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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08 10:00최종 업데이트 25.12.08 10:00

지리산에서 만난 매천 황현의 절명시가 남긴 질문

지난 6일(토요일) 아침, 구례군 광의면의 국립순천대학교 교직원수련원에서 숙소를 나와 근처에 있는 매천사를 먼저 찾았다. 전날 구례에 도착해 시외버스터미널 내 구례관광안내소에서 매천 황현 관련 유적지 안내를 들은 터라, 오늘 일정은 자연스레 황현의 자취를 따라가는 길이 되었다.

'매천'은 황현의 호이며, 구례군의 공공도서관 이름인 '매천도서관' 역시 그의 호에서 비롯되었다. 도서관 입구에는 황현을 기리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평생 학문과 글쓰기에 헌신한 매천의 이름을 딴 도서관이라는 점에서 더없이 어울리는 명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천사
매천사 ⓒ 여경수

매천사는 매천 황현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사당이다. 황현은 광양에서 태어났으나 구례로 거처를 옮겼다. 황현은 처음에는 구례 간전면에 있는 구안실에 머문 뒤 현재 구례 광의면에 있는 매천사가 자리한 곳으로 다시 이주했다. 그는 <매천야록>과 <오하기문> 등 주요 저술을 남겼다.

<오하기문>은 '오동나무 아래에서 들은 이야기'라는 의미로, 그 안에는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생생한 기록이 담겨 있다. <매천야록>은 조선 말기부터 국권 피탈 직전까지의 격변을 담은 역사 기록이다. 황현이 대한제국의 주권이 일본에 넘어갔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곳에서 자결한 사실을 이유로, 국가보훈처는 매천사를 현충 시설로 지정했다.

 매천 황현의 부조와 절명시 알림판
매천 황현의 부조와 절명시 알림판 ⓒ 여경수

매천사를 둘러본 후 호양학교로 향하던 길, 옛 방천초등학교 부지에 조성된 황현의 동상을 만나게 되었다. 동상 옆 안내문에는 황현이 순국 직전 남긴 절명시가 소개되어 있었다.

'秋燈掩卷懷千古 / 難作人間識字人'
'가을 등불 아래 책을 덮고 기나긴 역사를 돌아보니, 인간 세상에서 글 배운 사람의 노릇을 하기가 어렵구나'

선비가 조국의 상실을 느끼는 비통함이 담겨있다. 당시나 지금이나 곡학아세하면서 권력에 충심을 다한 이들을 생각하면, 다시금 지식인의 역할을 고민하게 된다.

 호양학교
호양학교 ⓒ 여경수

호양학교는 매천사에서 구례 읍내 방향으로 약 30분 걷는 길에 자리한다. '호양'이라는 이름은 지리산 주맥 호양맥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1908년 대한제국 시기에 설립된 사립학교로, 왕석보의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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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은 호양학교 설립을 위해 모연소를 작성해 지역 인사들에게 출연을 독려했으나, 학교는 결국 1920년 폐교되었다. 이곳 역시 현충시설로 지정되어 있으며, 2006년 구례군의 지원으로 건물 복원과 조형물 설치가 이루어졌다.

지리산 자락 구례군 광의면에서 매천 황현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노고단을 바라보니, 그의 삶이 가진 곧은 결기가 오늘의 청명함 속에 더욱 또렷하게 다가왔다.

#매천황현#절명시#호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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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힘이 되는 생활 헌법(좋은땅 출판사) 저자, 헌법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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