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며, 캘리그라피 한 점에 마음을 담았습니다.

▲선물60x28cm, 화선지와 먹과 한국화 물감, 2025 ⓒ 정명조
"암일까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한 달에 한 번 방문하는 의사와 건강 검진 결과를 상담하는 자리였다. 백혈구 수가 적다고 해서 오래전부터 그랬다고 대답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 범위를 벗어났지만, 나이가 들면 흔히 있는 일이라며 의사가 웃었다.
위내시경 조직검사 결과는 옅은 위염이라서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안압이 낮아 안과 전문의 상담이 필요하고, 비만도는 100, 골밀도 정상, 체질량지수 표준... 상담을 마무리할 즈음, 의사가 잠시 머뭇거리며 왼손 약손가락을 가리켰다.
손톱에 검은 자국과 흰 자국이 있었다. 어디에 부딪힌 적 있냐고 물었다. 배드민턴을 치다 라켓에 맞았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며칠 전에는 조그맣던 점이 조금 더 커진 것 같았다. 대학병원에 가서 조직검사를 받아보라며, 진료 의뢰서가 필요하니 동네 병원에 먼저 들르라는 말을 덧붙였다.
'손톱 검은 점'으로 인터넷을 뒤졌다. 악성 흑색종, 5년 생존율 40%, 빨리 전문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글귀들이 눈에 확 들어왔다. 사무실에서 일찍 나와 동네 피부과를 찾았다. 목요일인데 쉬는 날이었다. 다른 곳에 갔더니 예약제라고 해서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멀리서 출장 온 아들이 집 근처까지 왔다가 밤 늦게 들렀다. 족발을 사 와 맥주를 마시며 연금 이야기를 했다. 퇴직연금을 여든 살까지 받는 것으로 설계하겠다고 하자, 아들이 워런 버핏을 꺼냈다. 아흔이 넘어서도 여전히 돈을 굴리고 있다면서, 지금은 100세 시대란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 어떻게 할까. 밤새 뒤척였다. 집사람은 커피를 마셨냐고 물었다. 다음 날, 휴가를 내고 피부과에 갔다. 암은 아닐 거라며, 의사는 별것 아니라는 듯 한두 달 뒤에 보자고 했다.
검은 자국과 흰 자국은 손톱이 자라면서 점점 끝으로 밀려나 사라졌다. 이제는 몸에 나타나는 작은 변화 하나에도 예민해지는 나이가 되었다. 건강이 최고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해프닝이었다. 건강 검진 결과가 몇몇 항목에서 정상 범위를 조금 벗어나더라도 그리 마음에 두지 않아야 한다. 오늘 하루가 선물이고 축복, 그저 고맙고 소중할 따름이다.

▲향천사 단풍친구 안내로 예산에서 보낸 12월 첫날의 하루가 더없는 선물이고 축복이었다. ⓒ 정명조
숲속이 다, 환해졌다
죽어가는 목숨들이
밝혀놓은 등불
멀어지는 소리들의 뒤통수
내 마음도 많이, 성글어졌다
- 나태주 <단풍>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