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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28 13:45최종 업데이트 25.11.28 13:45

남편이 지은 배추 농사, 내년 예약도 끝났어요

무릅병 돌아 마음 고생도 있었지만 뿌듯한 한 해 농사 마무리

"언니네 배추 맛있데요."
"OO씨가 그걸 어떻게 알아?"
"OO씨가 언니네서 배추 샀잖아요. OO씨가 김장했는데 맛있다고 해요. 내년에는 나도 언니한테 부탁해야겠어요."

걱정했는데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동안 절임 배추로 김장했다고 하면서 그런 말을 한 것이다. 남편이 지은 배추가 우리만 하기엔 너무 많아 배추 사려고 하는 이웃 몇 사람들한테 조금씩 팔고 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절임 배추를 사서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직접 배추를 사서 절이는 사람들도 제법 있는 듯하다.

남편의 배추 밭 남편이 정성스럽게 농사 지은 배추 밭
남편의 배추 밭남편이 정성스럽게 농사 지은 배추 밭 ⓒ 정현순

지난 10월부터 남편이 배추 농사 걱정하는 말을 자주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뉴스에서도 배추 걱정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여름에는 너무 더웠고 가을에는 비가 자주 와서 무릅병이란 병이 돌았다고 한다. TV에서 비추어지는 영상에서는 배추 속이 시꺼멓게 썩어 뽑아버리는 농부의 모습이 보였다. 남편도 밭에 갈 적마다 썩은 배추들을 안 뽑아 버린 날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TV에서 본 것처럼 남편의 밭도 마찬가지로 겉은 멀쩡한데 배추속이 썩은 것이 한두 포기가 아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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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만 갔다 오면 속상한 속내를 비추기도 했었다. "배추가 병이 나서 자꾸 뽑아버리면 우리 먹을 것도 없겠네" 하니 남편은 "그래도 우리 김장할 것은 있지. 우리가 김장을 많이 하지는 안잖아"라고 말했다.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11월로 들어서면서, 몇 년 전부터 남편의 배추를 꾸준히 사 먹은 이웃들도 나만 보면 "언니 올해는 우리 줄 배추 있어요?" 하고 묻곤 했었다. 나도 정확한 답을 할 수가 없어서 "남편에게 물어보고 답해줄게" 했다. 남편의 주말농장은 남편 또래 몇 명이서 농사를 지어 난 잘 안 가본다. 농사 뿐아니라 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A 이웃도 물어본다. "다행히 배추가 잘 됐으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A씨는 줘야지" 하곤 그에게도 정확한 답을 못해주었다. 그는 우리가 줄 배추가 없으면 다른 곳에 알아봐야 한다고 했다. 그 말에 "당연히 그래야지" 했다. 그는 몇몇 사람 중에 제일 먼저 오래전부터 우리 배추를 예약해서 김장했던 사람이기에 다른 사람보다 우선권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추와 무 남편이 직접 농사지은 무와 배추
배추와 무남편이 직접 농사지은 무와 배추 ⓒ 정현순

난 남편에게 물어봤다. "우리는 김장할 수 있고 그 집도 배추 줄 수 있나?" "그 집은 몇 포기나 할 건가?" "정확히는 모르는데 10포기 정도? 그 집도 우리처럼 두 식구이니깐 많이는 안 하지" "그럼 그 정도는 줄 수 있을 거야" 한다.

난 그에게 그대로 말했다. 그는 "언니 만약 괜찮으면 5포기 더 줘요" 한다. "그건 나도 장담 못 하는데" 했었다. 그런데 배추를 뽑아온 날 다행히도 예상보다 많이 수확할 수 있었다. 속도 나름 꽉 찼다. 그동안 남편의 정성이 통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날마다 가서 확인하고 돌보아주었으니 말이다.

A집에 배달 가는 중 남편은 "이 배추는 황금 배추라고 꼭 말해" 한다. A에게 파와 무, 배추 몇 포기를 덤으로 더 주었다. 국 끓여 먹으라고. 배추가 예상보다 잘 되었지만 누구 한 사람에게 몰아 줄 수는 없을 정도여서 남은 배추와 무도 이웃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었다. 겨울에 국 끓여 먹으라고.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들은 잘 먹겠다고 하면서 한결같이 내년에는 미리 예약해야겠다고 말했다.

유일하게 우리 배추로 김장을 한 A를 만났다. "언니 덕분에 김장 잘했어요, 배추가 아주 맛있어요.배추 속도 상한 것이 한 포기도 없었어요. 내년에도 부탁할게요" 한다. "그거 황금 배추라 맛있는 거래" 하고 잊고 못 했던 말도 해주었다. 배춧국을 끓여 먹었다는 다른 이웃들 몇 명도 "내년에는 미리 부탁해야지" 한다. 전문 농사꾼이 아닌 남편의 농사 솜씨가 날로 좋아지고 있다는 말로 들리기도 했다.

남편에게 "이젠 힘들 텐데 농사 그만 짓지" 하면 남편은 "농사가 내 유일한 취미 생활이야. 내가 힘들면 알아서 그만둘 거니깐 너무 걱정하지 마" 한다. 내년 김장배추 A 말고 다른 사람한테도 예약받았다고 말해주니 남편은 싱글벙글이다.

은퇴 전후의 6070 시니어들에게는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요?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 봅니다.
#배추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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