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옥천군에는 사람 냄새 나는 정겨운 마을들이 많습니다. 이 가운데 안내면 율티리, 군북면, 감로리, 청성면 거포리 세 곳의 마을을 찾아갔습니다. 아래의 글은 하얀 배꽃이 가득했던 마을 풍경으로 유명한 감로리의 이야기입니다. 이외에 더 많은 기사들은 <월간 옥이네> 101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충북 옥천군 군북면 감로리 마을회관 ⓒ 월간 옥이네
환산(고리산)이 품고 있는 충북 옥천군 군북면 감로리. 달 감(甘), 이슬 로(露) 자를 써 '단 이슬'이라는 뜻을 가진 이 마을은 예부터 물 맑기로 소문난 곳이다. 환산 중턱에 있는 감로사 터 뒤편에서 흘러나오는 약수는 그 양이 많아 주민들의 식수와 농사를 책임졌다. 상수도가 들어서면서 물을 길어다 먹는 일은 줄었지만, 지금까지도 식수로 마실 만큼 맑은 물이 샘을 꽉 채우고 있다.
마을 초입과 중턱에 있는 느티나무는 마을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성인 두 명이 안아야 할 정도로 몸통이 두꺼운 나무는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몇 년 전 병을 얻어 앓기도 했지만 주민들의 보살핌 속에서 놀이터와 쉼터의 역할을 이어오고 있다. 약을 주고, 병든 가지를 골라내는 등 세심하게 관리하는 일이 쉽지 않지만 주민들은 마을과 함께 살아온 나무에 감사함의 손길을 건넨다.
감로리에는 지금은 볼 수 없는, 주민들의 기억 속 특별한 장면이 있다. 봄이면 골짜기마다 눈이 내려앉은 듯, 하얀 배꽃이 가득했던 마을 풍경이다. 옥천에서 배를 가장 많이 했던 감로리는 환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로 농사를 지어 당도 높은 배로 유명했다. 각지에서 장사꾼들이 몰려올 만큼 '감로배'를 찾는 이가 많아지면서 주민 대부분이 배 농사를 지었다. 기후변화와 농산물 가격 하락 문제로 과수 농사가 줄어들면서 지금은 상추·쑥갓·시금치·아욱 등의 채소가 농지를 채우고 있다.
58세대가 살고 있는 감로리, 해가 짧아진 가을에는 마을회관이 더욱 북적인다. 수확으로 가장 바쁠 계절, 하루 일을 마친 주민들이 향하는 곳은 집이 아닌 회관. 쌀쌀한 바람을 피해 모인 회관에서 직접 재배한 농산물로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 나눈다. 누군가 전을 부치기 시작하면 어느새 식탁은 각종 먹거리와 주민들로 가득 찬다. 약속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풍경이다.
함께 먹는 밥은 선·후주민 할 것 없이 주민을 이어주고 마을의 필요한 것을 이끌어내는 힘이 된다. 마을 청소, 방범, 공동체 사업 등에 대한 주제로 대화가 번지기도 하고 논의도 이뤄진다. 마을회관이 시끌벅적한만큼 '살기 좋은 마을'임을 보여주는 감로리다.
주민들은 말한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아까운 모습이 있지만 감로리의 정과 단합은 여전하다"고. 주민들이 쓴 시가 반겨주는 마을 초입 모습만 봐도 무슨 뜻인지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보면 볼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궁금해지는 마을. 마을 구석구석에 담긴 이야기를 듣기 위해 감로리를 찾았다.
"우리 장수 비결은 친구 만나기예요"

▲이형직(95)·김옥동(92)·이계월(90)씨 ⓒ 월간 옥이네
마을회관에서 만난 이형직(95)·김옥동(92)·이계월(90)씨는 마을 최고 어르신들이다. 감로리에서 보낸 70여 년의 세월 속 세 사람은 늘 함께였다. 19살에 결혼해 온 낯선 마을에서 비슷한 고민을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며 우정을 나눴다. 이제는 가족보다 더 가까운, 아니 가족이라고 말하는 세 사람이다. 매일을 함께하는 이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이형직씨 : "고향은 세종 대평리에요. 대전에서 살다가 6.25 전쟁 때 이곳으로 피난 왔어요. 그리고 계속 여기서 살아요."
김옥동씨 : "형님(이형직씨)이 우리 마을에서 나이가 가장 많아요. 97세 어르신도 계셨는데 얼마 전에 딸네집으로 갔어요. 우리 마을에 90대가 많아요. 저도 92살이에요."
이계월씨 : "19살 때 동이면 금암리에서 감로리로 시집왔어요. 형님들과는 그때부터 알고 지냈고요. 엄청 오래 알고 지낸 사이예요."
- 70년 넘는 시간을 함께하신 거네요. 만나면 무슨 이야기 나누세요?
이형직씨 : "예전엔 먹고 사는 일이었는데, 지금은 건강 얘기를 많이 해요. 귀가 안 좋아서 보청기 사려고 하니 300만 원 달라고 하대요. 한두 푼이 아니라서 고민돼요."
김옥동씨 : "몸 아프면 병원비가 많이 드니까 미리미리 건강을 챙겨야 해요. 일주일에 한 번 마을회관에 운동 선생님이 오세요. 다른 건 못해도 그건 빠지지 않고 해요."
이계월씨 : "마을회관에 있는 실내자전거를 틈틈이 타요. 다리가 튼튼해야 어디 다니기가 좋잖아요. 별일 없으면 매일 회관에 나와서 30분씩 타요."
이형직씨 : "아직 젊어서 그랴. 저는 전동차 타고 마을 한 바퀴 돌아요. 안에만 있으면 갑갑하잖아. 시원한 바람 맞고 햇빛 맞으면 기분이 달라져요. 목적지 안 정하고 발길 따라가는 거예요. 겨울 되면 추우니까 지금 많이 다녀야 해요."
- 요즘 바람이 차요. 겨울 준비 어떻게 하세요?
이계월씨 : "천식이 있어서 목을 따뜻하게 해야 해요. 가을, 겨울에는 항상 머플러를 둘러요. 머플러가 얇아 보여도, 하고 안 하고 차이가 커요. 몸을 따뜻하게 하려면 목을 가려야 해요."
이형직씨 :" 무조건 여러 겹 입어요. 지금 입은 바지는 5천 원 주고 샀는데, 너무 오래 입어서 낡았어. 얼마 전에 이이(김옥동 씨)가 옥천장에서 5천 원 주고 똑같은 걸 샀더라고요. 저도 새로 하나 사야겠어요."
김옥동씨 : "약간 도톰한 셔츠를 입어요. 단추가 있어서 여러 겹 입기 편해요. 또 카라가 있어서 목도 가려주고요. 여러 면에서 셔츠가 편해요."

▲충북 옥천군 군북면 감로리 ⓒ 월간 옥이네
- 세 분 다 90대이신데, 장수비결이 있으신가요?
세 사람 모두 : "친구 만나기(웃음)."
이형직씨 : "약속하지 않아도 마을회관에 오면 항상 있어요. 할 말 없어도 같이 있으면 그냥 좋아요."
이계월씨 : "티브이도 보다가 낮잠도 잤다가 밥 먹고 그러는 거죠. 회관에 주민들 오면 오늘 무슨 일 있었는지 이야기하고...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이 편해야 해요."
김옥동씨 : "잘 먹는 것도 중요한데, 주민들이 잘 챙겨줘서 고마워요. 오늘은 호박전한다고 밭에서 따왔대요. 손이 많이 갈 텐데 고마워요.
- 서로에게 어떤 친구가 되고 싶으세요?
이형직씨 : "별다른 게 있나, 지금처럼 지내면 되는 거지. 이렇게 오래 만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에요.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지내야죠."
이계월씨 : "꽃을 좋아해서 마당에 잔뜩 심었어요. 꽃씨가 날려서 봄 되면 집 앞뒤로 많이 피어요. 내년에도 꽃이 활짝 피겠죠. 같이 보고 싶어요. 서로 좋아하는 거 보면서 그렇게 지내고 싶어요."
김옥동씨 : "지금처럼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지금처럼만이면 좋겠어요."
월간옥이네 통권 101호(2025년 11월호)
글·사진 김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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