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과학(SF·Science Fiction)은 지난 반세기 가장 극명하게 제 위상을 달리한 문학, 나아가 대중예술의 갈래다. 한때는 마니아층이 확고한 장르문학으로, 환상문학과의 경계에 자리했던 SF다. 설정만으로도 일탈적이며 자극적 재미를 선사하는 일련의 이야기가 오늘의 세상을 달리 보도록 하는 미덕까지 갖췄단 점에서 SF의 지지자들은 갈수록 두터워졌다.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C. 클라크, 필립 K. 딕과 같은 지난 시대 SF문학의 3대장은 발전한 현실세계 속 과학기술에 터 잡아 문학의 영토 안에서 SF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 지대하게 공헌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경제와 국방, 정치와 일상에 이르기까지 과학만큼 현격한 영향을 미친 학문은 없다 해도 좋을 정도가 아니었던가. 과학의 세기라 명명해도 좋을 이 시대의 혁명적 변화 가운데서 SF는 늘 지평선 너머의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육체와 좌뇌의 영역은 물론이고, 우뇌의 영역에서까지 인간을 극복했거나 곧 극복하리란 평을 듣는 AI다. 이세돌을 바둑계에서 격파한 알파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수백 년 이어진 바둑계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혁신하고는 바둑계를 떠나갔다. 이어서 체스계에 군림하던 슈퍼컴퓨터조차 연파하며 더 우월한 연산능력조차 패턴에 대한 이해며 알고리즘에 기반한 학습능력에 대항할 수 없음을 증명했다.
AI는 더는 기계라 불릴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어쩌면 인류는 스스로보다 못하지 않은 첫 지성을 이 행성 안에서 비로소 맞이하게 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에 이르러 돌아보면 지난 시대 SF문학의 3대장이 바라본 미래상은 얼마나 인류의 오늘에 닮아 있는가. 그중 상당수가 오늘의 현실정치과 시민들의 정신세계보다 뒤처져 있지는 않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책 표지 ⓒ 엘리
현존 SF문학의 정점에 있는 작가
오늘의 SF문학계에서 돋보이는 별 중 하나가 바로 테드 창이다. 드니 빌뇌브의 2017년 작 <컨택트>의 원작자로 유명하기도 한 그는 <당신 인생의 이야기> <숨> 등의 단편집을 통해 한국서도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당신 인생의 이야기>(2016년 10월 개정판 출간)는 1990년 테드 창의 존재를 알린 첫 단편 '바빌론의 탑'을 비롯, <컨택트>의 원작이 된 '네 인생의 이야기' 등 대표작이 여럿 포함된 명저로 평가된다. 이 시대 현존하는 SF작가의 작품집을 단 한 권만 추천한다면 앞뒤불문 이 책부터 내미는 이가 수두룩할 정도.
'바빌론의 탑'을 필두로, '이해', '영으로 나누면', '네 인생의 이야기', '일흔두 글자', '인류 과학의 진화', '지옥은 신의 부재',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까지 모두 여덟 편의 작품이 실린 작품집이다. 이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건 역시 작품집 제목과도 연결된 '네 인생의 이야기'일 테다. 이 작품은 이후 나온 작품집인 <숨>의 몇몇 작품과도 긴히 통하는 구석이 있다는 점에서 테드 창의 작품세계며 세계관을 얼마쯤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소설이기도 하다.
작품은 두 개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주인공은 여성 언어학자 루이즈 뱅크스로, 하나는 그녀가 아직 태어나기 전인 제 딸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며 다른 하나는 그녀가 외계에서 온 생명체에 대응하기 위한 전문가로 차출돼 겪는 일련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소설은 두 시점을 반복해 오가며 외계 생명체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그 언어를 배우는 루이즈의 이야기와 이 사건으로부터 한참 뒤 태어날 그녀의 딸의 인생서사까지를 풀어나간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이미 발표된 영화로도 유명한 이야기이겠지만, 루이즈가 제 딸의 탄생부터 아마도 죽음까지를 서술하는 것이 그녀가 그 모든 일을 겪은 뒤가 아니란 점이다. 일을 겪지 않은 상태에서 마치 모든 것을 겪은 뒤처럼 서술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모든 일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빚어지는 선형적 세계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테드 창이 착상하고 이 소설 안에 구현해 각광받은 것이 바로 이를 극복하는 작업이겠다.
테드 창에게서 철학자 니체를 본다
이해를 돕기 위해 두 개의 이야기를 더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마치 이 소설이 그러하듯, 때로 앎은 더 나은 이해를 도모하는 효과적 창구인 때문이다. 먼저 말할 것은 니체의 영원회귀 이론이다.
1989년 1월 3일,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아침 산책에 나섰던 노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에서 채찍질을 당하던 늙고 병든 말의 목을 끌어안고 울다 쓰러졌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로부터 다시는 건강을 되찾지 못했으므로, 나이 들고 병약한 이의 정신착란이라 여겨졌던 이 일화가 그를 대표하는 영원회귀 사상과 만나 여러 가지 생각의 지점을 남겼단 건 흥미로운 일.
주지하다시피 영원회귀란 영원히 반복되는 세계를 전제하는 니체 사상의 근간이다. 고통스러웠던 삶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고 도망쳐서도 안 된다는 철학적 인식은 그 모든 고통을 향해 기꺼이 달려들어야 한다는 생에의 의지로 귀결된다. 대표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하여 그는 모든 것이 영원히 순환하며 반복되는 세계를 가정한다. 그는 고통스런 삶이 부정과 도피, 공포의 대상이 아닌 엄존하는 현실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책의 유명한 문장,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생이여, 다시!(War das das Leben? Wohlan! Noch einmal!)"란 말이 그를 보여준다.
세상도, 그가 사랑했던 여인까지도 그를 가혹하게 대하였으나 그 반복으로부터 도피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세운 노 학자는 그러나 채찍질을 당하는 말의 모습으로부터 절망한다. 영원히 반복되는 동일한 삶 가운데서도 나름의 의미를 있으리라 자신했던 그가 채찍질 당하는 말의 생애에선 탈출구를 찾지 못하였던 것이라고, 그의 책을 유난히 애독한 이들이 입을 모아 말하였던 것이다.
테드 창의 여러 작품, 이를테면 <숨>에 실린 가장 탁월한 단편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또한 노골적으로 영원회귀를 차용하고 있음을 보자면 니체가 이 SF작가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친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외계의 언어를 배운다는 건
책과 관련하여 또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이야기가 있다. 그건 언어가 곧 세계를 만든다는 현대철학, 또 문화인류학적 발견에 대한 이야기다. 간략히 말하자면 이렇다. 세상엔 수많은 언어가 존재하는데, 이 언어 중 상당수가 개념어로 이뤄진다. 이를테면 실재하는 사물이 아닌 사상이며 관념을 가리키는 말이란 뜻이다.
지난 시대 문화인류학자들이 관심을 가진 여러 고립된 부족의 언어 중에는 오늘날 현대인이 사용하는 언어 속 개념을 일부 갖고 있지 않은 곳들이 있었다고 전한다. 예를 들어 '미래'란 말이 아예 없는 부족이 있는데, 이들에겐 그저 단어 하나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미래라는 단어로부터 파생될 수 있는 수많은 개념, 말하자면 약속이나 저축, 저장과 같은 개념이 없거나 미약했다는 것이다.
현대 철학이 설명하듯 인간이란 언어를 매개로 사고하는 존재이니만큼, 다른 언어를 쓴다는 건 곧 다른 세계관과 현실인식을 뜻한다. 그렇다면 다른 언어를 배우는 건 그저 기술만이 아닌 다른 관점을 얻는 일이기도 하다.
이쯤이면 '네 인생의 이야기'가 어떤 착상 아래 쓰인 작품인지 짐작할 수 있겠다. 이 유명한 이야기는 외계인의 언어를 배우는 언어학자가 그들의 관념을 얻는 내용을 그린다. 그건 선형적 시간 개념으로부터 탈피한 다른 차원의 언어이고, 주인공인 루이즈 또한 선형적 시간으로부터 벗어난 관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는 말 그대로 시간을 초월한 인식을 그녀에게 가져다준다. 작품 가운데 그려지는 다른 시점, 즉 태어나지 않은 딸의 비극적 죽음까지도 내다볼 수 있게 된 건 그래서일 테다.
그러나 니체의 영원회귀, 영원한 반복, 고통스런 삶을 향한 담담하며 기꺼운 전진이 이 지점에서 펼쳐진다. 테드 창의 여러 작품에서 확인되듯, 비극이라 여겨지는 사건조차도 삶에 남기는 분명한 의미가 있다는 듯이 소설은, 루이즈는 전진하는 것이다.
소설의 말미, "아이를 가지고 싶냐"는 사내의 물음에 "응"이라 답하는 루이즈의 답은 그래서 저 유명한 저술의 명대사와 통한다. 삶이 아무리 끔찍할지라도, 몇 번이고 감당하겠다는 인간의 응답. 그 SF적 다시 씀이 곧 '네 인생의 이야기'가 된다. 그리하여 나는 이보다 멋진 팬픽이란 또 존재하지 않으리라고 끄덕이고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