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2024년 12월 3일 저녁 서울역 TV에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2024.12.3 ⓒ 연합뉴스
기자는 오늘날 시민에게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전하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하면, 기자는 오늘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史官)이기도 하다.
전직 대통령 윤석열이 대한민국의 질서와 시민의 생명을 위협한 12·3 내란 사태를 일으킨 지 벌써 1년이다. 이번 칼럼은 그 역사를 다시 한번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한 작업이다.
'태풍이 몰아닥치기 전 하늘은 고요하다'고 누가 말했던가. 본 기자는 다니던 지역 일간지에서 나온 뒤에도 계속 현장을 다녔다. 12월 3일에는 일정이 없어 '오랜만에 좀 쉬어보자' 하고 평택 거처에서 꼼짝 않고 몸을 눕혔다. 그러나 평온함은 그날 밤 깨졌다.
함께 알고 지내던 언론사 기자들과 후배·후원자들의 전화가 연쇄적으로 쏟아져 잠에서 깼다. 모두 하나같이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전했다. 처음엔 무슨 소린가 했지만, 언론·통신사 속보를 보고 현실임을 깨달았다.
그렇게 노트북·카메라·캠코더를 챙겨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내달렸다. 국회로 향하며 각종 매체 생중계를 보니,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한 대통령이 자신의 직위를 지키려고 계엄군을 보내 국회를 점거하고, 시민들이 맨손으로 이를 막는 전례 없는 광경을 목격하니 '어디서부터 취재를 시작해야 할까'라는 기자의 본분조차 쉽게 떠올리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만약 윤석열의 계엄군이 국회에서 시민들의 시선을 돌리는 사이, 언론사와 언론노조 본조를 습격한다면 우리 언론인들은 끝장이다.' 이 생각이 들자 기자는 언론노조 본조가 있는 한국프레스센터로 달려갔다. 군사독재 정권이 쿠데타로 집권한 이후 착수한 작업 중 하나가 언론자유 통제였기에, 윤석열이라면 언론에 재갈을 물릴 것이라는 불안이 엄습했다.
급히 도착한 언론노조 본조는 다행히 잠금장치가 잘 돼 있었고, 계엄군은커녕 경찰조차 흔적이 없었다.
기자는 잠긴 문을 등지고 자리를 펴 개신교계를 비롯한 각계의 규탄 성명과 반응 기사를 작성하며 그 자리를 지켰다. 속보를 작성하던 새벽 1시쯤,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며 사태는 소강 상태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계엄군은 아직 철수하지 않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침투 사실도 알려져 언제 돌발 행동이 일어날지 몰라 긴장 속에 언론노조 앞을 지켰다.
12월 4일 오전 5시 4분, 국무총리실이 이날 오전 4시 30분 국무회의에서 계엄 해제안을 의결했다고 밝힘으로써, 장장 6시간 동안 이어진 정부와 시민의 대치는 민주주의의 깃발 아래 모인 시민의 승리로 끝났다.
이후 날이 밝자 각계에서는 윤석열 탄핵과 정부 일괄 퇴진 요구 목소리가 치솟았다. 기자도 오전 10시 한국프레스센터 앞에서 언론노조와 4개 언론협업단체(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영상기자협의회, 한국기술인연합회)의 긴급 기자회견을 취재하며 그날 하루를 마감했다.
역사라는 수레바퀴는 쉼 없이 돌아가기에, 기억하지 않으면 역사는 잊히고 지워진다. 그 이후에는 그 역사에 대한 반동이 광풍을 타고 치솟기 마련이다. 이 칼럼은 반동을 선동하는 보수·극우 진영에게 시대정신을 상실한 대가가 얼마나 가혹한지를 보여주는 경고이기도 하다.
군주민수(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는 정치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모든 공동체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12·3 내란 사태를 통해 깨닫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에큐메니안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