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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 주말농장을 분양받았다. 배추와 고구마를 심어 보는 농사였다. 회사 퇴근 후 시간이 날 때마다 밭에 들렀고, 주말에는 잡초를 뽑거나 땅을 고르며 한 계절을 보냈다. 잘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작물의 상태가 조금만 달라져도 불안함이 올라왔지만, 그 과정 자체가 머리 속에 쌓인 생각들의 고단함을 잊게 하기에 충분했다(관련 기사 :
엉킨 생각이 잠잠해지는 공간).
그 밭에서 몇 달 동안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던 가족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와 그 엄마였다. 그들은 늘 함께 나왔고, 상추와 무가 심어진 밭에서 하나씩 살피고 다듬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에게 식물이 자라는 과정을 직접 보여주고 싶어 했고, 정성 들여 키운 작물을 먹는 보람과 성취감을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학교나 학원에서는 배우기 어려운 것들을 흙 앞에서 경험하게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몇 번 마주치며 서로의 농사 상황을 짧게 나누는 사이가 되었고, 농사를 처음 시작한 사람들이 가진 비슷한 어려움들 때문에 금세 익숙해졌다. 작물이 잘 자라고 있는지, 벌레가 생기지 않았는지, 물은 충분한지 같은 이야기를 오가며 초보들끼리의 공감대가 자연스레 쌓였다.
11월 말이 되어 농장 계약이 끝났고, 모두가 수확을 위해 모였다. 나는 속이 덜 찬 배추와 크기가 작은 고구마들을 거두었고, 그 가족도 흠집이 많고 울퉁불퉁한 무를 뽑아 들었다. 외양만 보면 누구에게도 건네기 어려울 만큼 볼품없는 작물들이었지만, 몇 달 동안 밭에서 마주쳤던 시간이 떠올라 서로 조금씩 나누게 되었다. 나는 배추와 고구마를 건넸고, 그들은 무 몇 개를 내게 주었다.
주말 농장에서 만난 인연

▲건네 받은 조그마한 무 몇 개 ⓒ 유수영
지난 월요일, 받은 무를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아이의 엄마가 집을 찾았다. 까나리액젓과 쪽파가 조금 남았다며 나눠 쓰자고 건넸다. 직접 김장을 한 뒤 남은 재료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시장에서 산 귤을 몇 개 담은 봉투를 건넨 후 돌려보냈다. 주말 농장에서 이어진 인연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고 가볍게 오갔던 나눔이었다.
그날 바로 깍두기를 담기 시작했다. 흙 묻은 무를 씻어내고, 흠집 난 부분을 도려내며 깔끔하게 손질했다. 파를 다듬고 절여 두며 양념을 준비하는 동안, 외양이 엉성했던 무가 조금씩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음식 하나를 만드는 과정이지만, 손끝에서 한 계절이 함께 다듬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농사가 서툴러도, 작물이 못생겨도, 이렇게 한 번 더 손을 거치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움직였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남았다
깍두기를 김치통에 담아 주방 바닥에 놓아두고 익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오늘인 수요일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면서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보다 훨씬 좋은 냄새가 올라왔다. 초보 농부들이 키운 흠집 많은 무로 만든 깍두기였지만, 맛은 남김없이 제 몫을 하고 있었다. 외양만으로 판단했던 것들이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주말농장은 단순히 채소를 키우는 공간이 아니었다. 도시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운 관계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자리였고, 일상 속 사소한 나눔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하는 자리였다. 볼품없는 작물 몇 개를 주고받는 일에서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연결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서로의 작물이 서툴렀던 만큼, 나눔은 오히려 더 편안했다.
첫 농사는 성공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배추는 속이 차지 않았고, 고구마는 작았다. 하지만 그 작물들이 누군가의 밥상에 올라가거나 깍두기가 되어 익어가는 과정을 보며, 농사가 단순히 결과로만 평가되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에서의 생활에서는 잘 경험하지 못했던 종류의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그 밭에서 배우게 되었다.

▲무 몇 개로 담근 깍두기 ⓒ 유수영
올해 첫 농사는 그렇게 끝났다. 그리고 마지막에 완성된 깍두기 한 통이, 그동안의 수고와 관계들을 정리해 주는 듯했다. 도시에 살면서 이런 종류의 느린 시간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일터에서는 늘 효율을 요구받고, 하루를 보내는 동안 대부분의 선택은 급하게 이루어진다. 하지만 밭에서는 서두른다고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고구마는 천천히 자랐고, 배추는 시간이 되어야 속을 채웠다. 흙을 만지는 동안에는 나 역시 그 속도에 맞춰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 느린 속도가 오히려 마음을 정돈했고, 나눔이 불편함 없이 오갈 수 있게 만들었다. 도시의 생활에서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 관계와 시간이 그곳에서는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올해 첫 농사는 어설픈 수확에도, 잊기 어려운 경험으로 남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