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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7일, 오마이뉴스에 국제 바칼로레아(이하, IB) 교육과정을 다룬 기사를 실었다. 제주도교육청 국제심포지엄에 참석차 방한한 시바 쿠마리 국제바칼로레아기구(IBO) 회장이 제주 4·3항쟁 학살 현장인 섯알오름을 찾은 장면을 보도한 기사였다. IB의 교육 철학이 '평화 교육'이라는 점이 그 방문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났던 일이다(관련기사: 제주 4.3항쟁과 국제 바칼로레아 회장단의 뜻 깊은 만남 https://omn.kr/1lqje).

당시만 해도 IB는 국내에서 낯선 이름이었다. 공교육 안에서 정착할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회의적인 시선도 적지 않았다. 일부 교육자들 사이에서만 '대안 교육', '실험 학교' 정도로 회자되던 시기였다.

IB는 전 세계 공통 교육과정을 기반으로 비판적 사고, 탐구 중심 학습, 국제적 감수성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한 국제 인증 교육 프로그램이다. 스위스에 본부를 둔 국제 바칼로레아기구(IBO)가 운영하며, 초등(PYP)·중등(MYP)·고등(DP) 과정으로 구성돼 전 세계 대학 입시에서도 학력으로 인정받는다.

제주 표선고-일본 나가노 요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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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이 흘렀다. 지난달 29일, 교육과혁신연구소 이혜정 소장에게서 카카오톡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짤막한 문장과 함께 <서울경제신문>에 실린 자신의 칼럼 "한일 IB 역사 공동수업이 보여준 미래" 기사를 보냈다.

"기자님께서 2019년에 쓰셨던 이 기사가 현실화된 수업이었습니다."

해당 칼럼의 내용은 명확했다. 제주 IB 학교 표선고와 일본 나가노 요시다고교 학생들이 화상으로 연결돼 역사 교과서를 비교·분석하는 공동수업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한국 학생들은 일본 교과서가 태평양전쟁을 '전시 동원' 중심으로 서술한 점을 지적했다. 일본 학생들은 한국 교과서에 히틀러·무솔리니·히로히토가 함께 등장하며 위안부와 강제동원이 증언과 사진으로 상세히 실려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했다.

교과서 비교로 시작된 한일 역사토론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은 “일본 학생들이 만든 발표 자료에 한국 교과서 속 무솔리니·히틀러·히로히토가 함께 등장하는 대목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며 “일본 학생들 스스로 한국 교과서에서 인상 깊게 본 부분을 골라 발표한 것”이라고 전했다.
교과서 비교로 시작된 한일 역사토론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은 “일본 학생들이 만든 발표 자료에 한국 교과서 속 무솔리니·히틀러·히로히토가 함께 등장하는 대목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며 “일본 학생들 스스로 한국 교과서에서 인상 깊게 본 부분을 골라 발표한 것”이라고 전했다. ⓒ 일본 요시다고 학생들 PPT
일본 학생들 발표 PPT 일본 학생들이 한일역사공동수업에서 발표한 PPT의 일부.
일본 학생들 발표 PPT일본 학생들이 한일역사공동수업에서 발표한 PPT의 일부. ⓒ 일본 요시다고 학생들

수업의 특징은 비난이 아니었다. 학생들은 "왜 이렇게 다르게 서술됐는가", "무엇은 기록되고 무엇은 생략됐는가"를 묻기 시작했다. 역사를 사건이 아니라 '서술의 구조'로 읽는 방식이었다. 기억과 망각, 기술과 침묵을 함께 살피는 토론이 이어졌다.

2019년, 섯알오름에서 일본군 비행기 격납고를 바라보던 자리에서 "언젠가 한일 IB 학생들이 함께 역사 수업을 하면 좋겠다"는 말이 오간 적이 있고 이것을 <오마이뉴스>에서 보도한 것이다. 당시에는 실현 가능성을 가늠하기 어려운 희망에 가까운 발언이었다. 그 말이 6년 뒤 실제 교실에서 구현됐다.

IB 교육과정도 그 사이 달라졌다. 올해 6월 기준, 전국 12개 시도교육청 산하에 IB 인증학교 49개교, 후보학교 118개교, 관심학교 449개교, 총 616개교 이상의 IB 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IB 교사 양성과정(IBEC)을 공식 운영하는 대학도 12곳에 이르렀다. IBEC 인증 과정을 진행 중인 서울대까지 추가되면 13개 대학이다.

교육은 수업으로 구현될 때 비로소 정착된다

우리 교육의 수업과 평가를 혁신하기 위한 전략으로 IB를 한국어화하여 공교육에 도입하자는 아이디어가 교육과혁신연구소 이혜정 소장의 저서 <대한민국의 시험>(2017)에서 최초로 제안된 이후, 몇몇 교육청이 이를 정책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국내 교육당국 중 최초로 IB 한국어화 및 공교육 도입의 공개선언을 단독 보도한 것이 바로 2017년 12월 3일 자 기사 "제주도교육청, 국제 바칼로레아(IB) 논술형 교육과정 국내 첫 공교육 도입"이다. 이후 2019년 7월 대구교육청과 제주교육청이 동시에 IBO와 한국어화 협약각서에 서명하면서 국내 IB 공교육 도입이 공식화됐다(관련기사: 제주도교육청, 국제 바칼로레아(IB) 논술형 교육과정 국내 첫 공교육 도입 https://omn.kr/or3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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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내 IB 교육과정 도입은 초기 실험 단계를 지나 확산 국면에 접어들었다. 올해 6월 기준 전국 12개 시도교육청 산하에 IB 인증학교 49개교, 후보학교 118개교, 관심학교 449개교, 총 616개교 이상의 IB 학교가 운영되고 있다(한국교육과정평가원 집계). 공립과 사립을 가리지 않고 전국 각지에서 IB 도입 또는 준비 단계에 있는 학교들도 빠르게 늘고 있다.

제주와 대구의 IB 졸업생들의 역대급 대입 실적도 나오면서 전국적으로 관심이 늘고 있고, IB 교사 양성과정(IBEC; IB Educator Certificate)을 공식 운영하는 대학도 12곳(경북대, 경인교대, 교원대, 남서울대, 대구교대, 부산교대, 서울교대, 인하대, 전주교대, 제주대, 한동대, IBEC 컨소시엄[충남대·공주대·공주교대])에 이르렀다. 현재 IBEC 인증 과정을 진행 중인 서울대학교까지 추가되면 13개 대학에 이르게 된다.

2024년에는 한국IB교육학회가 창립됐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IB연구실이 설립되었으며, 내년부터는 서울대학교 사범대에 IB교육연구센터가 공식 설립될 예정이다. 2019년만 해도 '대안 교육'이나 '실험적 모델'로 취급받던 IB 교육이 공교육 체계 안에서 하나의 제도적 선택지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교육은 선언으로 정착하지 않는다. 수업으로 구현될 때 비로소 현실이 된다. 교과서는 그렇게 마주 놓였고, 질문은 학생들로부터 나왔다. 기사는 기록될 때 의미가 완성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 현장에서 다시 호명될 때 비로소 그 역할이 드러난다. 2019년의 오마이뉴스 취재는 기록으로 남았고, 2025년의 교실은 그 기록을 다시 불러냈다. 작은 기사 하나가 수업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6년이 걸렸다. 교육의 시간은 언제나 그렇게 느리게 흐른다.

일본 학생들 발표 PPT 일본 학생들이 한일역사공동수업에서 발표한 PPT의 일부.
일본 학생들 발표 PPT일본 학생들이 한일역사공동수업에서 발표한 PPT의 일부. ⓒ 일본 요시다고 학생들
일본 학생들 발표 PPT 일본 학생들이 한일역사공동수업에서 발표한 PPT의 일부.
일본 학생들 발표 PPT일본 학생들이 한일역사공동수업에서 발표한 PPT의 일부. ⓒ 일본 요시다고 학생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자연치유일보에도 실립니다.


#IB#IB교육과정#국제바칼로레아#한일역사#역사공동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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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향식 (shin1) 내방

기자 출신 글쓰기 전문가. 스포츠조선에서 체육부 기자 역임. 월간조선, 주간조선, 경향신문 등에 글을 씀. 경희대, 경인교대, 한성대, 서울시립대, 인덕대 등서 강의. 연세대 석사 졸업 때 우수논문상 받은 '신문 글의 구성과 단락전개 연구'가 서울대 국어교재 ‘대학국어’에 모범예문 게재. ‘미국처럼 쓰고 일본처럼 읽어라’ ‘논술신공’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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