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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01 08:53최종 업데이트 25.12.01 08:53

가족은 하루하루 이어 쓰는 관계

스무 살을 앞둔 자녀와 '인생 첫 술'을 기념하는 시간을 보내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며칠 전, 곧 스무 살을 앞둔 딸이 아내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엄마, 나… 인생 첫 술 마셔보고 싶어."
입시로 지친 모습, 수시 발표 결과에 속상해하던 마음을 지켜봤던 터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그렇게라도 속상함을 털어냈으면 싶었던 건 부모 쪽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 집엔 남들이 보기엔 조금 엉뚱한 철학이 있다.

'첫 술은 아빠에게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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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도 스물이 되던 날, 온 가족과 함께 첫 술을 기념했다. 동생 내외까지 참여해 마치 작은 가족 축제처럼 치렀다. 아이가 한 단계 성장하는 순간을 가족이 함께 축하해 주는 일, 그것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지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반응은 엇갈린다. 대단한 가족이라는 칭찬도 있지만, '요즘 애들이 이미 다 경험했을 텐데 무슨 첫 술이냐'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우리는 결과가 아니라 의미를 나누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아이들도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고, 부모와 나누는 이 작은 의식을 소중하게 여겼다.

인생 첫 술을 기념하며 가족들간의 소통을 이미지로 생성해봤습니다.
인생 첫 술을 기념하며가족들간의 소통을 이미지로 생성해봤습니다. ⓒ AI

그날 딸은 내게 말했다.

"아빠, 친구들 보면 아빠 같은 사람 없대요. 다들 어색하고 딱딱하다는데, 난 아빠가 너무 좋아."

십대 끝자락의 딸에게 듣기 쉬운 말이 아니다. 갑작스런 고백에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 옆에서 듣고 있던 아들이 한마디를 보탰다.

"아빠는 내 사회생활 롤모델이에요. 정말 리스펙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아내는 "오늘은 칭찬에 잠 못 자겠네?"라며 농담해 분위기를 풀어줬지만, 그 날의 따뜻함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생각해 보면 우리 세대는 부모에게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말로 해야 하냐', '쑥스럽다'는 핑계로 마음을 돌려 말하곤 했다. 그러나 살아 보면 안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 그리고 가까울수록 표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가족은 세상 누구보다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존재다. 다른 관계에서는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가족은 이미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성장해 왔다. 그 이상의 신뢰가 어디 있을까. 그러나 그런 가족도 소통이 끊기면 쉽게 멀어진다. 가까이에 있다는 이유로 오해를 방치하고,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싶어 침묵을 선택한다. 그 침묵이 쌓이면 단절이 된다.

요즘 집 안에 대화가 사라진 가족이 많다고 한다. 한 공간에 있어도 각자의 화면만 바라보며 침묵이 일상이 된 집. 그러나 가족에게도 관심과 대화는 기본이자 의무다. 하루에 몇 마디라도 서로 안부를 묻고 마음을 나누는 일, 그것이 평생의 동료를 만드는 힘이다.

소통의 반대는 불통이 아니라 침묵과 단절이다. 함께 사는데도 대화가 없어 외로워지고, 같은 공간에 있어도 마음은 멀어지는 가족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매일 옆에 있어도, 말하지 않으면 닿지 않는 마음이 있다는 걸. 평생 내 편을 이어가려면, 그 정도의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딸과 아들의 '인생 첫 술'을 함께하면서 다시 깨달았다. 가족은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아니다. 작은 말 한마디, 짧은 눈빛 교환 하나가 서로를 따뜻하게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그날 아이들이 해준 말은 마치 오래 기다리던 선물 같았다. 부모로서 완벽하지 못한 날도 많았지만, 그래도 잘 살아왔다는 위로를 받은 기분이었다. 앞으로도 우리는 서로를 더 자주 바라보고, 더 자주 표현하며 살아가려 한다. 가족이란, 결국 그렇게 하루하루 다시 이어 쓰는 관계이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가족#소통#관계#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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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일상과 행복한 생각을 글에 담고 있어요. 제 글이 누군가에겐 용기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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