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도는 지금 개발과 보존의 경계에 서 있습니다. 신공항 건설 논의 속에서 섬의 역사와 생태, 그곳에 깃든 사람들의 삶이 지워질 위기에 놓였습니다. 이 연재는 시인, 소설가, 평론가, 연구자가 함께 가덕도를 다녀온 후 기획되었습니다. 매회 필진이 릴레이 형식으로 원고를 이어받아, 섬의 다양한 풍경과 장소성을 문학적 언어로 기록합니다. 이 연재가 성장 중심의 논리에 가려진 가치들을 되묻는 연대의 목소리가 되길 바랍니다.

▲가덕도 국수봉에서 바라본 풍경 ⓒ 이소연
지난여름까지만 해도 가덕도를 몰랐다. 간혹 뉴스로 가덕도 신공항 건설 소식을 접하긴 했지만, 가덕도 국수봉의 100년 숲에 대해선 들어본 적 없었다.
가덕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한국작가회의 기후생태위원회 동료 작가들과 가덕도 탐방을 계획하면서부터다. 가덕도는 보개산이 바다 가운데 침몰되었다가 다시 솟아났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섬이다. 그런데 보물 같은 100년 숲을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섬을 마음에 그리면 그릴수록 개발 위기에 처한 가덕도가 마음에 얹혔다.
실감한 적 없는 장소를 연대하는 마음은 두부처럼 연약해서 쉽게 무너졌다.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시위할 때도 여러 번 무너졌다. 땡볕에 무너지고, 욕설에 무너지고, 무관심에 무너졌다. 그래서 꼭 가보고 싶었다. 더 이상의 벌목을 막고 발파를 막고 싶었다. 가덕도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실감하고 싶었다.
국수봉 올라가는 길에서 생각난 시

▲가덕도 국수봉으로 올라가는 길 ⓒ 이소연
7인승 승합차를 빌려 서울에서부터 가덕도까지 꼬박 7시간이 걸렸다. 외양포 전망대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김현욱 활동가를 따라 국수봉을 올랐다. 나는 국수봉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스포츠 샌들을 신고 등산로 초입에 섰는데, 김현욱 활동가가 내 신발을 보고 운동화는 없냐고 묻는다. "샌들뿐인데. 오르기에 많이 험한가요?" 되물으며 김현욱 활동가의 신발을 내려다보니 그의 신발은 크록스다.
"저는 수도 없이 다녔던 길이라…."
아무리 능숙하다고 해도 그가 크록스로 오를 수 있는 길이라면 많이 험하진 않은가 보다 싶었는데 큰 착각이었다. 샌들 찍찍이 부분을 바짝 조이고 조심조심했는데도 여러 번 넘어졌다.
그러는 동안, 김현욱 활동가는 이미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어떻게 크록스를 신고도 저리 잘 오를까? 이 힘겨운 길을 저리 가뿐하게 오를 수 있게 되기까지 저 한 사람이 거듭 새기던 마음이 무엇이었을까 짐작해 보는데 난데없이 울컥해졌다.
김현욱 활동가는 앞서 걷다가도 뒤처지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기다렸다. 그 눈빛을 격려 삼아 나도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앞선 사람의 등을 바라보며 걸어 들어간 만큼 그늘이 깊어졌다. 폭염 속에서 숨이 턱턱 막히는데 발 아래 밟히는 촉촉한 흙은 처음 걷는 이에게도 이곳이 오래된 숲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누군가 바람이 부는 것만으로도 '살 것 같다'라며 감탄사를 뱉었다. 시를 쓰는 일은 감탄 잘하는 일이라고 했던가.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동료들의 얼굴 위에 내려앉아, 고요하게 일렁이던 순간이 한 편의 시처럼 남았다. 햇살이 이토록 아름다운 무늬를 가졌다는 걸 국수봉에 와서야 깨닫는다.
국수봉으로 오르는 흙길은 떨어진 솔잎이 쌓여 있어 축축하고 푹신했다. 정현종의 시 <한 숟가락 흙 속에>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내가 더러 개미도 밟으며 흙길을 갈 때/ 발바닥에 기막히게 오는 그 탄력이 실은/ 수십억 마리 미생물이 밀어 올리는/ 바로 그 힘이었다는 걸!"
숲이 머금은 발자국은 솔잎을 눌러 밟을 때마다 사각거리는 소리를 냈다. 나는 그 소리를 조심스레 들었다. 인간이 남긴 상처 이전의 자연이, 아직은 제 호흡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눈을 감고 국수봉 초입에서 잠깐 내려다본 외양포 마을의 봄날 풍경을 가만가만 그려봤다. 복사꽃과 살구꽃들이 통통배처럼 떠 있을 마을과 산불 감시 초소가 있는 양포고개의 소나무들. 어떤 실감 속에서는 상상마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나 보다.
왜 이 숲을 잃을 수 없는지 알겠다

▲한국작가회의 기후생태위원회 동료 작가들과 함께 찍은 사진 ⓒ 이소연
길을 조금 더 오르자, 숲의 밀도가 달라졌다. 나무들 사이에 원래 있어야 할 그림자 대신 허전하게 빈 공간이 눈에 띄었다. 들머리 쪽 곰솔을 무더기로 베어 길을 내어놓은 것이다. 바닷가를 따라 자라기 때문에 해송으로도 불리는 곰솔이 둥치만 남아있고 군데군데 잘린 나뭇가지가 마른 혈흔처럼 흙 위에 흩어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둥치의 잘린 단면에 손끝을 대어 보았다. 개발 소식이 계속 들려왔지만,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생각보다 더 혼란스럽고 불안했다. 토사가 드러난 사면, 잘린 채 방치된 나무들, 뿌리가 들려 비스듬히 누운 소나무들… 산이 제 형태를 잃어가는 모습을 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폭력적이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속 벌목 장면이 자연스레 겹쳤다. 거대한 기계가 삼켜버릴 듯 나무를 쓰러뜨릴 때 굉음을 내며 쓰러지는 게 단지 나무뿐이었을까? 톱날이 파고들 때 튀어 오르는 톱밥이 사방으로 튀는 핏방울처럼 느껴지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 만수는 생계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거듭 자신을 타이른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카메라는 기계톱에 벌목 당하는 나무를 비춘다. "어쩔 수 없다"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생명을 침묵 속에 밀어 넣는지 잔인할 만큼 또렷하게 드러낸다. 바다는 한없이 넓고 숲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언제 신공항이라는 거대한 구조물이 들어설지 알 수 없다. 정말 어쩔 수 없는 걸까? 부디 이곳에 기대어 살아온 사람들과 수많은 생명들이 "어쩔 수 없다"는 말에 포함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가 오면 그대로 흘러내릴 것 같은 벌목된 경사면 위에 서서 겨우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발치에 경고판 하나가 보였다.
"경고: 이 지역은 군사 작전 지역이므로 민간인의 출입을 금함"
일제강점기부터 군사시설이 있던 국수봉은 출입이 제한된 덕분에 수령이 100년에 가까운 나무가 많다고 한다. 인간의 출입이 제한되는 바람에 보존할 수 있었던 생명이라는 게 아이러니하다.
산악보루에서 안테나가 서 있는 곳까지 오르면 국수봉이다. 해발 264.5m. 국수봉을 발파해 얻은 흙으로 바다를 메운다고 한다. 내가 밟고 오르는 이 길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한 걸음 한 걸음이 더없이 소중해졌다. 나는 산이 하는 말을 받아 적으며 걸었다. 산이 하는 말이 지저귀는 새소리 풀벌레 소리 바람이 나뭇잎을 뒤집는 소리를 닮지 않고 투쟁의 언어를 닮았다는 건 얼마나 아픈 일인가.
국수봉을 오르는 길엔 이팝나무 군락지도 있었다. 한여름이라 흰 쌀밥 같은 꽃들을 볼 수는 없었지만 봄엔 만개하는 그 향기를 쫓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더딘 산행도 즐거울 테지. 나는 슬퍼지려 할 때마다 좋은 생각을 하려 애를 썼다. 세상에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아주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문득 부산에서 태어나 가덕도에서 유년을 보냈다는 박형권 시인의 시 <가덕도 탕수구미 시거리 상향>이란 시를 떠올려 본다. "빛도 바다의 일부분인 것을 어부들은 안다/가덕도 사람들은 어두운 밤바다의 인광을 '시거리'라고 부른다" 나는 가덕도의 나무들이 빛이 사라진 후에도 바다를 푸르게 빛내준다고 믿는다.
그뿐인가? 국수봉을 함께 오른 사람들이 내겐 시거리다. 땀 흘리던 내게 손수건을 건네준 사람도 자기 몫의 얼음물을 기꺼이 넘겨준 사람도 자꾸만 넘어지는 내게 지팡이로 쓸 나뭇가지를 주워준 사람도 다 '시거리'다. 그들 덕분에 힘들어도 빛처럼 웃을 때가 많았다. 국수봉을 올랐을 뿐인데 실감이 난다. 이 숲을 왜 잃을 수 없는지.
[필자 소개] 이소연: 1983년 출생. 2014년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 <거의 모든 기쁨> <콜리플라워>가, 산문집으로 <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