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국회에서, 광화문에서, 남태령에서, 헌법재판소에서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여전히 한국 사회 곳곳에서 반짝이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12.3 내란 사태 1년을 맞아 탄핵 광장에서 맺어진 시민들의 인연을 기록합니다.

▲직장인 화실련(활동명), 대학생 정플룻(활동명)·정항아(활동명)씨가 2일 오후 거리 강의가 진행됐던 서울고용노동청 앞에 각자의 깃발과 악기를 들고 다시 모였다. ⓒ 전선정
"공통점이라곤 윤석열을 싫어한다는 것뿐"인 20여 명이 지난 7월 12일 오후 3시, 금속노조 주얼리분회와 이랜드노조의 농성 투쟁이 열리는 서울고용노동청 앞에 모였다. 이들은 이날 이후 8월 2일까지 주말마다 모여 약 2시간 동안 각자의 지식과 관심사를 공유했다. 일종의 거리 강의였다.
하필 "차 움직이는 진동까지 느껴지는 아스팔트 위"를 강의 장소로 택한 이유는, 처음 서로 알게 된 곳이 윤석열의 12·3 내란 사태 이후 "길바닥"이었기 때문이다. 또 "사람이 없으면 쫓겨난다"는 노조의 투쟁 현장과 연대하기 위해서였다.
"윤석열의 12·3 내란 사태 이전에는 집회하시는 분들을 보고, 의미가 있을까 의문을 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의미가 있고 없고를 떠나, 우리가 살아있고 우리가 이렇게 실존한다는 것을 집회로서 표현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언젠간 누구든 우리의 이야기를 듣게 될 거니까. 그리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언젠간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 대학생 정항아(활동명)씨
<오마이뉴스>는 지난 2일 이 강의 모임을 주도한 직장인 화실련, 대학생 정플룻·정항아(세 명 모두 활동명)씨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만났다. 지난 겨울 광장에서 혹독한 한파를 겪었던 이들에게 서울고용노동청 앞은 거리 강의를 이어가며 함께 폭염을 마주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들은 "광장에서 나와 다른 정체성을 가진 타인과 연대하는 법을 배웠다"라며 "광장의 열망과 바람을 어떻게 현실에서 실현할지가 남은 과제"라고 강조했다.
노조 이해 못하던 대구 출신 대학생, 어쩌다 이곳에?

▲지난 7월 12일 진행된 거리 강의에서 한 참석자가 뜨개질을 하며 삽주뿌리(활동명)의 '유니코드와 한자표준' 강의를 듣고 있다.
ⓒ 정항아씨 제공
12·3 내란 사태 이전, 대구 출신 항아는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항아는 "나고 자란 곳에서 노조를 악마화하고, 박정희와 같은 정치인들을 칭송하는 기조가 있다 보니 보이는 대로 생각했다"라며 "노조를 보면, '왜 저 사람들은 되지도 않을 쓸데없는 집회를 부지런히 하지'라고 생각했다"라고 털어놨다. 그랬던 그의 생각이 달라진 건, 한 친구의 제안으로 윤석열의 계엄 선포 후 열린 집회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항아는 "집회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농성을 하며, 사측과 싸우고 있는 노조의 각종 지회·지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몰랐던 게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라며 "어쩌면 그들의 상황을 나도 마주할 수 있겠다는 점을 현장에서 몸으로 느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세종호텔 지부에서 해고자 복직 투쟁을 하고 있는데, 고공 농성 중인 고진수 지부장님이 조리사다"라며 "나도 조리학과고, 이후 취직할 호텔의 직군 중 비정규직 비율이 높다보니 '내 미래가 될 수도 있겠다, 무시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설명했다.
화실련은 지난 2016년부터 직접 만든 개인 깃발을 들고 박근혜 퇴진 집회에 참여했던 디자인 업계 직장인이다. 그는 "1년 전 계엄이 터지고 나서, 8년 전 그 광장이 또 열릴 거라고 느꼈다"라며 "이번에 열렸던 광장에서도 개인 깃발을 들고 집회에 참여했고, 암흑 속에서 깃발들의 물결을 보며 감동했다"라고 떠올렸다. 플룻은 평소에도 노동 문제에 관심이 있던 대학생이자, 이랜드 산하 패밀리 레스토랑의 근무자이다. 그는 "영화 <카트>를 보며 노동 문제에 대한 관심을 키워왔다"라며 "최근에 취업하며 본격적으로 노조 활동을 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광장 한쪽에서 개인 깃발을 들고, 악기를 연주하며 친해졌다. 윤석열이 석방됐던 지난 3월, 이들은 "맨날 집회에서 얼굴을 보던 사람들에게 말 한 마디 안 거는 것도 이상하다"라고 생각해 서로에게 말을 걸었다.
멋들어진 곳에서 모이려다 농성장 택한 이유

▲화실련(활동가)의 지난 7월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의 거리 강의 모습. ⓒ X(옛 트위터) 갈무리
한 달 후, 항아는 "집회가 아니었으면 만나지 않았을 텐데 각자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자리를 가지면 재밌을 것 같지 않나요?"라고 제안했다. 모두가 강의자이자 수강생이 되는 '강의 공동체'를 지속해보자는 취지였다. 화실련도 "집회 참여자들이 자유 발언을 하는 것을 보고, 각자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라며 호응했다. 이런 아이디어를 들은 플룻이 모임 이름을 '꿈배움터'로 정하고, 동참할 사람들을 X(엑스·구 트위터)로 모집했다.
지난 4월 8일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이 개설됐고, 고등학생·대학생·직장인 등 70여 명이 모였다. 초반에는 강의 장소로 "스터디 카페" 등이 거론됐다. 하지만 5~6월 이랜드 노조와 금속노조 주얼리분회가 차례로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농성에 돌입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 이들은 농성장을 강의 장소로 정했다.
플룻은 "농성장에 텐트·천막을 설치해 두는데, 그 안에 사람이 없으면 불법 건조물이라 경찰 측에서 들고 간다"라며 "그래서 항상 노조원들이 있어야 하는데, 주말에는 노조원들도 집에 들러야 하니까 우리가 대신 그 자리에 머무르자는 생각도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애초에 우리가 다 길바닥에서 만났는데 이제 와서 멋들어진 데서 모임을 하는 것이 웃기다는 생각도 들었다"라며 "모임원들에게 '다들 길바닥에서 농성장 지키며 강의하시는 거 동의하시나요?'라고 물었는데, 다들 흔쾌히 '좋다'고 했다"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7월 12·20·27일, 8월 2일 오후 3부터 5시까지 꿈배움터란 이름으로 거리 강의가 진행됐다. 화실련은 2016년부터 이어진 개인 깃발의 역사를, 조리학과인 항아는 궁중 음식을, 플룻은 평소 관심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를 주제로 강의했다.
화실련은 "길바닥에 앰프 하나 깔아놓고 강의자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강의했고, 청강자들은 그늘막에 널브러져 앉아 한 마디씩 했다"라며 "다들 잘 들리지도 않는 데 열심히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바로 옆 대로변에서 차 움직이는 진동 소리까지 느껴졌다"라며 "(농성자들이) '이렇게 힘든 곳에서 버티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라고 덧붙였다.
폭염이 지속되고 서울고용노동청 앞 두 농성이 7월과 11월로 일단락되며 이들은 새로운 강의 장소, "또다른 농성장"을 찾고 있다.
"광장에서 경험한 미래, 이젠 실행할 때"

▲지난 7월 12일부터 8월 2일까지 진행된 꿈배움터의 강의 모임 시간표. ⓒ 꿈배움터
이들은 "꿈배움터로 광장의 물결을 이어나갈 수 있어 뿌듯했다"라면서도 "윤석열이 파면됐지만 광장에서 지적된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플룻은 "내란죄 재판은 질질 끌리고,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않고 있다"라며 "현 정부를 구성하는 정치세력이 사회대개혁을 정말 원했던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소수자는 아직도 정체성·지향성을 숨기고 살아가야 하고, 노동자들은 죽거나 해고 당하고 있다"라며 "지금 정치인들은 사회적 소수자를 응원봉이라는 상징에 가둬놓기만 하고, 정책이나 입법적인 측면에서 변화를 이뤄내지는 않는 것 같다"라고 비판했다.
항아는 "빛의 혁명으로 이룬 정부, 국민이 만든 정부라는 수식어를 사용하고 싶다면, 소수자도 국민으로 수용해야 한다"라며 "탄핵 집회가 열렸을 때는 어떤 요구든 들어줄 것처럼 굴어놓고, 막상 윤석열이 탄핵된 후로는 막연한 약속만 할 뿐, 해결된 게 아무것도 없다고 느낀다"라고 짚었다.
화실련도 "광장의 엄청난 열망과 바람은 직장 문턱 앞에서 딱 끊어졌다"라며 "그걸 외치는 사람들이 아직도 광장에, 거리에 남아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 활동가가 '우리는 이미 광장에서 미래를 봤다. 봐버렸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면 된다'고 말했다"라며 "이 말처럼 우린 이미 광장에서 차별 없는 공간을 체험했다. 그 공간을 응축했던 구호가 사회대개혁이기 때문에, 이제 실행을 할 때라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내란 저지 1년, 광장의 인연]
① 광장에서 돋보이던 그 피켓, '#계엄뒤질래 방'에서 탄생했습니다 https://omn.kr/2g9ft
② 남태령 가며 다이소 털던 우리, 이제 함께 책 읽습니다 https://omn.kr/2g91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