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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제 정말 사람들이 글쓰기를 더 안 하겠다. 알아서 너무 잘 써주는데?"
AI로 '자기소개서'를 써보던 남편의 말입니다. 남편은 평소 글쓰기를 별로 하지 않고, 매우 어려워하는 편이었는데요. AI 덕분에 훨씬 빠르고, 편하게 '자기소개'를 할 수 있었답니다. 물론 저도 덕분에 편해졌습니다. 남편의 글쓰기를 대신해 줄 필요가 없게 되었으니까요.
AI가 나보다 훨씬 더 나를 잘 소개해 주는 시대, 이제 정말 글쓰기는 할 필요가 없어질까요? 23년간 방송 작가로 글을 써온 저는 여전히 글쓰기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 해야 합니다. 글쓰기가 지닌 가장 강력한 '생각하는 힘'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글쓰기를 싫어하는 이유는 뭘까요? 생각하는 것이 귀찮고 힘들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쓸지 정하고 그에 맞는 소재를 선택하고 어떤 순서로 구성할 것인지, 맞춤법에 맞게 문장을 만들어내는 일련의 과정은 복잡하면서도 많은 생각이 필요합니다. 그게 참 귀찮습니다. 그 귀찮은 일을 대신해 준다면 얼씨구나 하겠죠. 그렇게 쉽게 순응해서 글쓰기를 맡기는 사람과 그럼에도 생각해서 글을 쓰는 사람 사이에는 격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글쓰기로 배우는 자기효능감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글쓰기 ⓒ hannaholinger on Unsplash
초등학교 아이들 글쓰기를 가르칠 때의 일입니다. 평소에 잘 안 쓰는 낯선 단어를 사용해서 짧은 글을 짓는 숙제를 냈는데, 그중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제가 보기에도 감탄할 만한 훌륭한 글을 써왔습니다. 더욱 감동인 것은 아이의 엄마가 전해준 이야기였습니다. 그날따라 숙제하겠다고 방에 들어간 아이가 꽤 긴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더랍니다. 한참 후에 방을 나온 아이는 말했습니다.
"이번 숙제는 너무 힘들었는데, 너무 뿌듯하다."
그 아이의 방에서 일어났을 과정을 상상해 봤습니다. 아이는 처음 보는 단어가 너무 어려워서 그 뜻을 정확히 알기 위해 공부했을 겁니다. 그 단어가 쓰일 법한 문장을 만들어냈을 테고, 가장 잘 표현하는 문장을 골랐겠죠. 어색한 표현을 몇 번이고 고치면서 다시 썼을 겁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귀찮고 힘들었을까요. 몸을 배배꼬기도 하고 몇 번이고 방 밖으로 탈출하고 싶었을 테지만 그 고비를 넘기고 마침내 문장을 완성해 냈을 때의 그 뿌듯함과 자기 효능감. 아이는 글쓰기를 통해 그걸 느꼈던 겁니다. 물론, 그렇게 몸과 머리로 익힌 단어는 절대 잊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쉽다고, 편하다고, 귀찮다고 AI에게 떠넘겨버리면 그런 생각하는 힘을 키울 수 있을까요?
글쓰기로 나를 돌보고, 치유하는 사람들
AI 글쓰기가 대신할 수 없는 또 다른 힘은 자기 돌봄, 자기 치유의 힘입니다. 글쓰기를 한다는 것은 자신을 더 사랑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게 돕는다는 뜻입니다. 저는 1년 넘게 온라인 무료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무료로 운영할 수 있는 것은 이분들이 글쓰기를 통해 보여주는 눈부신 변화 덕분입니다.
A님은 글쓰기를 너무나 사랑한다고 수시로 고백하는 50대 여성입니다. 최근 쓴 글에서는 글쓰기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전하셨는데요. 그동안은 친정엄마가 보내 주시는 먹거리를 손질하고 식구들 삼시세끼 밥해 먹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상이었지만, 글쓰기 모임을 한 이후 달라졌다고 합니다. 친정 엄마가 보내주시는 각종 농산물은 글 쓸 시간을 방해 받지 않을 만큼만 받게 될 정도로 글쓰기가 중요해진 겁니다.
엄마의 마음을 거절하는 것이 너무 어렵고 힘들었다는 A님. 엄청난 양을 늘 주시는 그대로 받곤 했는데 처음으로 거절을 선택한 자신이 낯설었지만 그 마음이 또 산뜻 하더랍니다.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 유독 힘들었던 A님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일이 점차 익숙해졌습니다. 성인이 된 딸은 그 글을 읽으며 처음으로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되고, 글을 통해 온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죠.
변화는 또 있습니다. 직장에는 유독 A님을 힘들게 하는 상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일이 힘들어서라면 모를까, 이 상사 때문에 직장을 그만둔다면 후회할 것 같아 참기만 하던 와중에 글쓰기를 만났습니다. 글쓰기로 억울했던 마음을 토해내며 가벼워졌습니다. 무작정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이 오해한 일도 있고, 지나치게 크게 받아들였던 것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계속 직장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 변화는 가정에도 찾아왔습니다. 그 상사가 싫고, 힘들었던 부분을 적다 보니 자신도 어느 정도 닮은 면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 뭡니까. 덕분에 아이들에게 불만이 생겼을 때 내가 싫어했던 점을 반면교사 삼아 입을 다물고, 먼저 귀를 여는 좋은 엄마가 되어가는 중이라고 합니다.
글쓰기의 힘을 믿기에
메타인지가 중요한 시대라고 말하죠. 자기 자신을 아는 데 있어 글쓰기는 최고의 수단입니다. 게다가 글을 쓰다 보면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보이게 됩니다. 글을 쓰면서 누군가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사랑하게 되는 거죠. 단어와 문장을 다듬으면서 나의 삶도 정돈해 나가게 됩니다. 더 좋은 사람이 되는 방향으로 말입니다.
글쓰기 강의를 할 때면 "~해야겠다"라는 말로 글을 끝내지 말라고 말씀드리곤 했습니다. 이제는 그 말을 하지 않습니다. 지켜지지 않을 걸 알면서 또 한 번 하고 마는 결심,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다짐이 담겨 있음을, 그게 글쓰기의 힘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AI 글쓰기가 편하고 좋다고 해도 글쓰기는 계속될 것이고, 계속되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