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연예매체 디스패치가 배우 조진웅씨의 미성년 시절 범죄 사실을 보도하며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해당 사실 보도 뒤 조진웅씨는 은퇴를 선언했지만, 이후 '청소년 시절 잘못을 언제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보도가 적절했는가' 등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와 관련 다양한 의견을 싣습니다.

▲배우 조진웅씨( 자료사진) ⓒ 이정민
배우 조진웅의 오래된 과거가 뒤늦게 드러나 논란이 일었고, 그는 '배우 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결정을 바라보며 마음 한구석에 일었던 어떤 감정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사람의 삶을 규정짓는 것은 과거의 한 장면일까 아니면 그 뒤로 이어진 긴 시간의 변화일까.
조진웅이 미성년시절 차량 절도·강도강간 혐의로 소년원에서 생활을 했다는 언론 보도로 시작된 이번 논란은 한 사람의 잘못, 그 너머에 존재하는 '현재의 삶'과 '변화의 가치'를 묻고 있는 것만 같다. 단순한 연예계 스캔들로 치부하기엔 사회가 '과거의 잘못'과 '현재의 자격'을 어떻게 연결하고 있는지, 과거는 직업과 사회적 존재를 무너뜨릴 만큼 절대적 기준이 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특히 이 사안은 유명인의 과거 폭로나 연예계 도덕성 논란으로만 소비되기에는 너무나 크고 복잡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본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다. 조진웅이 스크린 밖에서 보여온 태도와 행보는 대체로 진중했다. 종종 사회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면서 성실하고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느껴왔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과거가 터져 나온 뒤 그가 스스로 배우 은퇴까지 선언한 모습을 보면서 예상치 못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잘못은 잘못이다. 그가 과거 저질렀던 일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연민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이 감정은 단순한 '팬심'의 문제가 아니다.
논란이 벌어진 시점은 그가 미성년자일 때이다. 우리 법은 소년범을 성인 범죄와 달리 취급한다. 미성숙함을 전제로 '교정·갱생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해 왔다. 그런데 성인이 된 뒤 수십 년 동안 사회적 구성원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뒤늦게 과거를 들추어 현재의 그가 가진 지위를 박탈하는 결정이 내려진다면, 이는 소년범 제도 자체의 취지를 무너뜨리는 결과가 된다. 갱생 가능성을 인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오히려 미래까지 영구히 낙인찍는 도구로 사용되는 셈이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필자의 미성년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를 돌아보면, 주변의 적지 않은 남학생들이 잦은 싸움을 벌였고, 도둑질을 했다는 이야기도 꽤 들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떤 경우에는 철없는 장난으로 경찰서에 불려가는 일도 있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그 나이에 보였던 그런 행동들은 모두 분명한 잘못이지만, 미성년기의 충동성과 미성숙함, 판단능력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법적으로도 성인 범죄와 달리 취급했던 것이리라. 그래서 '한 사람의 미성년기 과오가 성인이 된 후의 삶까지 영원히 지배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더욱 절실해질 수밖에 없다.
피해자 상처 존중 우선... 하지만 평생 낙인은 다른 문제
한국 사회가 유명인에게 요구하는 도덕적 완벽함은 매우 높다. 특히 대중문화 산업에서는 '이미지'가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된다. 논란이 터진 후 인간 조진웅의 변화 과정이나 그가 보여온 삶의 모습은 논의에서 거의 사라졌다. 대신 '과거'라는 한 조각이 현재 전체를 대체했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이다. 과거는 사실이지만 그 사실이 현재를 완전히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물론 과거의 잘못을 가볍게 넘기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피해자가 있다면 그 상처에 대한 존중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책임 추궁과 평생 낙인을 동일시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책임은 과거의 행위를 기준으로 요구될 수 있지만 ,직업적 생존이라는 현재의 권리까지 자동으로 박탈할 만큼 비례성이 있는가 묻고 싶다.
더 큰 문제는 여론이 가진 즉각적 처벌 장치다. 사건의 맥락보다 감정적 반응이 앞서고, 사회는 빠르게 퇴출을 요구한다. 기업과 방송사는 여론을 우려해 선제적 조치를 취한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는 해명의 시간을 허락받기 보단, 대중의 눈에서 사라지는 갑작스런 선택지만을 받아 들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책임의 문제라기보다 사회적 낙인과 공포가 지배하는 환경이 만들어낸 결과에 가깝다.
조진웅의 은퇴는 개인의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이 단지 개인의 의지가 아닌 사회적 낙인과 여론 압박 속에서 내려진 결정이라는 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즉, 그 결정이 개인의 판단을 넘어 우리 사회가 '사람을 하나의 과거로 고정시키는 방식'을 드러냈다는 점은 분명하다. 변화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스스로의 미래도 제한한다. 책임과 회복, 비판과 기회가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사회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책임과 기회, 공존할 수 있어야
이번 논란은 단지 한 배우의 문제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이는 '과거'가 인간의 '전체 시간'을 대체하는 사회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는 더 늦기 전에 그 질문에 대한 치열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 비슷한 논란이 생길 때마다 이 상황이 반복될 것이다.
사회가 건강해지려면 잘못은 분명히 짚어내되 변화와 회복의 가능성도 함께 바라봐야 한다. 책임과 기회는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는 부정할 수 없지만 그 과거가 한 사람의 현재와 미래를 전부 규정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과거의 총합이지만 동시에 변화의 과정을 지닌 존재다. 조진웅 논란은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우리는 한 인간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과거인가, 현재인가, 아니면 그 사이의 긴 시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