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모임 ‘독립’은 지난 8월 1일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은 간토 학살 진상을 공개하고 공식사과하라“라고 외쳤다. 장순향 춤꾼의 살풀이. ⓒ 시민모임 독립
윤건영(더불어민주당 구로을)의원이 발의한 '간토대지진희생자진상규명특별법'(이하 간토특별법)이 12월 2일 재석 236명 중 220명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간토특별법은 2024년 7월 31일 제22대 국회 개원 후 발의되어 1년 반 만에 통과된 것이나 제19대 국회에서 유기홍 의원이 최초 발의한 점에 비춰보면 10여 년이 걸린 노력의 산물이다.
간토특별법은 이재명 대통령이 당대표 시절부터 통과를 약속하고 지난 8월 일본을 방문해 재일교포들과 한 간담회에서 "100년 전 아라카와 강변에서 벌어진 끔찍한 역사 그리고 여전히 고향 땅에 돌아가지 못한 채 일본 각지에 흩어져 있는 유골들의 넋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발언해 법 제정에 기대가 높은 상태였다.
간토특별법에는 국무총리 소속으로 '간토대학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를 신설해 최대 6년 동안 진상조사와 피해자 조사를 하게 되어 있다. 아울러 평화·인권 교육을 위한 추도 공간과 사료관 조성을 위한 예산 지원 근거를 마련했다.
간토대학살은 1923년 9월 1일, 도쿄를 포함한 관동 6개 현에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이주노동자였던 조선인이 일본의 군경에 의해 학살당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피살자가 워낙 많고 살해 방식이 끔찍해 한일 양국의 시민 사회에서 100여 년에 걸쳐 진상조사 요구가 이어졌다.

▲간토대지진간토대지진(관동대지진) 때 자경단으로 위장한 일본 경찰들이 조선인을 학살하고 있는 모습 ⓒ 이윤옥
하지만 일본정부는 "정부 내 사실을 확인할 문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란 답변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진상규명을 회피해왔다. 한국정부도 상해임시정부가 진상규명과 일본정부의 사과를 요청했을 뿐 해방 후 독립 정부는 한차례도 이를 거론하지 않았고 해마다 9월 1일 도쿄 등 희생지에서 벌어지는 추도식에 추모성명조차 낸 바가 없었다.
그런 면에서 간토특별법 통과로 진상규명의 계기가 마련된 것은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 시민사회에서는 환영 성명이 이어졌는데 22대 국회 들어 간토특별법 제정 운동을 펼쳐온 시민모임 '독립'은 "한일역사정의운동의 새지평이 열렸다"라고 환영했다. 또 1923간토한일재일시민연대의 대표로 19대 국회부터 특별법 제정에 노력해 온 김종수는 "아직 기록되지 못한 6천여 영령들을 생각하며 이제 다시 시작한다"라고 감회를 밝혔다.
'진상규명위'가 첫발을 떼 6년여에 걸쳐서 진상조사 활동을 벌이면 그 결과의 수용 여부에 따라 한일 양국의 관계도 큰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간토특별법을 발의하고 통과를 이끈 윤건영 의원을 만나 전후 과정과 '진상규명위'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의견을 들어보았다. 아래는 간추린 일문일답이다.
"진상규명 발 내디디는 게 중요, 입구 문턱 높여선 안돼"

▲더불어 민주당 윤건영의원그는 간토특별법 제정을 주도했다. ⓒ 민병래
- 역사적 의미가 큰 법안의 제정을 끌어냈다. 이 법의 통과를 이루어낸 힘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우선 이번 정기국회 내에 처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 법이 19대 때부터 치면 오랜 시간 국회에서 처리가 안 된 법이었는데 이번에도 고비를 못 넘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았다. 저는 결과적으로 2024년 총선에서 그리고 2025년 대선에서 진보진영이 승리한 힘이 모여서 처리가 됐다고 생각한다.
- 간토특별법은 일본의 죄과를 들여다보는 법이기에 한·미·일이 군사동맹을 맺고 일본이 극우화되는 등 국내외 정세가 만만치 않아 어려움이 많았을 것으로 보이는데 과정은 어떠했나.
애로 사항이 많았다. 우선 의원들이 간토대학살이 뭔지 잘 모른다. 간토대학살이 1923년 일본인에 의해서 비롯된 참사라는 기초 사실을 설명하는 데에도 꽤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국회에서 관련 사진전도 하고 영화 상영회도 했다. 더불어 100년이란 세월이 지났는데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겠냐는 회의 그리고 일본의 협조가 진상조사에서 필수인데 이게 되겠냐는 회의가 많았다.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고려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이를 하나하나 설득하면서 행안위에서부터 여야 합의 통과에 주력했다.
- 노고가 느껴진다. 그런데 왜, 어떤 계기로 '간토대학살'에 주목해서 법안을 발의하게 되었나.
내가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에서 행정관과 비서관으로 5년 동안 있으면서 과거사 담당 업무를 직간접적으로 맡았다. 이때 간토대학살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게 된 계기가 있었다. 2024년 재선이 되어 행안위 간사를 맡았는데 행안위가 바로 과거사 관련 법안의 소관 상임위원회다. 이때 간토대학살 진상규명에 관한 법이 한 10여 년 처리가 안된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되리라는 확신은 없었으나 누군가는 해야 하기에 이 과제를 떠안았다.
- 간토대학살 관련해서 시각이 다양하다. 일본 정부는 100여 년 동안 학살을 부정하고 지진에 의해 우연히 발생한 조선인의 수난 정도로 얼버무리고 있다. 반면 상해임시정부는 사건이 나자 곧 바로 강제수용된 조선인의 석방과 학살 가해자의 엄중 징계를 요구했다. 또 당시 유학생이 중심이 되어 구성한 '이재조선동포위문반'의 조사에 따르면 6,661명이 사망한 걸로 나온다. 의원님은 어떤 시선에서 이 사건을 접근하고 있나.
나는 이 사건이 제노사이드냐 우연히 일어난 일이냐로 구분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당시 조선인은 이주노동자였다. 일본 정부가 개입했건 안 했건 이들을 보호하지 못한 건 일본 정부의 책임이다. 따라서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규명되지 않은 것을 제대로 밝히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그래서 이 법안을 처리할 때 정부 측에서 "법안명을 간토대학살이라고 하지 말자, 조선인 희생자 사건으로 하자"라고 수정안을 냈을 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진상규명의 발을 내디디는 게 중요하다. 입구의 문턱을 높여선 안 된다.
- 충분히 공감이 가는 접근이다. 되도록 여야 합의 통과를 지향한 점도 작용했으리라 본다. 이제 법은 통과되었다. 앞으로 시행령을 만들고 '진상규명위'를 꾸려야 할 터인데 어떤 밑그림을 그리고 있나.
법령이 통과되었으니, 사업은 입법부의 손을 떠나게 된다. 총리실 산하에 진상규명위원회가 만들어지게 될 거고 실무 작업은 행정안전부가 추진하게 된다.
- 그럼, 법안이 통과되었으니 의원님은 간토사건의 진상규명과 관련해 지켜만 보는 건가.
사업은 4+2 즉 6년 동안 '진상규명특별위'가 추진한다. 하지만 진실화해위처럼 이 기구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예산과 활동을 보고해야 하고 감사받아야 한다. 나는 행안위 간사로서 법 제정의 근본 취지인 진상규명이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세심하게 살펴볼 생각이다.
"이제 정부 사업이 되었으니 외교부 두 팔 걷고 도와야"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월 일본에서 열린 재일동포 간담회에서 "100년 전 아라카와 강변에서 벌어진 끔찍한 역사 그리고 여전히 고향 땅에 돌아가지 못한 채 일본 각지에 흩어져 있는 유골의 넋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발언해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간토 대학살을 공식 언급했다. ⓒ 대통령실 제공
- '진상규명위'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려면 일본 정부의 협조가 가장 중요하리라 본다. 이를 한국외교부가 많이 지원해야 한다. 그런데 외교부는 한일 관계에서 언제나 저자세였다. 100여 년 동안 일본 현지에서 하는 추도식에 단 한 번도 추도성명조차 내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볼 때 '진상규명위'가 이 장벽을 잘 넘어설 수 있으리라 전망하나.
장벽이 많을 거다. 처지를 바꿔놓고 생각하면 일본 정부가 순순히 자료를 안 내줄 거다. 우리 위원회가 진실규명 작업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 외교부도 이제 정부 사업이 되었으니 두 팔 걷고 도와야 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과거사에 주목했고 노무현 정부가 과거사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및 명예 회복 작업을 했다. 노근리 사건이나 일본 제국주의의 강제동원 문제가 좋은 예다. 외교부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행정부처의 도움을 얻기도 어려웠다. 일본 정부도 마찬가지였는데 하나하나 쌓이면서 조금씩 바뀌었다. 이런 역사가 있으니 극복하리라 본다.
- 알겠다. 그런 희망을 품도록 하자. 간토대지진이 일어난 도쿄부와 가나가와,사이타마 현 등 여러 지역에서 오랜 세월 일본시민사회와 향토사학이 수집한 자료와 연구 성과가 있다. 정부 차원과는 별도로 한일시민사회와 학계의 성과를 '진상규명위'로 모아내는 작업이 중요하리라 보는데 이런 부분도 고려하고 있나.
중요한 지점이다. 대한민국이 외면할 때 그분들이 오히려 관심을 보였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간토진상규명시민단체 인사를 여럿 만났고, 감동한 적이 있다. 일본시민사회와 연대하는 것이 실타래를 푸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여러 가지 증거와 증언만 진상규명위에 집대성해도 큰 성과라고 본다. 이를 위해 한일시민단체와 간담회나 토론회 등 다양한 모색을 검토해 보겠다.
-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묻겠다. 2기 진실화해위가 과거사 기구의 취지가 무색해질 정도로 후퇴했다. '진상규명위'도 이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위원장 인선이 중요하리라 본다. 어떤 방향을 갖고 있나.
인선과 인사에 관한 부분은 새 정부가 책임지고 가야 될 부분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사람을 거론하긴 힘들다. 다만 이 법은 여야가 합의 처리를 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빛의 혁명이라는 바탕도 있지만 간토특별법을 정치적 쟁점으로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일본 땅에서 벌어진 우리 동포의 참사에 대해 조사하는 데 여야가 어디 있고 좌우가 어디 있나. 명확한 진실규명이 가야할 길이고 위원장은 누가 되었던 이 소임에 이바지해야 한다.
(간토특별법은 윤건영 의원이 발의할 때, '간토대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었으나 법안심사소위에서 정부 측 의견을 받아들여 '간토대지진희생자진상규명특별법'으로 변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