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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란이 일어난 지 1년이 되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아직도 수습되지 않은 것을 보면, 망가지는 순간은 짧지만 돌이키는 일은 항상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일부 노인 세대와 젊은 세대의 극우화가 진행되는 이 시대에, 내란의 밤에서 희망을 느끼고도 내란을 일으킨 자를 풀어줄 때 다시 주저앉는 마음을 추스르기란 힘들었다. 밥벌이의 서러움 속 출근길에도 머릿속을 맴도는 답답함은 민주적 사고를 가진 대부분의 국민이라면 이루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눈 오는 날 아이들이 응원봉을 들고 '키세스(Kisses)'처럼 눈을 맞으며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민주화 운동에 나섰던 국민들이 떠올랐다. 민주 국민들이 목숨을 걸고 피를 흘리던 그때에도 한쪽에서는 끊임없이 '빨갱이' 타령을 해댔고, 그들의 희생은 지금까지도 폄하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역사의 흐름을 몇백 년 거슬러 올라가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가 얼마나 많았던가? 결국 몇몇 선구자들이 그 정신을 이어받고 군중의 힘을 밀어 주었기에 지금의 국가가 유지되는 것이다. 그만큼 난세에는 선구자의 등장이 중요하다.

▲123탄핵집회해학이 담긴 깃발을 들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 박찬희
이번 내란의 선구자는 리더의 이끌림이 아니라, 응원봉을 들고 눈을 맞으며 버틴 젊은 아이들이었다. 민주화의 선배들은 정신적으로 버틸지라도, 이제는 체력으로 민주주의를 지키기 어려워졌다. 그들도 젊은 시절 같은 자리에서 싸웠으나 사법 세력에 무너질 뻔한 순간, 지켜준 것은 민주 청년들이었다.
우리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무너지지 않은 국민의 행동이었다. 그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움직인 것이다. 피의 나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마음,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대의를 이성적으로 따져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 뛰어나간 부모들의 선구적 행동과 눈 오는 날 청년들의 결단이 내란을 막았다.
히틀러의 나치당 초기 지지율은 미미했다. 그러나 대공황 이후 어려운 경제를 틈타 극우가 절정으로 치솟으며 전 세계가 피해를 보았다. 우리가 지켜야 할 상식적 세상을 다음 세대로 이어 전달해야 하는 이유다. 민주주의 선배들의 정신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세대의 책임이 이런 사태를 만든 것이다.
우리가 우리를 지켜냈다는 사실은 기쁘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를 지킬 일에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민주교육과 시민성을 가르쳐야 한다. 이제는 시대성을 반영한 새로운 교육이 필요하다. 우리 아이들이 글을 읽기 시작할 무렵, 10년 전쯤 아이들에게 <손바닥 헌법책>을 하나씩 쥐여 준 적이 있다. 부모로서 정치적 이념을 주입하기보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길 바라며 챙겨 준 것이었다.
계엄이 터졌을 때 아이들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탄핵의 날, 아이들과 함께 국회 앞에 섰다. 이렇게라도 알려 주는 것 말고는 앞으로의 삶, 아이들의 삶이 나아질 방법이 있을까 싶었다. 민주주의는 화를 내야 지킬 수 있다. 게으르게 지킬 순 없다. 나의 부모가 산업화 시대에 열심히 일해 지금의 경제를 일군 것처럼, 아이들이 해학의 깃발을 들고 나온 것처럼, 그렇게 나도 부모가 되어 간다.

▲탄핵의 날 해학의 깃발탄핵의 날 해학의 깃발을 보며 희망을 찾을 수 있다. ⓒ 박찬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