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단작전 제보자 K씨2023~2024 국군심리전단 예하 O중대에서 제원산출병으로 복무한 K씨는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기 전부터 군이 비밀리에 대북전단을 담은 풍선을 북한으로 날렸다고 증언했다. K씨는 자신의 이름과 얼굴은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 김도균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던 2024년 12월 3일 밤, TV 속보를 지켜보던 K씨는 집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가 사는 동네에서는 한강 건너 여의도 국회가 보였다. 계엄군을 태우고 국회 쪽으로 날아가는 헬리콥터들을 본 K씨는 한달음에 국회로 달려갔다. 그날 K씨는 다른 시민들과 함께 계엄군의 진입을 막으며 국회를 지켰다.
얼마 뒤 그는 계엄 선포가 몇 달 전까지 자신이 수행했던 비밀 작전과 맞닿아 있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이 위험한 진실을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 K씨는 지난해 연말 부승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문을 두드렸다. 대북전단에 반발한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기 7~8개월 전부터 시작된 국군심리전단의 전단 작전은 이렇게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다.
K씨는 2023~2024년 국군심리전단 예하 O중대에서 제원산출병으로 복무했다. 작전 당일 기상상황에 따라 전단을 날려 보낼 지역을 선정하고 풍선에 주입하는 수소의 양, 전단 무게 등을 계산하는 전단작전의 핵심보직이었다. 그는 정확한 횟수를 기억할 수는 없지만 6~9회가량의 전단 작전에 참여했으며, 한 번 작전 때마다 1000Kg의 전단을 북한으로 보냈다고 증언했다.
전단 작전에 대해 부대 간부들은 '다른 소대도 모르게 하라' '합참도 모르게 하라'고 강조했다. 또 작전은 민간단체가 대북전단을 날리는 날에 맞춰 실행되었으며, 북한이 문제 삼을 경우에 대비해 '민간단체가 한 일'이라는 답변까지 미리 준비해 두었다고 한다.
2일 기자와 만난 K씨는 "군은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무장을 하고 있는 조직인데, 오히려 긴장을 고조시킬 게 뻔한 작전을, 그것도 정치적으로 굉장히 민감한 심리전 작전을 하는 것이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털어 놓았다.
지난 1일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전단작전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같은 날 K씨는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관과 만나 관련 진술을 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K씨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전시도 아닌데 먼저 도발, 정말 이상... 총선 영향 미치려는 건가 생각도"
- 2023년~2024년 국군심리전단 O중대에서 복무했는데.
"처음 배치 받으니 '너 오기 전 문재인 정부 때는 부대가 없어지네 마네 했다' '훈련도 거의 안 하고 진짜 꿀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들었는데, 훈련 횟수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였다. 풍선이 혹시라도 북쪽으로 날아가면 안 되니 훈련은 항상 후방 지역으로 가서 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가 확 바뀐 건 2023년 9월 헌법재판소의 대북전단금지법 위헌판결 직후부터였다. 간부들로부터 '이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마음 단단히 먹어라'는 말을 들었다. 그 무렵부터 실작전 준비가 본격화됐다."
- 언제 처음 실작전 지시를 받았나.
"헌재의 위헌 판결이 나오고 한 달쯤 지났을 때로 기억한다. 2023년 10월에서 11월경이었다."
- 처음 작전 지시를 받았을 때 부대 분위기는 어땠나?
"부대원들이 동요하고 분위기는 아주 무거웠다. 동기나 후임들이랑 그때 '이거 하는 거 맞나?' '우리가 먼저 도발하는 것 아니냐', '되게 위험할 것 같은데' 같은 이야기들을 많이 나눴다. 실작전은 항상 야간에 했는데, 처음 작전 나가서는 '여기 포탄이 떨어지면 어떡하지'란 생각도 했다. 왜냐하면 기지 위치는 북한도 다 알고 있을테니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여기에 포를 쏠 수도 있겠구나'라는 걱정을 했다."
- 작전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나?
"'제원 산출병'이었다. 자체 프로그램에 풍향·기상 정보를 넣어 풍선의 예상 비행경로를 계산하고, 전단 투하 위치를 선정해 소대장에게 보고했다."
- 전단 작전 규모는 어느 정도였나?
"풍선 하나에 전단 약 10kg을 넣었고, 작전을 한 번 할 때마다 보통 풍선 100개 정도를 띄웠다. 전단 무게는 총 1톤 정도다."
- 전단 내용도 기억하나?
"남한 병사의 생활과 의료를 강조하는 내용, 북한 핵시설 주변에 기형아가 많이 태어난다는 내용, '김정은의 벤츠 가격' '김여정의 핸드백 가격' '리설주의 핸드백 가격' 이런 식으로 '인민들은 굶어 죽는데 북한 최고위층들은 이렇게 사치하고 다닌다'는 식의 표현들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남한 어투가 아닌 북한 문화어로 작성된 심리전용 문구를 사용했다."
- 실작전은 몇 차례나 했나.
"빈도로는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두어 번 정도 했던 것 같다. 작년에 전역할 때까지 10번은 조금 안 되고, 적어도 6회 이상 8~9회 정도 했던 것 같다."
- 작전 관련해 특별한 지시를 받은 게 있었나?
"'다른 소대에게도 알리지 마라', '합참도 모르게 해라'는 말을 들었다. 실제로 합참 검열이 오면 장비를 모두 감췄다. 우리는 GOP부대인 O사단 지역 민통선 안에 있는 비상주 기지에서 전단작전을 했다. 풍선을 띄울 때마다 GOP부대에서 문의 전화가 왔는데, 간부들이 받아 '우리가 날리는 게 아니다', '모른다', '알려줄 수 없다'는 식으로 답변했다. 나중에는 아예 전화선을 뽑아 놓기도 했다."

▲오지마, 날리지마! 대북전단 살포 저지 평화행동평화위기파주비상행동 회원들이 지난 2024년 10월 31일 오전 경기도 임진각 납북자기념관 앞에서 대북전단을 공개 살포하겠다고 예고한 납북자가족모임과 자유북한운동연합에 맞서 '오지마, 날리지마! 대북전단 살포 저지 평화행동'을 하고 있다. ⓒ 이정민
- 작전을 하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나?
"전시가 아닌 상황에서, 어떤 도발이 있거나 하는 상황도 아닌데 우리가 먼저 도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장을 만들어 내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군은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무장을 하고 있는 조직인데, 오히려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 뻔한 작전을 하고 있다는 것, 그것도 정치적으로 굉장히 민감한 심리작전을 이렇게 한다는 것이 정말 이상했다. 처음 실작전을 한 때가 2023년 가을이었는데, '다음해 총선에서 여당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려고 하는 건가' 라는 생각도 했다. 왜냐하면 개연성이 너무 없으니까, 왜 우리가 이 작전을 하는지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계엄이 터지고 나서 관련 보도들이 나오면서 '아, 이런 이유로 긴장을 고조시켰을 수도 있겠다"라고 이해하게 됐다."
- 제보를 결심하게 된 동기는?
"계엄사태가 터진 후 무인기 관련된 의혹들이 나오는 걸 보고 '이것 때문에 내가 작전을 한 거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계엄 선포를 위해 예전부터 계속 빌드업을 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작년 연말 부승찬 의원이 라디오 방송에 나와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기 전부터 우리 군이 대북전단을 보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군 제보자와 연락이 끊겼다'고 말하는 인터뷰를 들었다. '이 이야기가 묻혀선 안 된다'고 판단해서 의원실로 전화를 걸게 됐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기 시작한 때(2024년 5월)는 내가 전역한 이후였다. 사실은 그 전부터 우리가 먼저 대북전단을 보내고 있었다. 전단 작전은 민주적 통제를 벗어난 작전이었다. 전단작전과 계엄선포가 어떻게 연결됐는지 반드시 진상이 밝혀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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