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학생은 학교에서 안전하게 배우고, 존중받으며, 정당한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괴롭게 만드는 폭력은 잠잠해진 적이 없다. 수법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고통 받는 학생이 늘어나지만 문제는 매년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그중에서도 경계선지능을 가진 학생들은 교실 안에서 가장 먼저 표적이 되고, 가장 늦게 발견된다. 이들이 겪는 학교폭력은 축소되거나 왜곡되고, 어렵게 마주한 학교폭력 대응체계에서도 쉽게 사각지대에 놓인다. 느린인뉴스는 우리 사회의 틈이 어떻게 아이들을 위험으로 밀어 넣는지, 무엇을 바꾸어야 더 이상의 피해를 막을 수 있을지 살펴봤다.

▲느린학습자인권보호시민연대가 지난 2월 강원 춘천시 강원특별자치도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집단 학교폭력 사안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느린학습자를 위한 학교폭력 지원체계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 느린IN뉴스
* 경계선지능인은 '느린학습자'라고도 불립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경계선지능'으로 용어를 통일해 사용했습니다.
경계선지능을 가진 자녀를 둔 부모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학교폭력'이다. 아이가 학교에서 잘 지낼 수 있을지, 친구를 사귈 수 있을지, 혹은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을지 부모들은 늘 불안함을 안고 지낸다. 교과 내용을 따라가고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일만으로도 이미 부담이 큰데, 학교폭력은 학령기를 지나는 이들에게 가장 예민한 문제가 된다.
교육부가 발표한 2025년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올해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은 2.5%로, 최근 5년간 ▲ 2021년 1.1% ▲ 2022년 1.7% ▲ 2023년 1.9% ▲ 2024년 2.1%의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피해 유형으로는 언어폭력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집단따돌림·신체폭력·사이버폭력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피해 사례가 많아지면서 학교폭력 사안처리 과정 또한 복잡다단해지고 있다. 교육부가 발간한 '2025학년도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 분량은 192페이지에 달한다. 단계별 대응 절차와 조치 기준이 세세하게 규정돼 있지만, 경계선지능 학생과 가족들에게는 보호보다 부담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폭력 상황을 인지하거나 진술하는 과정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복잡한 절차 속에서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 아이는 내 아이의 친구일까, 가해자일까
경계선지능을 가진 학생들에게는 교실에서 또래와의 관계를 형성하는 일부터 큰 벽으로 다가온다. 사회적 신호를 해석하거나 관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작은 오해가 쌓이거나, 때로는 '친구'라는 이름 아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해 불리한 위치에 놓이기도 한다. 조정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회장은 "경계선지능인은 학폭 피해 고위험군"이라며 "이들이 스스로 피해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학교 안팎에서 경계선지능 학생들을 만나고 있는 최수진 느린소리 대표는 "경계선지능인은 상대방의 표정, 몸짓 등 숨겨진 언어를 해석하는 데 취약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본인이 당한 괴롭힘을 일상적인 수준이라고 받아들여 학교폭력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잦다. 최 대표는 "이런 경우 타인이 대신 신고를 하거나, 성인이 되고 나서야 학교폭력임을 자각한 사례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경계선지능인은 가해 학생의 '타깃'이 돼 강제적인 심부름('셔틀')을 하거나 의도치 않게 또 다른 가해에 동원되기도 한다. 조종에 의한 가해, 사이버 계정 갈취 등 갈수록 교묘해지는 학교폭력 수법은 이들을 더 취약하게 만든다. 김석민 푸른나무재단 상담본부 과장은 "이는 특정 학생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 현장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학교폭력 양상"이라며 "인지 기능이 취약한 느린학습자 학생은 암묵적으로 고립되는 경향이 있기에 교묘한 폭력에 노출되기 쉽다"고 짚었다.
이처럼 관계에 취약한 특성 때문에 피해를 당하고도 위험 속에 머무는 일이 반복되기도 한다. 경계선지능을 가진 A군(14)은 교우의 강요로 반복적인 심부름을 하다가 피해 학생으로 인정돼 전담 시설에 입소했다. 그러나 A군은 원적교로 복귀하고 가해 학생과 다시 어울리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힘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학교폭력이지만, 피해 학생이 가해 학생을 '친구'로 인식하고 떨어지기 싫어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사안처리'라는 복잡한 절차 위 홀로 선 경계선지능인

▲초등학교 교실 자료사진. ⓒ 연합뉴스=OGQ
사안처리 과정에서도 경계선지능 학생은 제도 안에서 충분히 보호받기 어렵다. 관련 학생의 진술이 핵심이 되는 학교폭력 사안처리 과정에서 피해 사실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해 별다른 조치 없이 사건이 종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억울하게 가해자가 되더라도 이들의 인지적 취약성이 조치 과정에 반영되기는 어려운 구조다.
최수진 사단법인 느린소리 대표는 "교실 내 아이들은 경계선지능 학생의 인지적 특성을 쉽게 알아채고 이용한다"면서도 "정작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학교, 선생님, 조사관들은 경계선지능인의 특성을 모르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짚었다.
현행 학교폭력 절차에 따르면, 장애학생은 사안처리 과정에서 특수교육 등 관련 분야 전문가의 진술 보조를 지원받을 수 있다. 장애학생을 대상으로 한 학교폭력은 경미하더라도 임의로 종결할 수 없고, 가중 처벌을 할 수 있다는 규정도 마련돼 있다. 그러나 경계선지능 학생은 법적 장애 범주에 포함되지 않아 별도의 보호를 받기 어렵다.

▲지난 5월 공포된「강원특별자치도교육청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에 경계선지능 학생에 대한 조력 지원이 포함됐다. ⓒ 강원도의회
경계선지능 학생의 학교폭력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최근 강원, 충북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경계선지능 학생이 학폭 조사·상담 및 심의 과정에서 전문가의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 조례를 개정했다. 그렇지만 조례 개정은 지원을 명문화했다는 데 그칠 뿐 실효성을 담보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현장의 평가다.
복잡하고 감정적으로 소진되기 쉬운 학교폭력 절차에 대한 부담은 피해 학생과 가족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부모들은 아이의 '경계선지능'이라는 특성이 학교에 알려질 경우 생길 수 있는 불이익을 우려해 학교에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일 자체를 망설이기도 한다. 피해 사실을 알리는 순간부터 '보호'와 '낙인' 사이에서 깊은 고민이 시작되는 것이다.
김석민 푸른나무재단 상담본부 과장은 "상담본부로 들어오는 학폭 피해 사례 중 경계선지능 학생의 사례도 적지 않다"며 "충분한 조치를 받을 수 있는 사안임에도 피해 학생 진술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심의 결과가 '조치없음'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심의위원회가 조치없음으로 결론 내릴 경우, 피해 사실이 존재하더라도 학교가 취할 수 있는 후속 조치는 없다. 피해 학생은 보호받지 못한 채 다시 일상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 이 기사는 아이들과미래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