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는 한 때, 내가 나락을 심고
보리를 거두던 논이었다
농사짓고 처음으로 장만한 갯논이었다
해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모를 심고
하루 종일 논을 매도
허리 아픈 줄 모르던 내 논이었다
논둑의 바람은 얼마나 시원하고
가을날 햅쌀은 얼마나 튼실하고 빛났던가
빚에 쪼여 판 지 일 년 만에
내 키보다 높게 매립해서 따블로 되팔았다는
나의 논, 아니 이제는 남의 땅
무슨 나락을 심어요, 형질 변경만 되면
몇 곱이 튀는데/ 나락과 보리 대신
시세 차익이 자라는 땅
(중략)
-<이제는 남의 땅> 부분/ 시집 <춘파春播>
선종구 시인은 1967년 전남 벌교에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났다. 지금도 고향 마을에서 30년 가까이 농사를 짓고 있다. 한 번도 그가 농사짓는 것을 본 적은 없다. 언젠가 마당에 농기구가 널려 있는 그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처음으로 그가 농사꾼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지만 그때도 그는 막걸리나 죽이고 있었을 뿐이다.
농사꾼으로 살다 보면 막걸리나 죽일 일이 많은 모양이다. "한 달 만에 쏟아진 막걸리병 두 포대를 동네 앞 쓰레기장에/ 얼른 부리고 돌아서는데" 누군가 뒤에서 "이장님!"하고 부른다. "저 술뱅은 우리 동네에서 나온 쓰레기가 아닌 것 같"다고 하더니 "우리 동네에서 저라고 술 퍼 묵는 인간이 누가 있어요/ 저런 사람들은 꼭 잡어야 돼요"(<이장님 이장님> 중)라고 힘을 주어 말한다. 이장 체면이 말이다. 식전 아침인데도 땀이 난다.
하지만 그가 진짜 농부라는 것을 나는 안다. 진짜 농부가 아니라면 "하루 종일 논을 매도/허리 아픈 줄 모"를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나락을 심고 보리를 거두던" '내 논'이었을 때의 얘기다. "빛에 쪼여 판 지 일 년 만에" 남의 땅이 된 논은 "시세 차익이 자라는 땅"으로 전락한다. 거기에 "밤바다 젖이 불어 우는 논의 울음소리를 들어야 한다"(<이제는 남의 땅> 중)라니. 그가 진짜 농사꾼일 뿐만 아니라 예사 시인이 아닌 것을 여실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선종구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춘파春播>(책만드는집, 2025년) 표지 ⓒ 책만드는집
"나는 그곳에 죽으러 가지 않았지만/ 다시 살아 돌아왔다"
"농번기 끝나고 빈 몸으로 훌쩍" 떠난 선 시인은 진도 어느 바닷가의 포장마차에서 "여행자의 객수에 젖어 밤바다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신다. 그때 "옆 테이블의 늙수그레한 여인네 셋"이 "여그 사람은 아닌 것 같은디 어디서 오셨스까?"하고 말을 붙여 온다. 시인은 "내 고독을 방해받기 싫어 짧게 끊고 다시 술잔을 막 드는데" 여인네 쪽에서 "젊은 사람이 살아야제!"하고 화자를 숫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시도하려는 사람 취급한다. 시 뒷부분이다.
나 그런 사람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여/ 딱 본께 기구만, 잔 들고 이리 와보씨요/ 살다보면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는 것이제/ 항시 좋다요, 그런 맴으로 더 독하게 살아야제/ 젊디나 젊은 사람이!/ 술잔은 연거푸 쏟아지고, 구절양장 같은 여인네들의/ 인생사가 펼쳐지고, 늦게 합석한 두 남정네의 파란만장까지가/ 진도의 겨울 밤바다에 끝도 없이 이어졌다/ 공짜 술에 취한 나에게, 이담에 꼭 다시 보자는 말과/ 함께 택시비까지 쥐여주며 그들은 떠났다/ 나는 그곳에 죽으러 가지 않았지만/ 다시 살아 돌아왔다
-<젊디나 젊은 사람이> 부분
그런 사람 아니라고 해도 "딱 본게 기구만, 잔 들고 이리 와보씨요"라며 화자를 몰아세우는 오지랖도 뭉클하지만 "나는 그곳에 죽으러 가지 않았지만/다시 살아 돌아왔다"는 마지막 시구에 이르러서는 좋은 시를 못 써도 좋은 시를 읽을 수는 있으니 안 되는 시를 애면글면 보듬고 살아온 세월들이 괜찮다. 아니, 고맙다.
나는 겨울에도 손이 따뜻한 편이다. "내 손을 잡은 사람들마다/ 왜 이리 차냐고 한다"는 걸 보면 시의 화자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유난히 가늘고/ 긴 내 손가락 발가락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은 퍽 따스하다. "어둡고 서툴던 이목耳目의 과오들을/묵묵히 받아낸 너희들,/거친 농사 20여 년에도 아직 용케 무사했구나"에서 보듯. 시는 이렇게 갈무리가 된다.
오랜만에 젖은 손발 찬찬히 내려다본다
여태까지 나는 저들의 수고로 먹고살았다
오 쓸쓸한
나의 먼 다도해여
-<손발에게> 부분
그가 꼬막으로 유명한 벌교, 남도 바닷가에 살지 않았다면 "오 쓸쓸한/ 나의 먼 다도해여"라는 절창이 가능했을까. 그는 남도의 시인이자 농사꾼이다. 이번 시집에는 "넷이서 마시는데 셋이/ 두 시간 동안/ 골프와 주식 이야기만 하다 헤어졌다"(<넷이서 마시는데>)라고 쓸쓸한 마음을 드러내는 시도 눈에 띈다. "공짜로 내리는 것은 그나마 눈비뿐이었는데/ 촌읍에도 이젠 드문 일이 되어간다"고 한 걸 보면 그 넷은 모두 농사꾼인듯하다.
그 넷 중에 셋 속에 포함되지 않은 시인은 "별빛도 없는 가을 하늘을 올려다" 볼 뿐이다. 쓸쓸한 마음에 시인은 어느 늦가을 오후 혼자 바닷가를 찾는다. 거기서 혼자 걷는 "내 등이 왈칵 따뜻"해지는 순간을 만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앞에서 쓸쓸한 이야기를 했으니 달달한 시 한 편을 소개하는 것도 좋겠다.
갯바위까지 물든 남해 늦가을 오후
인적 끊긴 해수욕장 모래밭 위에
두 사람의 발자국이 다정하였다
나란한 발자국 따라 나도 걸어보는데
어느 순간 한 사람의 것은 보이지 않고
더 깊어진 발자국 하나만
해변 끝까지 남아 있었다
추운 파도가 아무리 몰아쳐도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발자국 앞에서
혼자 걷는 내 등이 왈칵 따뜻해졌다
-<발자국> 전문
이문재 시인은 시집 해설에서 "최근 몇 년 사이, 나는 이렇게 강력한 감수성을 읽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발자국의 주인공은 연인이었을 것이다. 둘이 나란히 걷다가 남자가 여자를 업었을 것이다. 물론 여자가 남자를 업을 수도 있겠다. 혹은 업지 않고 보듬었거나. 이런 사소한 상상을 해보는 것도 즐겁다.
어쨌거나 둘이 하나가 되는 순간 발자국은 더 깊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남이 새겨 놓은 발자국이 아닌가. 이 시에서도 "혼자 걷는 내 등이 왈칵 따뜻해졌다"는 마지막 행이 압권이다. 화룡점정이랄까.
한편, 선종구 시인은 2016년 시집 <여자만 소식>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22년 <창작21>신인상을 받았다. 이번 시집은 세 번째 시집이다. 아껴둔 짧은 시 한 편을 더 소개하고 글을 마칠까 한다. 시집 맨 첫 자리에 있는 그의 만만치 않은 내공이 느껴지는 시다.
칼은 칼집 속에 있을 때/ 가장 날카로운 것// 색감도 없이/ 서늘한 이것으로/ 어찌해야 간곡하고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칼은, 인간의 혀를 본떠 만든/ 가장 오래된 무기일 테다
-<칼>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