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시 연제구에 있는 부산지방법원(부산지법). ⓒ 김보성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하지 못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도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잇달아 승소해 판결이 확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과거 국가가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고 강조했는데, 정부가 이에 따라 항소를 포기한 결과다.
계속되는 "형제복지원 피해, 국가의 배상책임 있다"
2일 <오마이뉴스> 취재를 정리하면, 부산지법 민사11부는 지난달 12일 형제복지원 피해자 강아무개씨 등 원고 57명이 정부에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 측이 제출한 자료 등을 근거로 형제복지원 수용 사실을 인정한 뒤 국가의 배상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 소송은 진화위 결정문이 없어도 관련 증거와 증언만으로 법원이 그 피해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강씨 등은 지난 1978년부터 1987년 사이 국가의 묵인·방조 속에 형제복지원에 강제로 끌려가 가혹행위 등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진화위 조사를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다가 뒤늦게 용기를 내어 법원의 문을 두드렸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소멸시효가 지난 사안이라며 배상 성립 불가를 주장했지만, 사건을 들여다본 재판부는 피고가 아닌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민사11부는 "형제복지원은 공권력의 적극적인 개입 또는 이들의 허가·지원·묵인 하에 장기간 이루어진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며 "그 위법성 정도가 매우 크고 중해 유사한 행위가 자행되지 않도록 억제·예방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수용 기간 등에 대한 자료가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이는 국가가 형제복지원의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결과라"며 정부가 지급해야 할 손해배상액을 약 118억 원으로 정했다. 원고들이 청구한 위자료가 약 119억 원 정도여서 이를 대부분 인정한 셈이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광복절 특별사면 브리핑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광복절 특별사면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이정민
재판부는 "피해자 상당수가 미성년자였고, 퇴소 이후에도 부랑아나 피수용자 낙인을 안고 살아왔다. 현재까지 피해보상 등 적절한 조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라며 이 같은 부분을 손해배상 금액에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13일에는 형제복지원 피해자 유가족이 제기한 소송도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나왔다. 부산지법 민사2단독은 고 이아무개씨의 유족 3명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고인은 형제복지원에 강제로 수용돼 구타와 노역 등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그 기간이 수개월에 이른다"라며 국가의 책임을 물었다.
판결문을 보면 40대인 1979년 9월 초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간 이씨는 3개월 만인 11월 27일 부산시립병원(현 부산시의료원)에서 사망했다. 한참 뒤에야 이를 알게 유족은 진화위 진실규명을 신청하지 못했지만, 사건을 검토한 재판부는 이씨의 사망이 국가폭력 즉 공권력의 인권침해에 따른 것이라고 결론을 냈다. 이에 따라 이들 유족에겐 약 1억3000만 원의 위자료가 책정됐다.
두 사건은 법무부가 2주 안에 항소하지 않아 자동으로 선고 결과가 확정됐다. 법원은 진화위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더라도 과거 시설 수용 정황과 피해가 확실하다면 국가가 이를 책임져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이어가는 중이다. 앞서 부산고법 민사6-3부도 지난 6월 법무부가 형제복지원 피해자 사건에서 패소해 항소하자 원심판결 그대로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단체는 법원이 이처럼 판단하더라도 계속 미조사자들을 사각지대에 방치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국가폭력을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면 하루빨리 3기 진화위가 출범해 피해자들을 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향직 형제복지원 서울·경기 피해자협의회 대표는 "진화위 조사를 받지 못한 분들이 500여 명 정도 된다. 진화위를 조속히 출범시키고, 이를 상설화해 숨어있는 피해자들을 찾아내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