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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곡습지 전경과 시민단체 현수막 공사 펜스 너머로 훼손된 습지와 텃밭 흔적이 드러난다. “부천의 마지막 습지, 단 한 평도 매립 용납 못 한다”는 현수막이 매립 계획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발을 보여준다.
역곡습지 전경과 시민단체 현수막공사 펜스 너머로 훼손된 습지와 텃밭 흔적이 드러난다. “부천의 마지막 습지, 단 한 평도 매립 용납 못 한다”는 현수막이 매립 계획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발을 보여준다. ⓒ 임정우

지난 11월 29일, 정문기 도시숲시민모임 공동대표와 함께 부천시 역곡동 역곡습지 인근을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흙먼지에 젖은 공기 속에서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잘린 나무들의 흔적이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이곳을 채웠다는 20년 남짓된 버드나무와 벚나무는 대부분 사라졌고, 붉은 흙더미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포크레인의 바퀴 자국은 아직 단단히 굳지 않은 채 무겁게 찍혀 있었고, 앞으로 이곳을 뒤덮을 성토의 윤곽이 이미 바닥에 그려져 있는 듯했다.

그런데 이 거친 풍경 한가운데에서 예상치 못한 생명이 눈에 띄었다. 둥글게 패인 저지대의 물웅덩이 속에서 작은 수생곤충이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었고, 미나리 군락이 옅은 초록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정 대표는 물가에서 걸음을 멈추며 "물 냄새 한번 맡아보세요. 완전히 맑아요. 이런 곳이 습지가 아니라고 하면 도대체 무엇이 습지인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현장의 물은 분명히 산에서 흘러내려오고 있었다. 흘러내린 물이 일정하게 공급되고, 지형의 높낮이가 물길을 자연스럽게 나누며, 흘러내려오는 물을 따라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포크레인이 지나간 흔적 습지 바닥을 깊게 파고 지나간 중장비의 자국. 이 권역은 맹꽁이가 해마다 산란해온 곳으로 알려져 있어, 공사 흔적이 생태 교란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포크레인이 지나간 흔적습지 바닥을 깊게 파고 지나간 중장비의 자국. 이 권역은 맹꽁이가 해마다 산란해온 곳으로 알려져 있어, 공사 흔적이 생태 교란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임정우

역곡 '습지'인가, 빗물웅덩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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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시민들이 '역곡습지'라고 부르는 공간이다. 그러나 현재 LH는 이 지역을 '근린공원 조성'이라는 이름 아래 성토해 평평한 인공지형으로 바꿔 놓을 계획을 추진해 왔다. 일정은 이미 촘촘히 짜여 있다. 2025년 12월 사전청약을 맞추기 위해 공원을 포함한 공공주택지구 전체의 토공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역곡습지 일대는 자연습지가 아닌 '생태공원'이라는 이름의 인공조성 공원이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생태 전문가들이 이곳에서 맹꽁이의 안정적인 서식을 확인하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맹꽁이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여름철 번식기에 물이 고이는 얕은 습지와 주변의 숲·수풀, 그리고 서식지가 서로 이어지는 생태축이 모두 필요하다.

즉, 그저 물웅덩이가 아니라, 도시에서는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자연습지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란 얘기다. 정 대표는 "여기엔 뱀도 산다"며, "최상위 포식자가 있다는 건 이 아래 생태계가 층층이 받쳐지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생명다양성재단의 성민규 연구원 역시 "부천의 마지막 남은 자연습지에서 맹꽁이와 가재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곳이 단순한 웅덩이가 아니라 수십 년간 형성된 복잡한 생태계라는 증거"라고 지난 11월 24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 있다.

역곡습지에서 지난 7월 26일 관찰된 살모사 역곡습지에서는 다양한 양서파충류의 모습이 관찰된다. 뱀과 같은 상위 포식자가 있다는 사실은 역곡습지의 생태가 다양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역곡습지에서 지난 7월 26일 관찰된 살모사역곡습지에서는 다양한 양서파충류의 모습이 관찰된다. 뱀과 같은 상위 포식자가 있다는 사실은 역곡습지의 생태가 다양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 도시숲시민모임

여름철 포획틀에서 폐사한 맹꽁이들

그러나 올여름 이곳에서는 맹꽁이 수십 마리가 폐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공사 전 포획·이주를 위해 설치된 포획틀 일부가 집중호우로 물에 잠기면서, 맹꽁이들이 포진망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집단 폐사한 것이다.

해당 포획 작업은 LH가 공원부지 성토를 진행하기 앞서 법적 보호종인 맹꽁이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 위해 시행한 조치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조치가 여러 마리의 맹꽁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으로 보인다.

시민들이 당시 상황을 촬영해 제보하자, 환경청은 "관련 폐사 사실에 대한 공식 보고는 접수되지 않았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정 대표는 "포획틀이 왜 그런 위치에 설치되었는지, 어떤 업체가 어떤 방식으로 포획을 진행했는지, 포획 이후의 관리와 이주가 적절했는지는 여전히 확인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 곳에서 10마리, 다른 곳에서 7마리… 이런 식으로 계속 시체가 나왔다"며 "그런데 일주일 뒤 다시 가보면 시신이 사라져 있었다"고 주장했다.

지난 7월 19일 포획틀에 잡혀 집단 폐사한 맹꽁이 빗물에 잠긴 포획장치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수십 마리가 한 곳에 쌓여 있었다.
지난 7월 19일 포획틀에 잡혀 집단 폐사한 맹꽁이빗물에 잠긴 포획장치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수십 마리가 한 곳에 쌓여 있었다. ⓒ 정문기

LH, 시민단체 의견 '일부 수용'… 여전히 "습지는 아니다"

논란이 커지자 LH는 기존 계획을 일부 조정해 지난 12월 2일 부천시에 공문을 보냈다. 공문에는 "시민단체에서 주장하는 습지 구간은 성토에서 제외하겠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당초 시민단체의 현수막 '마지노선' 너머까지 포함해 저지대 전체를 매립하려던 계획이 일부 후퇴한 것이다.

그러나 같은 공문에서 LH는 "환경영향평가 협의 결과 해당 지역은 습지보호구역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기존 판단을 재차 명시했다. 환경영향평가 협의는 이미 2021에 완료된 것으로, LH는 이를 근거로 역곡습지는 습지가 아니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LH는 이어 공문에 "맹꽁이 포획·이주는 이미 10월 말 완료"됐다고 덧붙였다.

부천시와 역곡습지에 남은 숙제

펜스를 따라 다시 걸어 올라오며 뒤돌아본 습지는 오후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어린이집 담벼락에 걸린 아이들의 맹꽁이 그림도 바람에 흔들렸다. 맹꽁이, 가재, 황조롱이… 올여름 역곡을 찾아온 생명들이 내년에도 돌아올 수 있을지는 결국 도시의 선택에 달려 있다. 시민단체가 지키려 한 핵심 구역은 간신히 남았지만, 습지 전체의 생태적 연속성을 보전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런 가운데 시민단체는 이번 논란이 "단지 올해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역곡 일대를 습지로 명시한 기록은 이미 23년 전에도 존재한다. 2000년대 초 산울림청소년센터 건립 당시 반딧불이 서식이 확인되자 환경단체의 반발이 이어졌고, 이에 부천시는 설계를 변경하며 "이 지역을 생태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문서를 남긴 바 있다. 해당 문서에는 역곡 일대를 '습지'로 표현한 대목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도시숲시민모임 공동대표 정문기씨는 "LH가 일부 보전 조치를 반영한 점은 환영한다"면서도 "그러나 이곳이 습지가 아니라는 주장만큼은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20여 년 전 부천시 스스로 이 지역을 습지라고 기록했고, 그때도 생태공원을 약속했다"며 "도시숲시민모임은 역곡이 진정한 생태 습지 공원이 되도록 공원 계획 지침을 바꿀 것을 요구하며 앞으로도 계속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

어린이가 그린 ‘습지를 지켜요’ 티셔츠 역곡습지 보전을 요구하는 지역 주민과 어린이들의 메시지가 적힌 티셔츠. 시민단체는 훼손된 습지에 아이들이 직접 그림을 그린 옷을 걸어두며 현장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어린이가 그린 ‘습지를 지켜요’ 티셔츠역곡습지 보전을 요구하는 지역 주민과 어린이들의 메시지가 적힌 티셔츠. 시민단체는 훼손된 습지에 아이들이 직접 그림을 그린 옷을 걸어두며 현장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 임정우



#부천#역곡습지#습지#맹꽁이#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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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우 (jjwl) 내방

환경과 생명을 살리는 일에 대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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