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천 용암서원 앞에 있는 남명 조식 선생의 흉상과 을묘사직소를 새긴 비석 ⓒ 김종신
우리나라는 봉건시대에도 사회를 풍자하고 권력자를 비판하는 저항 문인들이 존재하였다. 특히 권력이 타락하고 가렴주구가 심할 때이면 목숨과 직을 걸고 극렬하게 비판한 문인들이 있었다.
허리에 칼을 찬 선비로 널리 알려진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1572)은 어려서부터 학문에 열중해 여러 학자들의 서적을 섭렵하여 성리학의 대가로 추앙받았다. 조정으로부터 여러 차례 관직을 제수받았으나 모두 사퇴하고, 오직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하여 이황과 더불어 당대 유학자들의 사표가 되었다.
그는 오로지 인성(人性)과 천명(天命)을 닦은 후에 실행할 것을 학문의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정부의 비리에는 임금이나 임금의 어머니를 가리지 않고 엄격하게 비판하여 조정은 물론 유림 사회를 놀라게 하였다.
다음에 소개할 '단성소(丹城疏)'는 원래 이름이 '을묘사직소'이다. 단성현 현감에 제수되어 나라가 되어가는 꼴을 보고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쓴 사직소에서 임금 명종이나 모후인 문정왕후를 정면으로 공격하였다. 이 상소가 알려지면서 어용문인·부패관리들이 '불경군상죄'(不敬君上罪)를 들어 남명을 처벌하라는 상소가 빗발쳤다. 요지를 살펴보자.

▲남명 조식 선생을 기리는 용암서원 앞에는 1555년 조선 명종이 내린 단성 현감직을 사직하며 뇌룡정에서 쓴 상소문(乙卯辭職疏?을묘사직소)이 새겨져 있다.
ⓒ 김종신
단성소
낮은 벼슬아치들은 아랫자리에서 히히덕거리면서 술과 여색에만 빠져 있습니다. 높은 벼슬아치들은 윗자리에서 빈둥거리면서 뇌물을 받아들여 재산 긁어모으기에만 여념이 없습니다. 오장육부가 썩어 뭉크러져 배가 아픈 것처럼 온 나라의 형세가 안으로 곪을 대로 곪았는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내직(內職:중앙관서의 관직)의 벼슬아치들은 자기들의 당파를 심어 권세를 독차지하려 들기를, 마치 온 연못 속을 용이 독차지하듯 하고 있습니다. 외직(外職 : 전국 각도, 각 고을의 관직)에 있는 벼슬아치들은 백성을 멋대로 벗겨 먹기를, 마치 여우가 들판에서 날뛰는 것 같습니다. 신이 자주 낮이면 하늘을 우러러 깊이 탄식하고 밤이면 천정을 쳐다보고서 답답해하면서 흐느끼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대비(大妃:문정왕후)는 신실하고 뜻이 깊다 하나 깊은 구중궁궐의 한 과부에 불과하고, 전하는 아직 어리니 다만 돌아가신 임금님의 한 고아일 뿐입니다. 백 가지 천 가지로 내리는 하늘의 재앙을 어떻게 감당하며 억만 갈래로 흩어진 민심을 어떻게 수습하시겠습니까?
또 신이 요사이 보니, 변경에 일이 있어(왜구의 침략으로 전라도 일대가 함락된 '을묘왜변'을 말함) 여러 높은 벼슬아치들이 제때 밥도 못 먹을 정도로 바쁜 모양입니다만, 신은 놀라지 않습니다. 신은 이 일이 벌써 20년 전에 일어날 일인데도, 전하의 신성(神聖)한 힘 때문에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발발한 것이지, 하루아침에 갑자기 발발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평소 조정에서 뇌물을 받고 사람을 쓰기 때문에 재물은 쌓이지만 민심은 흩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장수 가운데서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 없고 상에는 지킬 군졸이 없으므로 왜적이 무인지경에 들어온 것입니다. 이 어찌 이상한 일이겠습니까? 전하의 나랏일은 이미 잘못되었고, 나라의 근본은 이미 없어졌으며, 하늘의 뜻도 이미 떠나버렸고, 민심도 이미 이반되었습니다. 비유컨대, 큰 고목나무를 백 년 동안 벌레가 속을 파먹어서 진액이 다 말라버려 언제 폭풍우가 닥쳐와 쓰러질지 모르는 지경이 된 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이번 사변도 대마도 왜놈들이 몰래 결탁하여 앞잡이가 되었으니, 만고에 씻지 못할 큰 치욕입니다. 전하께서는 영묘(靈妙)함을 떨치시지 못하고서 그 머리를 재빨리 숙이셨습니다. 옛날에 우리나라에 대해서 신하로 복종하던 대마도 왜놈들을 대접하는 의례(儀禮)가 천자(天子) 나라인 주(周) 나라를 대하는 의례보다 더 융숭합니다. 세종대왕 때 대마도를 정벌하고 성종대왕 때 북쪽 오랑캐를 정벌하던 일과 비교할 때 오늘날의 사정은 어떻습니까?
그러나 이런 일은 겉으로 드러난 병에 불과하지, 가슴속이나 뱃속의 병은 아닙니다. 가슴 속이나 뱃속의 병은 덩어리지고 막혀서 아래위가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백성들에게 하소연하여 군사를 불러 모아 전하를 위해 부지런히 일하게 하고 나랏일을 정리하는 일은, 자질구레한 형벌제도 같은 것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전하의 마음 하나에 달려있을 따름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전하께서는 무슨 일에 종사하시는지요? 학문을 좋아하십니까? 풍악이나 여색을 좋아하십니까? 활쏘기나 말 타기를 좋아하십니까? 군자를 좋아하십니까? 소리를 좋아하십니까? 소인을 좋아하십니까? 전하께서 좋아하시는 것이 어디 있느냐에 따라서 나라의 존망이 달려 있습니다.
만약 하루라도 능히 새로운 정신으로 깨달아 분연(奮然)히 떨쳐 일어나 학문에 힘을 쏟으신다면, 하늘이 부여한 밝은 덕을 밝히고 백성을 날로 새롭게 만드는 일에 대하여 얻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하늘이 부여한 밝은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만드는 일 안에, 모든 착한 것이 다 포함되어 있고, 모든 교화(敎化)도 거기로부터 나옵니다. 밝은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을 거행한다면, 나라는 고루 잘 다스려질 것이고, 백성들은 화합하게 될 것이고, 나라의 위기도 안정되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물며 정치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인재를 취하여 쓸 때 전하께서 솔선수범하시고, 솔선수범하실 때 도(道)로써 몸을 닦으십시오. 임금님께서 사람을 취해 쓸 때 솔선수범하신다면, 전하 가까이서 모시는 신하들이 모두 사직을 지킬 만한 사람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사람을 취해 쓸 때 눈으로써 한다면, 곁에서 모시는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하를 속이거나 저버릴 무리로 찰 것입니다. 그런 때가 되면 굳게 자기 지조라도 지키는 소견 좁은 신하인들 어찌 있을 수 있겠습니까? (<남명집>)
덧붙이는 글 | [붓의 향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