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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29 11:40최종 업데이트 25.11.29 11:40

편히 잠드렴, 나의 고운 친구야

노을보다 곱고 별보다 빛나던 친구를 보내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운동 마치고 돌아온 거실에 햇살이 만개했다. 당장 저 빛을 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저 온기를 느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식탁은 비워두고 베란다에 상을 폈다. 따뜻한 보이차를 내리고 읽을거리와 간식을 챙겼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찻잔 위에 햇살이 눈처럼 내렸다. 따뜻한 계절에는 결코 느끼지 못할 충만함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겨울에는 햇빛이 금보다 귀하다. 조금이라도 볕을 쬐려고 등을 내밀었다.

그때 띠링 메시지가 울렸다. '부고장' 모바일 메신저다. 적힌 이름을 본 순간 내 눈을 몇 번이나 의심했다. 평상시에 누구보다 밝고 유쾌했던 친구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누가 대체 무슨 이유로 이리도 지독한 장난을 친단 말인가. 클릭해서 열어본 메시지는 다름 아닌 잔혹한 현실이었다. 부고장을 보낸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이게 뭐예요? 장난이죠? 대체 무슨 일이에요?"
"그러게... 나도 며칠 전에 00이랑 멀쩡하게 통화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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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를 끝내고도 믿기지 않았다. 누구보다 명랑하고 호탕했던 친구였기에 모든 일이 해프닝일 거라 생각했다. 하늘 아래 당연히 존재해야 할 사람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다니. 머릿속 생각 회로가 고장 난 듯 뒤엉켰다. 한동안 안부 한번 물어보지 못한 것부터 시작해 미안한 일만 전부 떠올랐다.

저녁 무렵,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도로는 유난히 혼잡했다. 붉은 노을이 하늘에 긴 띠를 드리우고 있었다. 노을이 저토록 붉었던가. 순도 높은 노을 그대로의 빛깔이 이토록 아름다웠던가.

'하늘은 저리도 예쁜데...'

그렁그렁 눈물이 차오르고 지는 노을만큼 눈도 붉게 물들었다. 하늘을 다 태우고 재만 남았을 무렵 어둠도 내려앉았다. 가냘픈 초승달이 유독 외로워 보였다. 희망에 부풀어 오르던 달은 다 비워내고 앙상하게 뼈대만 남았다.

초승달 친구를 배웅하러 가는 길, 밤하늘에 홀로 뜬 초승달이 유독 외로워 보였다.
초승달친구를 배웅하러 가는 길, 밤하늘에 홀로 뜬 초승달이 유독 외로워 보였다. ⓒ 전둘진

장례식장으로 가는 차 안에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지인이 함께였지만 깊은 침묵만 가득했다. 어둠이 더 빨리 내려와 터질 것 같은 슬픔을 모조리 가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람대로 어둠은 순식간에 세상을 집어삼켰다. 우리는 소리 없이 고통을 나눠 가졌다. 혼자 배웅하러 갔더라면 넘치는 슬픔에 질식했을지도 모른다.

친구의 영정 사진을 보면서도, 절을 하면서도 모든 상황이 거짓말 같았다. 친구는 여전히 밝은 모습 그대로 사진 속에 있는데. 저 사진 뒤에 숨어있다가 당장이라도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걸어 나올 것만 같은데. 현실은 꿈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 상황을 직시하라며 더 매몰차게 몰아세웠다.

너무 밝아서, 웃고만 있어서 그 뒤에 가려진 눈물은 생각지도 못했다. 미안함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손을 내밀고 싶었는데 망설이는 순간조차 알아채지 못한 걸까. 함께 나누지 못한 시간이 송곳이 되어 되돌아왔다.

11월의 끝자락에서, 한 해의 마지막 페이지를 앞두고 몇 번의 이별을 하는가. 봄, 여름, 가을을 보내고 과거의 나를 보내고 당연히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믿었던 친구를 보낸다. 유독 햇살이 따사로웠던 건, 노을이 붉고 고왔던 건 그녀의 마지막 편지였는지도 모른다.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늘에 써 놓고 갔나 보다. 무해한 백지 위에 적힌 눈물은 별이 되고 달이 되어 반짝거린다.

"모든 슬픔을 홀로 안고 간 친구야, 이젠 아프지 말고 편안하게 잠들어라. 누구보다 가뿐하게 잠들어라, 내 고운 친구야."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친구를보내며#이별#그리움#안부#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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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둘진 (dujini32) 내방

책과 언어 사이에서 춤추며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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