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직 생가조선조 성리학의 거두 김종직이 태어나고 자라고 별세한 '추원재'다. 뒷산엔 그의 묘소가 있다. ⓒ 정근영
조선 전기 문인이자 영남 사림의 거두인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이 찬한 <청구풍아 (請丘風雅)>는 신라 말기의 최치원으로부터 조선 초기 성간(成侃) 등에 이르기까지 문인들의 작품을 모은 시선집이다.
'청구'는 우리나라를 가르키는 이칭이고 '풍아'는 시를 뜻함으로 <청구풍아>는 우리 민족이 남긴 한시 작품을 의미한다. 김종직은 당대의 명작으로 알려진 517편의 주옥 같은 작품을 선정하였다.
김종직은 서문에서 "나 종직은 시를 배우기 시작한 후부터 이따금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은 시를 구해 읽었었다. 그 사이 시의 격율도 무려 세 번씩이나 변해왔던 것이다.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에는 오로지 만당(晩唐)의 시풍만을 익혀왔으며, 고려 중기에 들어서는 오로지 소동파의 시풍만을 배워왔던 것이다. 그후 고려 말기에 이르러 익재 이재현 등 여러 명공(名公)들께서 차츰차츰 구습을 변화시켜 아정(雅正)한 시풍을 만드시는데, 우리 조선의 문명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그 전철을 뒤밟게 되었던 것이다." 라고 썼다.
여기서는 <청구풍아>를 번역한 유영봉의 책에서(이회문화사, 2001)에서 몇 편을 골랐다.
강남의 딸들(최치원)
강남 땅의 방탕한 풍속은
딸들을 교태롭고 예쁘게만 키우나니
천성이 꾸미기를 좋아하여 바느질은 부끄러워해
치장을 마치면은 거문고를 타는데
배우는 노래 가락 아금도 아니고
대부분 춘정에 이끌린 것이로다
제 딴에는 꽃같은 얼굴이
오랜 세월 시들지 않을 거라 여겨서
도리어 이웃집의 여자를 비웃누나
밤 세워 북과 베를 굴러서
베 짜기에 비록 네 몸 힘들지만
비단 옷은 네게 않 돌아갈 걸 알면서.
이규보의 '여귀 꽃'속의 백로
앞 여울에 물고기랑 새우들 잔뜩 해서
물결 뚫고 들어가련 생각 있는데
사람보고 문득 놀라 일어나
여귀 꽃 핀 언덕에 다시 날아 모였다가
목을 빼고 사람들 돌아가길 기다리니
보슬비에 깃털이 젖어가도
마음은 여울물 속 물고기에 있는데
사람들은 기심(機心) 잊고 서 있다고 가르치네.
이색의 독서
독서란 산을 유람하는 것 같아서
깊고 얕은 곳 모두 스스로 얻어야지
검은 이무기는 깊은 못에 서려 있고
붉은 봉황새는 하늘가로 나른다
정회의 내용 담긴 열 여섯 자
확연히 마음 속에 있으니
다섯 수레 책으로 도움 삼아
박문하고 약례하여 하늘의 도 살펴봄에
왕은 오랜 세월 쓸쓸하고
대도는 가시밭 덤불 덥혔으니
누가 알랴 봉창 아래
책 덮고 긴 한숨 내쉬는 걸.
이색의 '뽕을 따는 아낙들'
성안에 누에치는 아낙들 많으니
뽕잎이 어찌 그리 살펴있나
비록 뽕잎 적다고들 말하지만
누에들 배고픈 걸 보지 못했나니
누에가 날아서는 뽕잎이 많으나
누에가 자라면은 뽕잎이 드물어져
땀 흘리며 아침저녁 내달림을
자기 몸에 비단옷을 입으려 함 아니라오.
덧붙이는 글 | [붓의 향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