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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들. 자료사진. ⓒ 연합=OGQ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물건을 좋아할까? 영상에서는 물건이 사람보다 시선을 끌고 때로는 물건이 사람을 연출하기도 한다. 영상을 보는 사람은 물건을 보며 잠시나마 삶이 바뀔지도 모르겠다(그게 아니라면 기분이라도)고 기대한다. 진지해질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느낌이지,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변화가 아니다. 우리는 물건이 주는 촉감, 식감, 컬러감, 길이감, 볼륨감, 만족감, 효능감 등등의 즉각적이고 단순한 '감'을 원한다.
도쿄 여행의 타이틀은 '주짓수 트립'이지만 주짓수 못지않게 나를 끌어당긴 건 일본의 물건이었다. 일본만큼 물건을 좋아하고 물건을 만드는 기술이 발달한 나라가 또 있을까? 일본인은 물건을 만들 때도 영혼을 담는다. 그래서 도쿄에 도착한 첫 날엔 곧장 도쿄 국립박물관으로 가서 공예품을 구경했고 마지막 날에는 일본의 명물인 다기에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로 갔다.
스페셜티(일정 등급의, 결점이 거의 없는 원두에서 정밀하게 추출한 커피)로 유명한 푸글렌은 노르웨이의 커피 브랜드다. 바 자리에 앉아서 이곳의 대표 메뉴인 커피 두 잔과 당고(경단과 비슷한 음식)를 시켰다. 여행 내내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제대로 된 커피를 마신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차분한 인상의 스태프가 원두를 갈기 시작했다. 나는 영상을 찍는다고 부산스러운데 커피를 준비하는 그가 더 조용하게 움직였다. 원두를 전동 기계가 아니라 수동 기계로 분쇄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전동 기계가 작동하면 열이 발생하고 그 열이 원두에 전달돼 커피 맛이 변질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렇다고 작은 핸드밀로 가는 게 아니라 금속의, 커다란 수동 기계를 체구도 작은 여성 스태프가 직접 돌렸다. 그렇게 분쇄한 원두는 거친 입자, 적당한 입자, 가벼운 입자 세 가지로 나뉘는데 이 중에 커피를 내리기에 가장 적합한 분말만 골라 썼다. 향을 맡아보라고 건넨 분말은 두말할 것 없이 향기로웠다. 곧이어 정성스럽게 내린 커피 한 잔이 옅은 잿빛 도자기에 담겨 나왔다.
물건이 자아내는 감각
그 무렵 말차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점령했다. 카페인 성분을 함유한 차라는 점에서는 커피와 크게 다를 게 없지만 말차 특유의 건강함, 그리고 예쁜 색감에 젠지들이 열광했다. 말차를 만드는 영상도 쏟아지다시피 했는데 영상의 팔할은 이른바 '도구발(도구에 따른 효과)'이었다.
완성된 말차를 담는 찻잔은 물론이고 분말을 옮겨 담는 스푼, 격불하는(말차를 빠르게 저어 거품을 내는 행위) 대나무 차선, 얼음을 독특한 모양으로 얼릴 수 있는 틀, 귀여운 집게까지. 말차 한 잔을 만드는 데 필요한 도구가 많게는 열 가지도 넘었다. 영상의 목적이 더 예쁘고 독특하고 기발한 도구를 보여주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물건이 자아내는 감각이 난무했다. 그 어지러운 감각 속에서 '저런 건 어디서 샀을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어느새 말차 만드는 영상에 홀린 듯 빠져들었다.
그동안 커피에 비해 인기가 없던 차는 의외로 전적이 화려하다. 이미 16세기 일본인을 열광케 한 적이 있다. 교토의 무사들은 와비사비, 즉 쓸쓸하고 초라한 가난의 문화를 유행시켰다. 그 유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차 선생이었던 센 리큐는 차가 와비사비의 정수를 담을 수 있는 아이템인 걸 알아차렸다.
그는 승려가 아닌데도 스님 옷을 입고 다닐 정도 그들의 수행 문화를 모방했는데 그중에서도 차에 깊이 감화됐다. 차를 끓여내는 프로세스, 음용법, 차 도구의 모양, 놓는 위치 등에 관한 규칙을 혼자서 만들어낸 걸 보면 그는 당시에 있지도 않던 개념인 라이프 스타일이나 브랜딩을 정확히 이해했던 것 같다.
와비사비의 핵심은 너무 완벽해도, 너무 부족해도 안 되는 아슬아슬함이다. 호화롭고 완벽한 중국산 다기는 와비차와 어울리지 않았고 대신 조선에서 수입한 이름 없는 도공들이 만든 사발이 눈에 들어왔다. 밥이나 국을 담던 사발은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나중에는 중국 명품보다 더 비싸게 팔렸다.
일본의 국보인 고려찻잔, '기자에몬 이도다완'은 당시 화폐 가치로 6억 원 상당에 거래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무소유, 가난을 추구하는 와비사비는 사실 부자들의 추구미('추구'와 '미'가 결합된, '추구하는 아름다움'이라는 뜻의 인터넷 신조어)일뿐 와비사비의 결핍을 구현하려면 풍요가 필수였다.
푸글렌의 도자기는 고려찻잔처럼 커다란 사발은 아니었다. 그러나 소박한 색상, 장식 없는 단순함, 거친 표면이 고려다완의 개성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그 사이 스태프는 두 번째 커피를 내렸고 새로 내온 잔의 붉은 빛을 일컬어 '노을색'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원래의 용도대로 차를 담으면 붉은색과 녹색의 대비가 매우 아름답다고 덧붙였다. 그는 나에게 "한국어로 노을을 뭐라고 하느냐?"라고 물었다.
갑자기 '노을', '해넘이' 같은 무난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일몰'이라고 대답했다. '일몰'은 '해가 진다'라는 뜻이며 직역하면 '태양의 몰락'이라고 설명했다. 그 말을 듣던 스태프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한 건 어쩌면 태양이 일본의 상징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여행이 끝난 데서 비롯된 감흥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걸까? 목적지가 없는 여행객의 쓸쓸함이 붉은 잔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소비의 감흥
한 달 뒤쯤 말차 음료에 관한 영상을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많은 도구가 필요했다. 예쁜 유리잔, 말차 분말을 섞는 전동 거품기, 음료를 휘젓는 용도의 스테인리스 리들러, 잔을 돋보이게 하는 코스터 등등. 그런데도 완성된 영상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는데 나중에 보니 소품이 아니라 검은색 테이블이 문제였다.
어떤 영상을 봐도 검은색 테이블은 찾아볼 수 없다. 검은색은 음료, 음식, 플레이트의 색상을 환하게 밝히는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영상에 등장하는 테이블은 무조건 흰색이며 가끔 원목이 등장하기도 한다. 어쩔 수 없이 거의 6년 만에 테이블을 바꿨는데 테이블을 바꿨더니 의자가 그에 어울리지 않아 덩달아 의자도 흰색으로 바꾸었다. 내친김에 음식을 만드는 과정도 찍고 싶었고 조리 공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보조 테이블을 하나 더 샀다(물론 흰색으로).
그동안 집을 꾸미기는커녕 청결만 유지하고 살았다. 여기에는 소비에 대한 회의도 있었다. 환경 문제가 심각한데 굳이 물건을 버리거나 새로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가구, 소품, 주방 기구, 그릇, 침구를 줄줄이 사들이는 광적인 쇼핑은 너무나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그에 따른 감정의 변화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비싸거나 기능성이 뛰어난 물건이 아니어도 물건이라는 것 자체, 정확히는 소비하는 행위에 따른 감흥이 있었다. 삶을 바꾸거나 태도를 바로잡기는 어렵고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만 소비의 감흥은 빠르고 단순하다. 한 사람의 개성, 일상의 단면을 빠르게, 집약적으로 보여주자면 물건을 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숨어 있다. 물건으로 고유한 개성과 스타일을 드러내고 싶어도 그것만큼 유행에 민감한 것이 없고 결과적으로는 빠르게 한물간, 식상한 결과물만 남는다. 이는 16세기에도 마찬가지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도자기를 팔 욕심에 임진왜란을 계획했을 정도로 도자기에 집착했다. 하지만 훗날 자신의 차 선생에게 할복을 명했고 센 리큐는 순순히 명을 받들었다. 그의 와비사비 철학과 라이프 스타일은 일본의 대표적인 생활용품 브랜드인 무인양품 등에 부분적으로 남았다.
매일 쏟아지다시피 하는, 무수한 물건에 위로받으며 사는 게 최선일까? 결핍을 다스릴 방도가 없다는 비관적인 생각을 하다가 마음을 다잡는다. 누구에게나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고, 보상은 보잘 것 없는데도 마음이 쓰이는 일이 있을 것이다. 감각에 의존하다가도 잊지 않고 그 일로 돌아간다면, 비록 결핍을 다스리진 못해도 더 이상 덩치를 불리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