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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3일 오전, 서산시청 앞 성일종 국회의원(국민의힘) 사무실 앞에 시민들이 다시 모였다.
12월 3일 오전, 서산시청 앞 성일종 국회의원(국민의힘) 사무실 앞에 시민들이 다시 모였다. ⓒ 김선영

12월 3일 오전, 충남 서산의 바람은 1년 전 그날처럼 날카로웠다. 옷깃을 파고드는 한기는 대한민국 헌정사가 벼랑 끝에 섰던 '12.3 비상계엄'의 서늘한 기억을 소환하기에 충분했다. 서산시청 앞과 성일종 국회의원(국민의힘) 사무실 앞에 시민들이 다시 모였다.

이날 서산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주최한 '계엄 1년 책임자 규명 기자회견'은 단순한 성토의 장이 아니었다. 혹독한 겨울을 함께 건너온 시민들이 무너질 뻔했던 민주주의를 지켜낸 '그날'의 기억을 되새기는 자리였다.

버스 안 '김밥'에 섞인 두려움과 연대

 2025년 3월 29일, 광화문에는 여전히 겨울바람이 불고 있었다. 분열의 광장 위, 시민들은 침묵 대신 깃발을 들었다.
2025년 3월 29일, 광화문에는 여전히 겨울바람이 불고 있었다. 분열의 광장 위, 시민들은 침묵 대신 깃발을 들었다. ⓒ 김선영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임을 위한 행진곡'이 서산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자, 참석자들의 눈가는 이내 젖어 들었다. 기자의 뇌리에도 1년 전 주말마다 광화문으로 향하던 전세버스의 풍경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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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서산, 태안, 당진의 시민들은 생업을 뒤로하고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직장인, 학생, 아이 손을 잡은 주부, 머리가 희끗한 노인까지 다양했다. 왕복 5시간이 넘는 고단한 여정 속에서 시민들을 하나로 묶은 것은 '미래세대에게 부끄러운 역사를 물려줘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이었다.

버스 안에서 누군가 던진 "꼭 소풍 가는 기분이네"라는 농담 뒤에는, 군화 발에 짓밟힐지도 모른다는 원초적 공포가 숨어 있었다. 그러나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낯선 이들이 서로 눈을 맞추며 김밥과 가래떡을 나눌 때, 그 두려움은 '연대'라는 단단한 옹벽으로 바뀌었다.

광장에서 터져 나온 "탄핵 가결"의 함성, 그리고 옆 사람을 끌어안고 흘렸던 뜨거운 눈물. 이날 모인 시민들은 "그날의 눈물과 함성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는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자유는 누군가 지켜낸 것'이라는 명제가 서산의 거리에서 다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결정적 순간에 지역 대표는 없었다"

 남현우 변호사 (서산태안환경연합 대표)
남현우 변호사 (서산태안환경연합 대표) ⓒ 김선영

회상은 짧았고 비판은 매서웠다. 이날 시민사회는 '기억'을 넘어 '책임'을 물었다. 타깃은 지역구 국회의원인 성일종 의원이었다.

남현우 변호사는 "비상계엄 시도는 민주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중대한 사건이며,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핵심 책임자에 대한 단죄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군 동원과 계엄 발령 과정 전반에 대한 철저한 법적 판단과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애란 서산태안당진 촛불행동 공동대표
김애란 서산태안당진 촛불행동 공동대표 ⓒ 김선영

김애란 서산촛불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역시 "12.3 계엄은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내란 행위였음에도 1년이 지나도록 책임자 단죄가 요원하다"며 "이를 방조하거나 침묵한 정치 세력은 역사 앞에 유죄"라고 규정했다.

특히 성일종 의원이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표결과 대통령 탄핵 소추안 표결에 모두 불참한 사실이 도마 위에 올랐다. 김종현 서산풀뿌리시민연대 대표는 "시민과 국회가 온몸으로 헌정 파괴를 막아내던 절체절명의 순간, 성 의원은 현장에 없었다"며 "국가의 운명을 가를 표결에 불참한 사람이 과연 지역을 대표할 자격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성일종 의원실 측은 "비상계엄 선포 당시 성 의원은 국회 국방위원들과 함께 일본 출장 중이어서 물리적으로 본회의 참석이 불가능했다"고 해명했다. 탄핵 표결 불참에 대해서도 "당론에 따른 결정"이었다며 "초기부터 계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고 내란 동조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김종현 (서산풀뿌리시민연대 대표)
김종현 (서산풀뿌리시민연대 대표) ⓒ 김선영

기억하지 않으면 역사는 반복된다

그러나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물리적 부재보다 뼈아픈 것은 '정치적 부재'라는 지적이다. 시민들이 칼바람을 맞으며 광장을 지킬 때, 지역 정치인은 절차적 사유와 당론 뒤에 숨어 있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그날 현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기자에게 "역사적 현장에 함께 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다. 탄핵 찬성 집회에 함께하지 않은 사람들은 오늘 우리가 왜 울었는지 모를 것"이라며 "그래도 우리가 목청껏 외친 함성이 우리의 평온한 일상을 지켜냈다는 사실만은 잊지 말아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1년 전 겨울, 광화문의 함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법적 공방과 정치적 셈법이 난무하는 여의도와 달리, 서산의 시민들은 '기억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있었다. 책임 규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계엄#탄핵#내란#성일종#뜨거운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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