로서 이웃 나라의 삶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런 마음으로 물품을 구입해 보면 어떨까 제안하면 대부분 기꺼이 함께하겠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도서관은 마을 사랑방 역할을 하며 ▲ 아나바다 장터 내 공정무역 홍보 ▲ 마을운동회 간식 꾸러미 공정무역 제품 활용 ▲ 공정무역 키링 만들기 ▲ 도서관 모임에서의 공정무역 커피 소비 등 다양한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정 관장은 "앞으로는 공정무역 생산지에 직접 방문하거나 생산자를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활동도 하고 싶다"며 "작은도서관이지만 사람과 사람을 잇고, 세계와 마을을 연결하는 역할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밝혔다.

▲<좋은 사람 소개해 줘서 고마워>는 공정무역을 직업으로 가진 남자와 여자의 만남과 공정무역 실천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다. ⓒ 넓은세상작은도서관
넓은세상작은도서관의 가장 큰 특징은 인문학과 예술을 결합한 접근이다. ▲ 공정무역 인형극 ▲ 마스코바도와 견과류를 활용한 공정무역 요리 ▲ 공정무역 독서모임 등 감각적이고 경험 중심의 프로그램이 꾸준히 진행된다.
지난해 미술동아리와 협업해 제작한 그림책 <좋은 사람 소개해 줘서 고마워>는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렇게 완성된 책에는 참여자들의 따뜻한 마음과 공정무역에 대한 진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작은도서관이 만드는 변화는 결코 작지 않다"
작은도서관이라는 생활 공간에서 공정무역이 실천되는 경험은 시민들의 가치관과 소비문화에 조용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정인애 관장은 "우리는 작은도서관이지만, 이곳을 이용하는 시민은 많다. 그들이 공정무역을 이해하고 존중하게 된다면, 마을도 아이들도 달라질 거라고 믿는다"라고 말한다.
글빛누리작은도서관 윤은민 관장 역시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작은 걸음이지만 계속 이어가면 결국 더 공정한 마을을 만들 수 있습니다."
두 도서관의 실천은 공정무역을 '판매 중심 활동'이나 '일회성 캠페인'에서 벗어나 시민의 생활문화로 확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들의 움직임은 앞으로 더 많은 작은도서관과 지역 공동체로 확산되며, 지역 사회에 가치소비와 실천을 이끌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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