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옥천군에는 사람 냄새 나는 정겨운 마을들이 많습니다. 이 가운데 안내면 율티리, 군북면, 감로리, 청성면 거포리 세 곳의 마을을 찾아갔습니다. 아래의 글은 하얀 배꽃이 가득했던 마을 풍경으로 유명한 감로리의 이야기입니다. 이외에 더 많은 기사들은 <월간 옥이네> 101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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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군 감로리 김기태·배정연씨 ⓒ 월간 옥이네
감로리에 사는 김기태(77)·배정연(70)씨 부부가 밭에서 배추를 유심히 살핀다. 수확을 앞둔 김장용 배추에 무름병이 생겨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하는 모습이 진지하다. 매년 배추를 심지만 올해 병충해가 가장 심하다고. 가족과 이웃이 먹을 만큼만 농사한 지 8년째. 해가 갈수록 농사가 쉽지 않다는 부부다.
자세히 보니 텃밭에 무, 호박, 가지, 쑥갓, 고수, 방울토마토 등 열 가지가 넘는 작물이 자라는 중이다. 배정연씨는 두 주먹을 합친 것보다 큰 애호박을 툭툭 따더니 오늘 저녁이라고 말한다. 매일 200여 평의 땅에서 자란 것들로 식탁을 차린다는 이들의 텃밭을 구경했다.
제2의 인생은 감로리에서
부부가 감로리에 온 것은 8년 전. 대전에서 살던 두 사람은 김기태씨의 정년퇴직을 계기로 그의 고향으로 돌아왔다. 감로리로 가자고 먼저 제안한 사람은 아내 배정연씨였다. 남편이 퇴직하기 전부터 꾸준히 감로리를 찾으며 은퇴 후 삶을 준비해왔다.
"남편 퇴직 전 마을에 전세를 구해 아들과 먼저 왔어요.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통보하듯 말하고 와서 남편이 많이 놀랐죠(웃음)."
고즈넉한 마을 분위기에 반해 노년은 감로리에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는 배정연씨. 그런 아내의 제안에 고향으로 돌아온 김기태씨는 마을에 필요한 일들이 눈에 들어왔다. '해야 할 일이 생겼다'는 생각에 마을 일에도 열의가 생겼다.
"2017년 고향에 오자마자 이장을 맡게 됐어요. 이걸 어쩌면 좋나 생각했는데 둘러보니 개선해야 할 것들이 눈에 보이더라고요. 앞으로 살아갈 곳이고 고향이니까 더 마음이 쓰였죠."

▲충북 옥천군 감로리 마을회관에서 배정연씨가 요리한 음식을 맛보는 주민들 ⓒ 월간 옥이네
어르신 생일잔치, 마을 분리수거장 설치, 꽃길 조성, 민요합창단 등을 진행해 마을 환경을 정비하고 주민들의 화합을 도모했다. 마을공동체 문화 향상을 위한 활동으로 '촌티학교'도 진행했다. 5개월 동안 매주 토요일마다 마을회관에 모여 글쓰기 수업을 받고 시를 썼다. 완성된 작품은 마을 입구에 전시하고 작품집 '촌티나게 살았소'를 발간했다.
"마을 초입에 진열한 주민들의 시를 보셨나요? 천천히 읽다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들이에요. 함께 글을 쓰면서 마을 주민들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처음에는 글쓰기를 부끄러워하셨는데 회차가 진행될수록 진지하게 임하셨어요. 저 또한 글쓰기의 매력에 푹 빠졌고요. 고향과 감로리에 대한 글을 썼는데, 서로의 글을 보면서 마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어 주민들과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어요." (배정연씨)
2020년에는 대청댐 주변지역 지원사업 공모에 선정돼 마을회관을 새로 지었다.
"마을회관이 오래돼서 고민이 있었어요. 그러던 중 지원사업이 있다고 해서 마을에서 원하는 회관을 설계해 발표했죠. 1억7천만 원을 지원받아 새로 지은 것이 지금 마을회관이에요. 안에 세간살이는 주민들이 조금씩 모아 마련했고요. 여러 활동을 했지만 마을회관을 지으면서 더 단합되는 걸 느꼈어요." (김기태씨)
김기태씨에게는 지키고 싶은 마을 풍경이 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주민과 함께 살고 있는 느티나무 두 그루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늘 푸른 나무를 계속 보고 싶다.
"어렸을 때 나무 타고 놀던 기억이 있어요. 여름이면 그늘에 모여 간식을 먹기도 했고요. 주민들의 쉼터이자 놀이터인 느티나무를 오래 보고 싶어요. 몇 년 전부터 상태가 안 좋아 약도 주고 병든 부분도 제거하고 있어요. 조금씩 푸른 모습을 되찾아서 다행이에요. 마을의 시간이 담긴 나무를 지키는 것도 주민으로서 제 할 일인 것 같아요."
마을 식탁 채우는 텃밭

▲충북 옥천군 감로리 배정연씨 ⓒ 월간 옥이네
마을의 즐거움을 위한 부부의 노력은 일상에서도 계속된다. 그중 하나가 매일 마을회관을 방문하는 것. 그날그날 텃밭에서 따온 작물로 식사를 준비해 이웃과 함께 저녁을 보낸다.
"이웃들과 주기적으로 저녁을 먹지만 꼭 그날이 아니어도 간단하게라도 함께 먹으려고 해요. 반찬이 될만한 것들을 텃밭에서 키우다 보니 재료비도 안 들고요. 무엇보다 같이 먹으면 더 맛있잖아요. 무릎 수술하고 농사를 많이 줄였는데, 나눠 먹는 재미에 완전히 그만둘 순 없겠더라고요." (배정연씨)
부부가 가꾸는 텃밭에는 10여 개가 넘는 작물이 자라고 있다. 노란 호박꽃이 텃밭 테두리에 자리 잡고 손가락만큼 자란 가지와 단단한 초록색의 방울토마토가 한자리에서 사이좋게 영글어 간다. 그 주변으론 겨울 김장으로 맛있게 버무려질 배추와 무가, 나물과 국으로 즐기는 쑥갓이 나란히 있다.
"배추는 집과 마을회관에서 먹는 김치로 담그는데, 올해는 무름병이 와서 상태가 안 좋아요. 더 나빠지기 전에 수확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어요." (김기태씨)
감로리에 오고 나서 본격적으로 농사짓기 시작한 부부. 어렸을 적 농사짓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자라온 터라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었지만 매년 극단적으로 바뀌는 기후 탓에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최근에는 길고 긴 가을장마에 예상치 못한 병충해가 생겨 고민이 깊어졌다. 수확 직전 찾아온 병충해라 더욱 가슴이 쓰라리지만 건강한 작물을 재배하기 위한 경험으로 삼는다.
"쉬운 농사가 어디 있겠어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랐지만 내년을 위한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일부는 건질 수 있으니 이렇게 자라 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김기태씨)
텃밭에는 배정연씨의 취향도 담겨 있다. 파릇파릇하게 자란 고수는 손이 살짝만 스쳐도 그 향긋함이 멀리 퍼져나간다.
"고수의 향긋함을 정말 좋아해요. 먹진 않지만요(웃음). 주변에 고수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나눠주는데, 고수 좋아하는 이가 많지 않아요. 텃밭에서 일하면서 중간중간 향 맡으려고 키우고 있어요."
오후 5시, 저녁 시간이 다가오자 배정연씨가 애호박을 따서 마을회관으로 향한다. 숭덩숭덩 썬 애호박을 튀김물에 묻히니 순식간에 호박전이 완성됐다. 마을회관 밖으로 퍼진 고소한 전 냄새가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주민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그렇게 하나둘 마을회관으로 모인 이들로 어느새 식탁이 꽉 찼다. 배정연씨는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다"고 서둘러 먹기를 권한다. 방금 기름에서 건진 호박전을 호호 불며 한입 크게 베어 문 주민들의 입에 웃음이 번진다.
바깥이 깜깜해질수록 더 많은 이웃들이 모여든다. 밭에서 있었던 일, 작물 시세, 날씨 얘기들로 마을회관이 시끌벅적해진다. 하루 동안 고생한 이들을 위해 배정연씨의 손이 더욱 바빠진다. 호박전으로 쌓여 있던 그릇이 바닥을 보이자 "간식 끝, 본격적으로 밥 먹자"고 말하며 식탁을 차린다. 그 말에 주민들도 일어나 배정연씨를 도와 저녁을 준비한다.
"제가 먹는 저녁에 양을 더 늘리는 것뿐이라 힘들지 않아요. 밥은 같이 먹을수록 더 맛있는 법이지요. 어르신들이 마을을 잘 가꾸어 놓은 덕분에 제가 여기서 살고 있는 거니까,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즐겁게 먹고 많이 웃는 것. 감로리에 살면서 하고 싶은 거예요. 우리 마을에 90대 어르신이 많은데, 주민들과 함께 즐겁게 살다 보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쑥갓 ⓒ 월간 옥이네
▲쑥갓 이렇게 먹어봤어요? 식욕 돋습니다
이주영
[제철밥상 -쑥갓나물]
김기태·배정연씨 부부가 텃밭에서 기른 쑥갓을 나눠줬다. 쑥갓의 진짜 맛을 보려면 나물로 먹는 게 가장 좋다며 만드는 방법을 알려줬다.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도 쑥갓나물이 가장 맛 좋다고 입 모아 말했다. 감로리 주민들이 알려준 '쑥갓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대로 쑥갓요리를 해봤다.
재료
쑥갓, 다진마늘 1/2스푼, 국간장 2스푼, 들기름 2스푼, 통깨 1스푼, 맛소금 2꼬집 (*스푼 기준: 성인 숟가락)
과정
1 굵은소금 넣은 물에 쑥갓을 살짝 데친다. 숨이 살짝 죽을 정도로만 데친다.
2 데친 쑥갓을 찬물에 헹군다.
3 쑥갓에 물기를 짠 후 다진마늘, 국간장, 들기름, 맛소금, 통깨를 넣고 버무리면 완성.
(알아두기, 다진마늘을 너무 많이 넣으면 쑥갓의 향을 헤칠 수 있다)
월간옥이네 통권 101호(2025년 11월호)
글·사진 김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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