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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29 17:44최종 업데이트 25.11.29 17:44

홍귀달, '사간원 벽에 걸어 둔 글'

[붓의 향연 11] 오랫동안 참선비들의 지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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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간원 터를 알려주는 표지석. 서울 경복궁 동문인 건춘문 맞은편에 있다.
사간원 터를 알려주는 표지석. 서울 경복궁 동문인 건춘문 맞은편에 있다. ⓒ 김종성

조선조는 국정의 공정을 가하고자 여러 가지 제도적 방책을 마련하였다.

오늘의 감사원 기능과 유사한 사간원이 그것이다. 관리 중에서 가장 우수하고 충직하며 사심이 없는 선비를 골라 배치했다. 이들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삭탈관직으로 협박해도 흔들림이 없었다. 물론 개중에는 쉽게 권력 앞에 엎드리고 진실을 배신한 부유(썩은 선비)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간원이 자신의 직분을 헤아리면서 그 직에 충실하였다. 조선 초기의 인물 홍귀달(洪貴達, 1438~1504)의 자는 허백당(虛白堂), 세조 6년 강릉 별시 을과에 급제 이시애의 난에 공을 세워 이조정랑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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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이 강직하여 연산 4년 무오사화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좌천되고, 연산 10년 손녀를 궁중에 들이라는 명을 거역하여 귀양길에 교수형으로 죽었다.

그의 '사간원 벽에 걸어 둔 글'은 이 비참한 죽음과 함께 오랫동안 참선비들의 지침이 되었다.

사간원 벽에 걸어 둔 글

아주 옛날에는 간쟁하는 사람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누구나 임금에게 자유롭게 간쟁하였고, 비록 간쟁을 하지 않았더라도 나라가 잘못되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후세로 내려오면서 사정이 달라져서 간쟁하는 관직을 특별히 두게 되었고, 그 관직에 있는 사람이라야만 비로소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간쟁하는 관직에 있으면서 간쟁을 하지 않으면 임금은 자신의 과오를 듣고 깨달을 기회가 없어진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한 나라의 우두머리인 임금이 병들게 되고, 사지와 온갖 뼈마디 역할을 하는 신하와 백성도 따라서 못 쓰게 된다. 어찌 두렵지 않은가?

오늘날 간쟁의 언책(言責)을 맡은 자로는 그 직위가 다섯인데 대사간(大司諫), 사간(司諫), 헌납(獻納) 그리고 두 명의 정언(正言)이 그것이다. 모두 조정에서 엄격한 기준으로 뽑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결 같이 임금의 과오를 바로잡아 나라를 바르게 이끌도록 해야 한다고 마음으로 다짐하고, 또 '내가 만일 나의 직책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어찌 하루라도 이 직책에 있겠는가?'하고 다짐한다.

아니 마음으로만 맹세하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비단에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놓고 그 밑에 이름을 써서 사간원 벽에 걸어 놓는다. 그리고 앞으로 이 이름에 걸맞게 국사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들의 마음이 이와 같으니 어찌 백성들의 복이 아니겠는가? 함허자(涵虛子:작자의 호)는 여기에 칭송하는 말을 이렇게 덧붙여 쓴다.

나라에 간쟁하는 벼슬을 두니 곧 국가의 복이다.
그 자리에 꼭 알맞은 사람을 두면 더욱 큰 복이라.

나는 간절히 바라노라!
성상께서 산수 자연 속에 숨어 사는 자의 말이라도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시면 나라에 유익하여
억만년 무궁한 국운 반석 같이 튼튼하리라고.
- <허백당집(虛白堂集)>

덧붙이는 글 | [붓의 향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붓의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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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붓의 향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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