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지난 10월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 이정민
"임성근 피고인은 공소사실을 부인하고 무죄(를 주장하는) 의견입니다." - 이완규 변호사(임성근 전 해병대1사단장 변호인)
잘못을 인정한 이는 말단 간부들뿐이었다. 수해 복구 작업에 투입됐다 순직한 채해병의 소속 사단장이었던 임성근 전 해병대1사단장은 첫 공판에서 모든 책임을 부인했다. 그의 변호인은 "업무상 과실치사 등에 있어 주의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라며 "피고인의 행위와 피해자의 사망 또는 상해 정도 간의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 명령을 위반한 사실도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장이 "피고인(임성근), 방금 변호인이 말씀하신 내용과 (입장이) 같나"라고 묻자, 임 전 사단장은 꼿꼿하게 허리를 편 채 "네"라고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중계법정(재판을 화면으로 볼 수 있는 다른 법정)에서 재판을 방청하던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원들 사이에선 짧은 탄식이 터져나왔다.
임 전 사단장 외에 박상현 전 7여단장과 최진규 전 포11대대장도 모든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업무상 과실"의 책임을 인정한 건 말단 간부였던 이용민 전 포7대대장과 장아무개 제7포병대대 본부중대장뿐이었다.
사단장·여단장·선임대대장 혐의 부인, 대대장·중대장만 인정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변호 맡은 이완규 변호사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변호를 맡은 이완규 변호사가 지난 10월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순직해병특검 사무실로 들어오고 있다. ⓒ 이정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재판장 조형우 부장판사)는 4일 오전 10시 채해병 사망의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를 받는 피고인들의 첫 재판을 열었다. 채해병 특검팀(이명현 특검)은 "합동참모본부와 제2작전사령부의 단편명령으로 작전통제권이 육군 제50사단으로 이양됐음에도 피고인 임성근은 수색 첫날부터 종일 현장을 직접 지휘하며 이를 위반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들은 수중수색이 진행되는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언론 홍보와 성과를 의식해 바둑판식 수색과 가슴장화 확보를 지시했고, 공세적으로 (해병대원들에게 수해 실종자들을) 수색하도록 압박했다"라며 "(이 과정에서) 피고인들은 구명조끼 등 안전장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이러한 업무상 과실이 결합돼 채해병 사망과 동료 상병의 상해라는 결과에 이르렀다"라고 설명했다.
임 전 사단장의 변호인 이완규 변호사(윤석열 정부 법제처장 출신)는 "공소사실을 부인한다"라며 "(임 전 사단장은) 소속부대의 장으로서 단편명령 범위 안에서 지원하는 일을 했을 뿐이다"라며 "작전통제권은 이양돼 있더라도 소속부대장은 범위 안에서 여러 업무를 지원·지도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피고인이 행하지 않은 행위, 예를 들어 가슴장화 (언급) 부분도 공소사실에 들어가 있다"라고도 했다.
특검으로부터 "임 전 사단장의 불명확하고 무리한 각종 수색지침을 (하급자에게) 전달했다"라고 지목된 박 전 여단장도 변호인을 통해 "수중수색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었으므로 이로 인해 발생한 사고에 대해 인과관계나 업무상 과실에 대한 책임이 없다"라며 "공소사실을 부인한다"라고 밝혔다. 사건 당시 대대장 가운데 선임이었던 최 전 대대장 측 변호인도 "제7포병대대에 대해 피고인이 지휘 감독할 의무가 없다"라며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이용민 "부하 지키지 못한 과실 인정, 본질은 임성근"

▲채해병이 속했던 해병대 1292기의 전역 날인 지난해 9월 26일 오후, 그의 대대장이었던 이용민 중령이 대전 현충원의 묘를 찾아 전역모를 전했다. ⓒ 김화빈
혐의를 부인하는 주장이 이어진 가운데, 채해병의 직속상관이었던 이용민 전 대대장은 자신의 혐의를 인정했다.
이 전 대대장의 변호인 김경호 변호사는 "피고인 이용민은 부하에 대한 생명 등을 지키지 못한 지휘관으로서의 과실을 이 법정에서 인정한다"라며 "피고인은 해병대1사단에서 신처럼 무소불위였던 자의 명령을 감히 어길 수 없었던 소극적 과실이 있고, 그로 인해 참담한 결과가 발생했다"라고 말했다. 다만 "이 사건의 절대·본질·적극적 (혐의) 사실은 공동 피고인 임성근에게 있으므로 특검이 50대 50으로 (이용민과 임성근의) 과실을 주장한다면, 그에 대해선 부인한다"라고 덧붙였다.
이 법정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책임을 반성하는" 지휘관도 있었다. 장 전 중대장은 "공소사실을 인정하느냐"는 재판장의 질문을 받고 "인정하고 반성한다"라고 답했다. 그의 변호인 또한 "피고인은 피해자들이 소속됐던 중대의 장으로 최말단 책임자에 해당하며 사건 당시 중대장 소임을 맡게 된 지 두 달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라며 "피고인은 장기간 수사를 받으며 깊은 죄책감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이어 "공판을 통해 밝혀질 것으로 생각되나 오랫동안 임 전 사단장과 나머지 피고인들은 이 사건 발생 원인으로 (지휘관 중) 가장 하급자인 피고인의 책임을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피고인은 부하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한 중대장으로서 부끄러운 마음이 들지만, 이 사건의 책임이 오롯이 피고인의 몫으로만 느낄 수 없음을 말씀드린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구체적 임무가 특정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안전에 필요한 물자 구비 등 사전 준비할 기회를 전혀 부여받지 못한 채 졸속으로 사건 현장에 출동하게 됐다"라며 "생소한 임무인데도 일체의 사전교육 없던 상황에서 상급자들은 심하게 질책하고 위험성 높은 수색을 지시했다"라고 강조했다.
재판장 "누가 수중수색 지시?", 특검 "불명확·무리한 지시, 부하들 혼동할 수밖에"

▲2023년 7월 29일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 체육관인 '김대식관'에서 열린 고 채수근 상병 영결식에서 해병대원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피고인들의 의견을 청취한 조 재판장은 특검 측에 "수중수색을 명시적으로 지시한 피고인이 누구냐"라고 물었다. 특검의 이승철 검사는 "피고인 임성근, 박상현의 경우 수중수색으로 오인·혼동할 수밖에 없는 불명확하고 무리한 지시를 했다"라며 "(이에 따라) 피고인 최진규, 이용민, 장○○은 수중수색으로 인식하고 이를 (일선에) 지시했다"라고 답했다.
증인채택 등 쟁점을 정리한 조 재판장은 "이 사건 이후 정치적으로 많은 일들이 벌어지긴 했지만 그런 일련의 사건들은 이 사건의 결론을 내리는 데 관계가 없다"라며 "3일간 있었던 일로 아주 불행한 결과가 발생했다. (이 재판은) 그 결과에 맞는 형사 책임을 어느 한도까지 누가 책임질 것인지를 판단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2차 공판은 오는 15일 오전 10시 진행되며 사고 현장에 있던 해병대원 2명이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재판부는 사건의 쟁점인 '바둑판식 수색지침과 가슴장화 확보 지시가 수중수색으로 이어졌는지'를 증인신문을 통해 확인할 계획이다.
채해병은 2023년 7월 19일 경북 예천군 수해 현장에서 실종자 수색 작업을 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다. 특검은 임 전 사단장의 구체적 수색 방법 지시가 무리한 수중수색으로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그가 단편명령(해당 작전통제권의 육군 이양)도 어겼다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이명현 특검이 지난 11월 28일 서울 서초구 특검 사무실에서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