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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가 큰 전시와 달리 작은 전시를 여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노라면 제 삶과 일, 일상을 응원 받는 기분입니다. 저도 글로써 제가 받은 응원을 돌려드리고 싶어요.
우연히 보았던 한승무 작가의 <MISTAKE(미스테이크)>가 기억에 남았다. 그림에는 실수를 저지른 아이의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캔버스로 옮겨진 감정이 내 안에 남아 작가의 다음 전시를 기다리던 터였는데 '하우스 갤러리 2303'에서 한승무 작가의 전시가 오는 17일까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우스 갤러리 2303'은 <그림의 종착지는 집입니다>(구름의 시간, 2025)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된 공간인데, 책의 저자이자 하갤 대표 강언덕씨는 거주하는 아파트를 실제 갤러리로 운영한다. 고유한 이야기를 지닌 작가를 발굴해 그들의 그림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작품의 집'을 찾아주는 것이다.

어두울수록 반짝이는 삶의 조각들

MISTAKE 시리즈 아이가 실수한 순간을 그린 그림. 한승무 작가는 캔버스의 전면뿐만 아니라 옆면과 뒷면까지 빠짐없이 그림을 채워 넣었다.
MISTAKE 시리즈아이가 실수한 순간을 그린 그림. 한승무 작가는 캔버스의 전면뿐만 아니라 옆면과 뒷면까지 빠짐없이 그림을 채워 넣었다. ⓒ 한승무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한승무 작가는 호주 멀럼빔비에서 두 형제를 키우며 그림과 사진, 영상 등 다양한 작업을 한다. 아내 임효영 또한 그림책 작가로 활동 중이다. 아내에게 작업할 시간을 마련해주기 위해 아이들이 어릴 적엔 한승무 작가가 육아를 적극적으로 맡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형제가 뛰노는 곁을 지켰던 한승무 작가는 아이들을 찍은 사진을 모아 사진집 <숲과 바다, 형제 사진>(키치가치, 2021)을 냈다. 그림에도 아이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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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들어서자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가 새롭게 준비한 'HUG(허그)' 시리즈가 눈에 들어왔다. 'MISTAKE(미스테이크)'에 비해 작품 규모도 크고 색이 화려해 단번에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런데도 걸음을 멈춰 오래 들여다본 건 'MISTAKE(미스테이크)' 시리즈였다.

손바닥만 한 캔버스(10*10*4cm)에 물컵을 엎지른 아이를 그린 'MISTAKE(미스테이크)'. 쓰러진 컵과 테이블 위로 번진 물, 아이의 커다란 눈과 앙다문 입, 그리고 꽉 쥔 주먹. 아이의 표정에서 당혹스러움과 낭패감, 분하고 답답한 심경까지, 순간에 이는 감정의 역동이 전해졌다.

그림 앞에서 아이의 심정을 헤아리는 동안 실수해버려 당혹스러웠던 감정이 내 안에서 되살아났다. 그러자 그림 속 아이의 얼굴 위로 내 얼굴이 겹쳐 보였다. 꾸중이나 책망을 듣고 자책하고 억울하면서도 두렵고 막막해 한없이 작아졌던 순간. 사라진 줄 알았던 감정의 자국이 내면의 작은 캔버스에서 잠자고 있음을 이 그림이 일깨워주었다.

작가는 물컵을 엎지르고 꾸중을 듣던 아이의 얼굴에서 평소와 다른 표정을 보았고 그걸 기억하고 싶어 그림으로 옮겼다고 한다. 어린 아이에게서 '자아'라는 싹이 움텄음을 알아챘던 찰나, 품 안의 아이가 어떤 선을 넘어서던 순간을 작가는 섬세하게 포착했다.

그 마음이 캔버스를 가득 채웠다. 작가는 캔버스의 앞면뿐만 아니라 옆면에까지 아이를 둘러싼 세계의 세부 사항을 그려 넣었다. 큐브와 장난감 자동차, 화분과 야구 방망이, 그리고 책. 시리즈가 지속되면서 아이의 세계는 바뀐다. 어딘가로 나아간다.

 그림의 뒷면 사진
그림의 뒷면 사진 ⓒ 한승무

잘못한 순간, 우리의 감정은 내면의 크기를 초과하여 외면으로 흘러넘친다. 얼굴이 붉어지고 허둥거리고, 이마에 땀이 맺힌다. 캔버스의 전면을 채우고 모서리와 뒷면까지 뒤덮은 그림의 형식은 그 마음의 상태를 대변한다. 아이의 마음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싶은 부모의 시선도 엿보인다. 그린 이의 시선과 그림의 형식이 손을 맞잡고 마음의 어려움을 견디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그림 속 아이와 관람자를 안아주는 것만 같다.

한승무 작가는 낯설고 회피하고 싶은 감정을 밝고 경쾌한 색으로 표현했다. 원색의 물감을 칠하고 바니시를 덧대어 캔버스 표면이 반짝거린다. 그림은 나를 초과한 감정 때문에 힘들었던 순간, 그런데도 버티느라 생생하게 아팠던 순간이 진짜라고 말하는 듯하다. 어둠에 잠겨있을 때, 아픔을 견디느라 애쓰던 때라도 당신은 에너지로 빛났다고 속삭여준다.

실수하고 싸우면서 끌어안는 삶

 하우스 갤러리 2303에 전시 중인 작품들.
하우스 갤러리 2303에 전시 중인 작품들. ⓒ 하우스갤러리2303

실수한 순간을 버티던 아이는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계와 싸우기 시작한다. 'MISTAKE(미스테이크)에 이은 'WE FIGHT(위 파이트)' 시리즈에서 작가는 싸우는 이를 연이어 그렸다. 싸운다기보다 버둥거리는 쪽에 가깝다. 팔다리를 흔드느라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제대로 전하지 못했을 것 같은 상태. 그림은 육아와 생계를 책임지느라 지난한 싸움을 벌였을 작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매 순간 싸우고 있는 사람은 작가만이 아닐 것이다. 아이들이 실수로 배움을 거듭하는 사이 어른은 각자의 자리에서 온갖 싸움을 지속하지 않는가. 자신으로 존재하며 관계와 생활을 유지하는 일이 투쟁에 가깝다는 걸 알고 있지 않은가. 팔다리를 버둥거리는 존재가 우스꽝스럽다가도 안쓰러워지고 말았다. 내 안에서도 그런 소동이 벌어진다는 걸 숨기고 있다 들킨 기분이었다.

그림 속 싸우느라 뒤엉켜 있던 존재들은 'WE HUG(위 허그)' 시리즈에 이르러 서로를 안아준다. 작가는 쉬운 화해는 없다는 듯 초기의 'WE HUG(위 허그)'에서 포옹하는 대상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얼룩덜룩한 점으로 뒤덮어 버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과 그림의 색채는 정돈되어 간다. 싸우듯 끌어안다 마침내 온화하고 다정한 포옹에 다다른다.

실수하고 싸우느라 힘겨웠던 시간을 버텨 자신을 안아줄 수 있는 시간으로 작가는 건너간 걸까. 그가 푸르게 버티었던 시간이 눈앞의 그림에서 그만의 빛으로 새어 나온다. 어둠 속이라 믿었기에 그만의 빛을 모으고 모았을 시간. 버틴 시간은 우리를 어딘가로 옮겨주기 마련이다.

WE HUG 25-10 한승무 작가는 서로를 안고 있는 존재 위에 점을 찍었다. 초기엔 그림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얼룩덜룩 찍혔던 점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정돈되었다.
WE HUG 25-10한승무 작가는 서로를 안고 있는 존재 위에 점을 찍었다. 초기엔 그림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얼룩덜룩 찍혔던 점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정돈되었다. ⓒ 한승무

물론 창작자로서 한승무는 자신과의 싸움을 그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림을 알 수 없는 점으로 가려 버렸으니. 누가 봐도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려고 지우고 덧씌우기를 반복했으면서도 아름답기만 한 그림은 용납하지 않았다. 그 지점에서 창작자의 뾰족한 자세를 읽었다. 그는 여전히 실수하고 싸우며 버티는 중일 것이다.

내 안에 숨기기만 했던 감정이 실은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랐던 감정임을 한승무의 그림 앞에서 깨달았다. 어른이라서 센 척, 상처받지 않은 척 넘겼던 감정이 이해와 토닥임, 포옹을 바라며 내면에 잠자고 있었다. 어른도 실수할 수 있지, 어른도 엉망으로 싸우고 싶을 때도 있어. 어른도 안아주길 바라, 때로는 부드럽게 끌어안고 그냥 허물어지고 싶기도 해. 가만히 그림을 들여다보는 사이 알아챘다. 알아챔이 포옹이 되었다.

우리는 실수하고 싸운다. 버티며 삶을 끌어안는다. 그렇게 나아간다. 한승무의 'WE HUG(위 허그)' 시리즈 속 틈새 없이 맞붙은 두 존재가 나와 내 삶의 관계를 은유하는 것 같다. 내면에 밀착할수록 나의 삶에 완벽하게 맞닿을 수 있다고.

그러니 그림이라는 창 앞에 서자. 타인의 내면을 통해 나의 내면으로 들어가 보는 기회를 자신에게 선물하자. 한승무 작가가 전하는 다채로운 빛깔의 포옹을 당신과 나누고 싶다.

* 하우스갤러리 2303은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아파트를 전시장으로 활용한다. 인스타그램(@housegallery_2303) DM을 활용한 사전 예약을 통해 방문 가능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한승무#반짝이는삶의조각들#연말전시소개#작은갤러리#하우스갤러리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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