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2일, 새만금 수라 갯벌은 초겨울 특유의 날카로운 바람이 쉬지 않고 불어왔다. 세종보 농성장을 지키는 동지들과 함께 갯벌을 찾았다. 바람이 차지만 자연에서는 생명의 움직임이 가득했다.

혹부리오리, 청둥오리, 쇠오리 등이 조용히 물길을 가르며 움직였고, 댕기물떼새들은 바람에 몸을 낮추고 갯가를 빠르게 오가며 먹이를 찾고 있었다. 본격적인 겨울 철새 물결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공간 전체에 겨울철 생태계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흰꼬리수리, 새매 등의 맹금류가 이런 긴장감을 유지시키고 있었다.

바람결을 가르며 한 줄기의 비행이 갯벌을 가로질러 우리게에 왔다. 정명을 응시하며 우리에게 다가온 새는 잿빛개구리매였다. 보통 갈대지대를 따라 낮게 날다가 금세 모습을 감추는 종이라 길게 관찰하기가 쉽지 않다. 놀랍게도 갯벌의 넓은 여백을 가로질러 우리 쪽으로 다가왔고, 인기척을 느끼자 선회해 멀리 갔다. 탐조하는 시민들이나 생태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보기만 해도 하루치 피로가 사라지는 맹금류로 꼽힌다.

잿빛개구리매(Circus cyaneus)는 유라시아 전역의 개활지나 초원에서 번식하는 종으로, 번식기가 끝나면 남쪽으로 이동해 겨울을 난다. 국내에서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돼 보호받는 보호종이다. 수컷은 회색과 흰색이 대비되는 날렵한 몸색을, 암컷은 갈색 바탕에 줄무늬의 패턴을 띠며 성적 이형성이 뚜렷하다. 비행 시 허리(rump)의 흰띄가 동정의 중요한 키다.

 잿빛개구리매의 비행모습(둥근얼굴이 보인다)
잿빛개구리매의 비행모습(둥근얼굴이 보인다) ⓒ 임도훈

사냥 방식도 독특하다. 날개를 얕은 V자 형태로 벌린 채 땅이나 초지의 굴곡을 따라 낮게 날며 작은 포유류의 움직임을 탐지한다. 시각뿐 아니라 예민한 청각을 함께 활용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엉이처럼 둥근 얼굴 형태가 소리를 모으는 역할을 한다. 주 먹이는 들쥐 같은 소형 포유류지만, 필요하면 조류, 양서류, 파충류, 곤충 등으로 다양하다. 박쥐를 사냥한 사례도 있다고 알려져 있고, 드물게 오리나 토끼 같은 큰 먹이를 물가로 몰아 떨어뜨려 제압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잿빛개구리매가 정면으로 비행해 오는 모습
잿빛개구리매가 정면으로 비행해 오는 모습 ⓒ 임도훈

잿빛개구리매는 흥미로운 번식 생태도 가지고 있다. 잿빛개구리매는 일부다처제를 이루는 몇 안 되는 맹금류인데, 먹이가 많을수록 수컷 한 마리가 여러 암컷과 짝짓기하는 비율이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대부분의 맹금류의 경우 일부일처제로 번식을 함께하는 것과는 매우 특이한 번식습성이다. 영국 오크니 제도에서 먹이를 보충해 준 실험에서는 한 수컷이 최대 다섯 마리의 암컷과 번식한 것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AD
잿빛개구리매는 넓은 지리적 분포를 가지고 있어 IUCN 적색목록에서는 최소관심으로 으로 분류되어 있다. 개체수 감소의 증거가 아직 위험하지는 않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영국과 아일랜드에서는 습지 훼손과 불법 사냥으로 개체군이 심각하게 위태롭다고 알려져 있다. 조류의 선진국에 해당하는 영국의 경우 300쌍 이상의 번식쌍을 수용할 서식처에 고작 34개에 그쳤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스코틀랜드 개체군은 2004년부터 2016년 사이에만 27% 감소해다고 한다. 실제 현장석으로는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될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수라 갯벌에서 마주한 암컷 잿빛개구리매를 보는 것만으로 이런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새만금으로 사라져 대부분의 갯벌은 사리자고 남겨진 수라 갯벌마저 공항건설로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교차되었기 대문이다.

겨울 바람 속에서 낮게 활공하며 먹잇감을 찾는 모습 그 자체가 하나의 생태적 신호였고, 갯벌이 아직 이 맹금류의 겨울 서식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수라 갯벌은 여전히 생명을 품고 있고, 그 생명들이 버텨내고 있는 겨울의 현주소가 너무나 서글픈 하루였다.

#잿빛개구리매#활공#수라갯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재

얼가니새의 새이야기

날로 파괴되어지는 강산을 보며 눈물만 흘리고 계시지 않으신가요? 자연을 위한 활동이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 대전환경운동연합 회원이 되시면 함께 눈물을 흘리고 치유 받을 수 있습니다. 회원가입하기! https://online.mrm.or.kr/FZeRvcn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