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자동차그룹이 올해 국내에 역대 최대규모인 24조3천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힌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 본사의 모습. ⓒ 연합뉴스
"이제 숨통이 조금 트이지 않을까요? 정부도 고생했고, 국회에서 잘 처리되고, 미국의 다음 스텝(step)을 봐야할 것 같고…"
최근 만난 현대차그룹 고위임원의 말이다. 지난 26일 '한미 전략적 투자관리를 위한 특별법(아래 대미투자특별법)'이 국회에 발의된 이후, 그동안 쌓였던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그는 "그룹 전체적인 매출이나 판매 실적은 나쁘지 않았다"면서 "4월 이후 미국 쪽에서 관세 25%를 갑자기 때려 맞으니까"라고 말했다. 당초 예상했던 올해 현대차 그룹의 영업이익에서 수조원이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기아의 고위인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난해까지 10%대를 넘었던 영업이익률이 한자리 숫자로 떨어졌다"면서 "물론 다른 글로벌 경쟁회사들과 같은 조건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한미FTA로) 0% 관세에서 25%를 맞았으니까…"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어 "이제 다시 15% 동일 조건에서 (경쟁사들과) 시작하고, 11월치 관세도 일부 환급을 받게 됐으니 다행"이라며 "이제부터 진짜 실력이 나오는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몇달새 수조원 날아가"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정상회담장으로 이동하며 대화하고 있다. ⓒ 대통령실
현대차그룹은 최근 몇년새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 자동차 판매로만 따져도 일본 도요타와 독일 폴크스바겐 그룹에 이어 글로벌 3위다. 지난해 현대차와 기아 등의 영업이익률은 글로벌 자동차 회사 가운데 최고수준이었다. 내로라 하는 세계 자동차 회사들이 금융위기와 코로나 등 국제 위기와 친환경 전동화로 급변하는 시장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올 들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전쟁은 현대차그룹의 질주에 급제동을 걸기에 충분했다. 지난 4월부터 부과된 25% 자동차와 부품 관세는 북미 시장 판매 증가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 자체를 크게 후퇴시켰다. 반도체와 별개로 자동차 산업은 중소 업체 등까지 국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 때문에 정부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었다.
지난 7월 한미정상회담 이후 치열한 한미간 협상이 계속됐고,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의체(아펙)에서 한미 정상 협의는 양국 사이의 전략적 투자 양해각서(MOU) 체결까지 이끌어 냈다. 이 양해각서를 이행하기 위해 만든 것이 대미투자특별법이다.
3500억 달러(약 510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단계적으로 집행하기 위한 재원을 마련하고, 이를 운용하기 위한 별도의 기금과 공사 설립 등을 법으로 규정했다. 또 외환시장 불안시 투자 시점과 규모 등을 조정할 수 있는 안전장치 등도 담았다. 단순히 '미국에 돈 푸는 법'이 아니라, 관세·투자·환율 리스크를 한 묶음으로 관리하는 매커니즘을 만들겠다는 의도다.
지난 26일 국회에 법안이 발의된 직후, 산업자원통상부는 러트닉 미 상무장관에게 입법 절차가 시작됐다고 공식적으로 알렸다. 이어 차·부품 관세 인하를 11월 1일로 소급 적용하고, 관련 내용을 연방 관보에 조속히 게재해 달라고 요청했다. 미 연방 관보에 게재가 완료돼야 한국산 차·부품 품목 관세는 25%에서 15%로 최종 공식 인하된다.
얼마나 이익이 회복될 것인가
현대차그룹은 '관세 쇼크' 이후의 손익 구조를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다. 또 정의선 회장의 리더십과 함께 '관세 15% 시대의 진짜 승부'에 관심이 쏠린다.
현대차그룹 올해 실적을 보면, 관세 변수의 위력이 숫자로 그대로 드러난다. 현대차는 지난해까지 5년 연속 사상 최대 매출과 8%대 영업이익률을 기록했고, 올 1분기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2분기 들면서 전체적인 매출은 작년에 비해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크게 떨어졌다. 2분기 3조6016억 원, 3분기 2조5373억 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15.8%, 29.2% 감소했다. 영업이익률은 5.4%까지 급락했다. 현대차 주요 그룹 3개 회사(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의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19조4351억 원이다. 이는 작년에 비해 17% 줄어든 수치다.
급변하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도 현대차 그룹은 매출과 판매는 사상최대를 기록했지만 4월 이후 미국발 관세쇼크로 수익성 지표는 되레 후퇴했다. 현대차는 3분기까지 관세 비용만 2조6490억 원, 기아는 2조200억 원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대미투자특별법 발의로 11월 1일부터 관세를 15%로 소급 인하하는 조건이 갖춰지면서, 이제 시선은 '얼마나 이익이 회복될 것인가'에 쏠려 있다. 관세가 10%p 인하(25%→15%) 될 경우, 같은 물량과 가격 등 조건을 가정하면 관세 부담이 약 40% 줄어들게 된다.
단기적으로 11월 1일 이후 납기 부분의 관세율 자체가 낮아지고, 11월 초부터 중순 사이 이미 낸 25% 관세에서 10%p에 대한 환급 효과가 더해지면, 현대차 그룹의 수익성은 크게 나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대미 수출의 불확실성이 완화되고 (관련 기업 등의) 수익성 개선이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정의선 현대차 그룹 회장도 "(관세) 소급 적용이 11월 1일로 돼서 다행"이라며 "내년 미국 시장이 괜찮아질 것으로 본다"고 언급했다. 현대차 입장에선 그동안 미국 시장에서 차량 가격 인상 없이 관세를 떠안으며 점유율을 유지해온 전략이 일정 부분 보상받는 셈이다.
'위기 속 투자 지속' 정의선 리더십 시험대

▲정의선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이 1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용범 정책실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2025.11.16 ⓒ 연합뉴스
현대차그룹은 이제 '관세 15% 시대'를 맞게 됐다. 다소나마 '숨 쉴 틈'을 얻은 상황이다. 올 3분기까지 19조원대에 머문 영업이익이 다시 20조원대 중반으로 회복될 가능성도 생겼다.
정 회장은 이번 관세 위기 속에도 그룹의 투자 전략을 한 단계 더 올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한미 관세 합의 직후 내놓은 국내 125조 원이 넘는 투자가 대표적이다. 국내 제조업 공동화를 우려하는 목소리에 적극 대응하면서 인공지능과 로봇, 수소와 전기차 전용 공장 등을 확대한다. 지난 5년동안 그룹이 국내에 투자했던 89조 원에 비해 36조 원이나 늘어난 금액이다.
현대차의 최대 시장인 미국에도 260억 달러를 투자한다. 2030년까지 미국 판매 차량의 80% 이상을 현지에서 만들어 판매한다. 또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소프트웨어, 데이터센터 등에도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다.
정 회장은 그동안 꾸준히 '지속가능한 성장'과 '일관된 변화'를 주창해 왔다. 전동화와 수소, 로봇 등으로 사업부문을 확장하면서도 내연기관, 하이브리드 등 이익률이 높은 친환경차 비중도 여전히 높게 유지하고 있는 것. 그는 "단기 마진 후퇴를 감수하더라도, 시장 점유와 미래 투자 속도는 늦추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물론 대내외 리스크는 여전하다. 향후 미국 대선과 의회 구도의 변화에 따라 관세가 또 다시 변수로 떠오를 수 있다. 대미투자특별법 국회 처리 지연과 내용 수정 등으로 기업들이 기대하던 '불확실성 해소'의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그룹의 국내외 대규모 투자에 따른 부담과 수익성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정의선 리더십의 성패는 대규모 투자와 관세-정치 리스크를 동시에 관리하면서, 이익과 기술리더십까지 확보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관세 쇼크가 잠시 줄어든 지금이 정의선과 현대차에게는 진짜 승부가 남은 셈이다.

▲울산 북구 염포동에 있는 현대자동차 수축 선적부두 ⓒ 울산시 사진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