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변은 누구나 겪는 가장 기본적인 생명 활동이지만, 이를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조건은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특히 노년의 삶에서는 배변 한 번이 하루의 표정과 활력, 심지어 인간으로서의 존엄까지 결정한다. 이 단순하지만 핵심적인 진실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살아간다.
어느 날, 오랫동안 물 분야를 이끌어온 한 원로교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목소리는 다소 지친 듯했지만, 그 안에는 오래 답답했던 무언가가 비로소 풀려난 사람만이 낼 수 있는 가벼움이 담겨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른 그는 조용히 내게 말했다.
"며칠 동안 너무 불편했는데 드디어 배변이 되니 몸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네.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고."
그 말은 단순히 '배변이 잘 됐다'는 소식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한 인간이 다시 자신의 몸을 되찾는 순간, 그리고 생각과 마음이 다시 깨어나는 순간이 함께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목소리 속의 안도감과 회복감을 깊이 느꼈다. 왜냐하면 이것은 결코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언젠가 마주할 삶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노년의 삶에서 배변은 생존이자 존엄이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을 숱하게 했다. 속이 꽉 차 더부룩하면 아무것도 할 의욕이 없고, 아무리 산해진미가 있어도 먹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몸이 무겁고 마음이 답답해지면 아무리 재미있는 일이나, 평소 즐기던 일조차 귀찮아진다.
하지만 속이 시원하게 비워지는 순간, 세상은 다시 밝아진다.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탁 트이며
그야말로 삶의 활력이 온몸에 돌기 시작한다. 한국인이 일이 잘 풀릴 때도, 마음이 후련할 때도,
그리고 배변이 잘 됐을 때도 "속이 시원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속을 비운다'는 것은 단순한 생리 현상이 아니라 삶의 기운을 되찾는 회복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요양병원과 돌봄시설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 가운데 하나는 "배변만 잘 돼도 어르신이 하루를 견딜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말은 사실이다. 노년의 하루는 배변의 성공과 실패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배가 불편하면 식사도 거르고, 움직일 힘이 없고, 누워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고, 감정도 가라앉으며, 사람과의 대화조차 줄어든다.
그러나 속이 비워지고 편안해지는 순간, 어르신들의 표정이 달라지고, 식사량이 늘고, 몸을 일으키는 힘이 생기고, 대화가 살아난다. 그렇기에 배변은 노년의 삶에서 생존에 가장 가까운 권리이며, 동시에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존엄에 해당한다.
정부의 노인복지 항목들이 많지만, 정작 가장 기본이 빠졌다
정부는 연금, 의료지원, 돌봄 서비스 등 다양한 노인복지를 펼치고 있다. 그것이 모두 중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복지가 있다. 바로, '속을 시원하게 비울 수 있는 권리'이다.
배변이 해결되면 식사, 수면, 활동, 감정 안정, 인간관계, 재활 의지 이 모든 것이 동시에 나아진다. 노년의 삶의 질은 큰 정책보다 아침에 스스로 속을 비울 수 있는가로 결정된다. 그런데도 배변 문제는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서 항상 뒤로 밀린다.
수치심 때문에 숨겨지고, 복지 항목에서 세밀하게 다뤄지지 않으며, 병원 평가 기준에서도 변두리에 놓인다. 그러나 속을 비우지 못하는 고통과 속을 비웠을 때의 회복감은 노년에게는 '모든 것'이다.
이제 국가와 사회는 다음의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노년의 몸이 가장 먼저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은 명확하다.
▲수치심 없이 비울 수 있는 환경 ▲스스로 비울 수 있도록 돕는 기술 ▲냄새·감염·피부 손상을 줄이는 설비 ▲재택 돌봄을 위한 배설 케어 기술 ▲'배변권'을 복지법에 명문화 하는 일 ▲요양병원 평가에 '배변의 질'을 포함하는 기준 등이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노인 복지 혁신이다.
우리가 우주비행사의 배설 문제를 위해 NASA가 수십 년 연구한 기술을 보며 감탄한다면, 정작 지구에서 가장 배설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기술도, 정책도, 투자의 방향도 어르신의 속을 편하게 해주는 곳에서 출발해야 한다.
속이 편해야 마음이 편하고, 마음이 편해야 삶이 산다
속이 막히면 마음도 막히고, 속이 편해지면 마음도 풀린다. 속을 비우는 것은 단순한 생리 현상이 아니라 하루를 다시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며 노년의 존엄을 결정하는 기준이다. 박중현 교수님의 인용 한마디가 우리에게 다시 일깨워준다.
'배변이 잘 되면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 듭니다.' 그 말은 노년의 삶을 구성하는 가장 작고도 가장 큰 진실이다. 속이 시원한 나라, 속 편한 국민, 속 비움이 존중되는 사회, 그것이 진정한 문명이고, 가장 기본적인 복지다.
덧붙이는 글 | 배변은 모두가 겪는 생명 활동이지만,
이를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조건은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이 글은 단지 한 사람의 경험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마주할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기술·정책·복지의 방향을
‘속을 시원하게 비울 수 있는 사회’로 맞춰야 한다고 믿는다.
속이 편한 사회가 곧 사람 살 만한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