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5.12.02 09:25최종 업데이트 25.12.12 11:41

일본 꽃집에서 일을 시작했다

수 백년 전통을 자랑하는 꽃꽂이의 나라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B씨의 소개로 꽃 가게에 출근하기로 했다. 면접도 없었다. 아무리 견학 알바라 해도 이렇게 싱겁게 일을 시작해도 되나 싶었다. 역시 아는 얼굴은 힘이 세다. 일단 매주 화요일만 나가서 도와주기로 했다. 화요일은 인근 꽃시장에서 물건을 받아오는 날이라서 남자 힘이 필요하단다.

오전 9시 반까지 오라고 했다. 자전거로 처음 가는 길이다.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어 일찍 나섰다. 20분 전에 도착했는데 상가 주변이 조용하다. 주변을 살펴봤다. 이곳은 구루메 미치노에키(국도변 휴게시설) 인근이다. 나무 시장이 형성돼 있어서 초화류와 정원수들을 파는 가게들이 많다. 그린센터 단지 안에는 30여 군데나 된다.

 어느 곳이건 행잉바스켓이 어우러지면 장소의 격이 높아진다
어느 곳이건 행잉바스켓이 어우러지면 장소의 격이 높아진다 ⓒ 유신준

소개받은 곳는 TAIYO GREEN(타요그린)이라는 가게다. 길 모퉁이에 위치해 있는데 규모가 꽤 크다. 방범용 네트 안 쪽으로 꽃 모종들이 보인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기둥에는 행잉바스켓도 걸려 있다. 반가워서 자세히 봤다. 식재구성이며 배색감각이 보통 솜씨가 아니다. 역시 프로는 다르구나 싶었다. 카드가 꽃혀 있어서 자세히 보니 B씨의 이름이 써 있다. 깜짝 놀랐다. 그녀가 행잉바스켓 디자이너라는 게 비로소 실감이 났다. 가게에 걸려 있는 그녀의 작품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다.

AD
한눈에도 풍부한 보색 대비가 뛰어나 보인다. 인접색 대비는 비슷한 색이 적당히 어우러지면, 그럭저럭 괜찮아 보일 수 있다. 보색 대비는 다르다. 명도와 채도를 익숙하게 가지고 놀 줄 알아야 볼 만한 작품이 나온다. 좋은 배색은 보는 사람의 눈을 꼼짝못하게 묶어 놓는 마력이 있다. 꽃이 지천인 꽃가게라서 그다지 빛이 나지 않을 곳인데도, 그녀 작품은 유독 눈길을 끈다.

내가 처음 연재를 시작하면서 주로 아파트 공간에 대한 행잉바스켓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아파트 뿐만이 아니다. 서구에서는 가게 앞에 헹잉바스켓이 장식돼 있는 풍경이 그림처럼 자연스럽다. 꽃을 걸면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걸 그들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행잉바스켓은 가게의 첫 인상을 밝고 화사하게 만들어 준다. 고객이 가게에 들어서기 전부터 '이곳은 신경 쓴 공간'이라는 특별한 인상을 받게 된다. 정성이 듬뿍 들어간 행잉바스켓을 보면서, 자연스레 마음속에서 호감이 우러나게 되는 것이다.

계절에 따라 꽃을 바꾸면, 행잉바스켓은 마치 패션의 시즌 액세서리처럼 작동한다. 봄엔 파스텔, 여름엔 선명한 색, 가을엔 따뜻한 톤… 이런 변화는 고객에게 감성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가게의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린다. 어느 곳이든 행잉바스켓이 어우러지면 장소의 격이 높아진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B씨가 왔다. 사람을 소개해 놓고 혼자 보낼 수 없어서 서둘러 왔단다. 근무날이 아닌데도 내가 걱정되어 온 것이다. 직원들에게 나를 인사시켰다. 가게에는 그녀 말대로 여직원만 넷이었다. 조금 지나자 앞쪽에 가려 놓았던 방범네트를 걷고 청소를 시작했다. 나도 거들었다.

스태프 중 선임자인 듯한 여직원이 오더니, 꽃 매대에 물을 주는 일을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첫 일거리다. 물을 주는 동안 꽃들을 자세히 살펴봤다. 작은 포트에 담긴 꽃모들이 플라스틱 사각상자에 담겨있고, 상자마다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교과서에서 봤던 이름들이 거기 있었다.

제대로 왔구나. 눈에 보이는 것이 다 공부 거리다. 베테랑들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가며 눈치껏 배울 수도 있다. 내게 안성맞춤 직장이었다. 가게 규모가 커서 두 사람이 나눠 물을 주었는데도 1시간 넘게 걸렸다. 물주기가 끝나자 선임 스태프가 인근 꽃 도매시장으로 나를 데려갔다.

 거래는 주로 경매를 통해 이뤄진다. 경매는 꽃 가격이 결정되는 핵심 과정이다
거래는 주로 경매를 통해 이뤄진다. 경매는 꽃 가격이 결정되는 핵심 과정이다 ⓒ 유신준

구루메 하나 이치바(꽃 도매시장)였다. 이 지역의 꽃들이 모여 거래되는 곳이다. 일본에는 이런 도매시장이 200곳 가까이 된다고 한다. 거래는 주로 경매를 통해 이뤄진다. 경매는 꽃 가격이 결정되는 핵심 과정이다. 소매 꽃집 사장들이 신선한 꽃을 확보하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거래되는 꽃은 분화(盆花)와 절화(切花)로 구분한다. 화,목은 분화가 유통되며, 수,금은 주로 절화를 거래한다. 경매는 오전 7시부터 네덜란드식 '하강경매' 방식으로 진행된다. 최고가부터 시작해 점차 가격을 낮추는 방식으로, 짧은 시간 안에 대량의 꽃을 거래하는데 유리하다. 경매 참여는 매수인 자격을 가진 사람만 가능하다. 경매장에는 분화보다는 절화 규모가 많다. 수 백년 전통을 자랑하는 이케바나(꽃꽂이)의 나라답다.

꽃모들은 색색의 사각 바구니에 줄지어 담겨 경매전표가 붙은 채 대기하고 있다. 내 키보다 높은 카트를 끌고 돌면서 우리 가게 고유번호를 찾아 모아서 가져오면 되는 일이다. 생산농장에 개별 주문해 놓은 물량도 있고, 새벽에 점장이 경매로 구입해 놓은 물량도 있다. 모아놓고 보니 꽤 많은 양인데도, 가게까지 끌고 오는 일은 크게 힘들지 않았다.

오후에는 꽃시장에서 가져온 꽃모들을 분류해 전시, 판매한다. 순서가 있다. 우선 점장이 옥션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해 가격을 정한다. 가격은 상자 단위로 표시하고 개별포트에는 색상으로 구분된 플라스틱 비표를 꽂는다. 손님들이 꽃을 골라오면 계산대에서 비표를 보고 정산하게 돼 있다. 꽃집 물류 흐름이 대강 눈에 들어온다.

일본의 꽃집은 규모와 업태에 따라 다양하다. 동네의 개인 꽃집부터 역세권이나 쇼핑몰에 입점한 체인점까지 폭넓다. 취급 품목별로 꽃다발과 절화를 전문으로 하는 생화점과 흙, 비료 등 원예용품을 함께 다루는 원예점으로 구분한다. 꽃시장에서 경매일을 절화와 분화로 구분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근처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곳은 히라타 너서리라는 꽃 전문 판매장이다. 국도변에 위치한 커다란 유리온실 가게라서 눈에 띈다. 전에 몇 번 둘러본 적이 있는데 그쪽은 한산했다. 오히려 내가 근무하는 타요그린 쪽이, 규모는 작지만 실속있어 보였다. 이곳은 비수기인데도 심심찮게 손님들이 찾는다.

손님이 들어오면 "이랏샤이마세(어서오세요)"를 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 어물어물하는 사이 상황 끝이다. 카운터 여직원이 처음에는 다 그런 거라며 웃는다. 가게 안에서 유니폼을 입고 있으니 손님들이 이것저것 묻기도 한다. 첫날인데 뭘 알겠는가. 직원에게 안내할 수밖에. 그것도 한두 번이지 나중에는 누가 물어볼까 겁나서 슬금슬금 손님을 피했다. 제복은 아무나 입는 게 아니다.

타요그린은 단풍과 장미 전문이다. 꽃가게들의 물류 흐름을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점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질문 요지를 적어 달란다. 많이 해 본 솜씨다. B씨는 좋은 공부 찬스라면서 이번 기회에 알고 싶은 것 전부 물어 보란다. 배우고 싶어하는 내용을 친절한 점장이 잘 설명해 줄 거라면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본인블로그 일본정원이야기 (https://blog.naver.com/lazybee1)에도 실립니다.


#행잉바스켓#아파트정원#미지정원#일본정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재

일본 행잉바스켓 마스터 도전기

오마이뉴스 창간정신[모든 시민은 기자다]에 공감하는 시민. 보통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좋은 세상 위하여 기자회원 가입. 관심분야 : 헹잉바스켓, 일본정원연구, 독서, 자전거여행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