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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04 15:17최종 업데이트 25.12.04 15:17

김원룡의 '한국의 미'

[붓의 향연 16] 자연에 인공이 끼여서는 자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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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美)'를 탐구하는 학자 중에 김원룡은 그 중심이다.

국립박물관장, 서울대 인문대 고고학과 교수, 서울대 박물관장, 문화재위원회 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등을 지내고, <신라 토기의 연구>, <한국예술사>, <한국의 고분>, <한국미의 탐구>, <한국문화의 기원> 등 굵직한 저서를 남겼다.

왕곡마을 초가 자연미는 자연에 대한 동경심, 경외심, 자연을 닮으려는 생각에서 나온다. 산봉우리와 초가지붕은 많이 닮아 있다
왕곡마을 초가자연미는 자연에 대한 동경심, 경외심, 자연을 닮으려는 생각에서 나온다. 산봉우리와 초가지붕은 많이 닮아 있다 ⓒ 김정봉

한국의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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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를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자연의 미'라고 할 것이다. 자연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것은 한국적 자연으로, 한국에서의 미술활동의 배경이 된 바로 그 한국의 자연이다. 한국의 산수에는 깊은 협곡이 패어지고 칼날 같은 바위가 엄립하는 그런 요란스러운 곳은 적다. 산은 둥글고 물은 잔잔하며, 산줄기는 멀리 남북으로 중첩하지만, 시베리아의 산맥처럼 사람이 안사는 광야로 사라지는 그러한 산맥은 없다.

둥근 산 뒤에 초가집 마을이 있고, 산봉이 높은 것 같아도 초동이 다니는 길 끝에는 조그만 산사가 있다. 차창에서 내다보면, 높은 산 위에 올라 서 있는 사람들의 키가 상상 이외로 커 보이는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산은 부드럽고, 사람을 위압하지 않는다.

봄이 오면 여기에 진달래가 피고, 가을이 오면 맑은 하늘 아래 단풍이 든다. 단풍은 세계 도처에서 볼 수 있으나,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길을 뒤덮고 산을 감추어 버리는 그러한 거대하고 위압적인 단풍은 아니다. 자기 자신을 인식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주장하지 않는 겸손 그대로의 단풍이다. 아니, 겸손하다기보다는 아주 자기의 존재조차 무각무인하는 천의무봉, 해탈성불한 것 같은 단풍이다.

단풍 든 시절의 한국의 산은, 보고 있으면 동심으로 돌아가 산꼭대기부터 옆으로 누워 데굴데굴 굴러 보고 싶은 그러한 산이다. 이것이 한국의 자연이다.

한국의 산에는 땅을 가르고 불을 내뿜는 그 무서운 화산도 없다. 또한, 한국의 하늘에도 구름이 뜨지만, 태풍을 휘몰아 오는 그런 암운은 없다. 여름에는 때때로 하늘을 덮고, 우레소리로 사람을 놀라게 하지만, 추석이 되면 동산에 떠오르는 중추명월에 자리를 비켜 주는 그런 구름이다. 세상 또 어디에 흰구름 날아간 뒤의 맑은 한국 하늘 같은 어여쁨이 있을까! 이 맑은 하늘 밑, 부드러운 산수 속에 한국의 백성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미의 세계요, 이 자연의 미가 바로 한국의 미다. 여기에서 어떻게 사색을 요구하는 괴이한 미가 나타나고, 인공의 냄새 피우는 추상과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까? 되풀이하지만, 한국의 미를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바로 '자연의 미'라 할 것이다.

자연에 인공이 끼여서는 자연이 아니다. 자연은 미추를 초월한, 미 이전의 세계다. 사람의 꾀에서 생겨나는 인공의 미가 여기에는 있을 수 없다. 자연에는 오직 자연의 미가 있을 따름이며, 자연의 섭리에 입각한 만유존재 그 자체의 미가 있을 뿐이다. 미추를 인식하기 이전, 미추의 세계를 완전 이탈한 미가 자연의 미다.

한국의 미에는 이러한 미 이전의 미가 있다. 이것은 시대와 분야에 따라서 미의 형태가 바뀌고 강약 잡산의 차는 있으나, 한국의 미의 근본을 흐르는 이 자연의 미의 성격에는 변함이 없다. 고구려 시대의 고분벽화에는 중국 회화에서 보는 세련된 선이 없을는지 모른다. 나뭇잎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의 손바닥 같고, 연봉 잇닿은 산맥이 사람이나 호랑이보다 작게 나온다. 그 선은 굵고 색은 어둡다. 그뿐 아니라 ,이 고구려의 벽화에는 기교가 없다. 유치원이나 국민학교 아동들처럼 화면에 그저 자기가 기도하는 대상물이나 장면을 재현하려고 할 뿐, 구도나 배색에 아무런 생각이나 욕심이 없다.

그림을 부탁한 사람도, 부탁을 받아 그림을 그린 사람도, 그림의 결과나 효과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고, 그림의 내용이 주문한 대로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가 문제인 것이다. 그것이 미술작품이라야 한다는 생각도 없고 미술작품을 만든다고 자각한 것도 아니다.

석공들이 묘실을 쌓아올리면 화공이 들어가서 그림을 그렸을 뿐이다. 이것은 예술가로서의 화가가 아니고, 기술 직업인으로서 화공, 화장이 그린 그림이다. 옛날 골목길 구멍가게 간판에 그려 있던, 담배 피우는 호랑이같이, 이것은 예술가 기질 이전의 순진무구한 작품이다. 이런 그림에 무슨 기질이 들면, 그 그림은 아예 망그러지고 만다.

고구려 벽화에서도 장서의 삼묘나 통코우(通溝)의 사신총처럼 화공의 기술이 발달된 예에 있어서는, 전대의 순진한 벽화에서 보고 느끼던 고구려의 세계는 많이 변하고 속화되어 있다. 이것은 중국의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중국인이 그린 중국화에서는 중국이 가지는 중국적인 격과 정신이 있으나, 의국에서 그 위형만을 빌어 가면 외형과 내형과의 융화가 잘 되지 않아 이상한 것으로 되고 만다.

고구려는, 말기에 새로 밀려들어오는 중국 회화의 영향을 충분히 소화해서 다시 고구려 자체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지지 못한 채 망하고 말았다.(후략)(김원룡, <한국미의 탐구>)

덧붙이는 글 | [붓의 향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붓의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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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붓의 향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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