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변과 위생 환경은 환자도, 가족도, 의료진도 쉽게 말하지 못하는 영역이다. ⓒ the_real_napster on Unsplash
우리가 외면해온 '마지막 자리'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3만 5천 불을 넘어섰고 곧 5만 불 시대를 이야기한다. 도시 풍경, 교통, 공공시설은 선진국에 근접했다고 평가받는다. 그런데 우리의 부모, 그리고 언젠가의 '나'가 누울 수밖에 없는 그 자리-요양병원 병상만큼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
특히 배변과 위생 환경은 환자도, 가족도, 의료진도 쉽게 말하지 못하는 영역이다. '민망해서', '부끄러워서'라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말해도 되는 주제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변은 생의 마지막까지 유지되는 가장 기본적 기능이며 사람의 존엄과 직결된 문제다. 이 문제를 외면하는 사회는 결코 선진국이라 할 수 없다.
"여전히 6·25 야전 병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 상하수도 분야의 원로이자 6.25 전쟁 당시 소위로 참전했던 박중현 교수는 기자에게 뜻밖의 말을 건넸다.
"
일부 요양병원의 침대 환경은, 6.25 야전 병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과장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일부 시설의 병실은 오래된 침구, 부족한 환기, 냄새가 배어 있는 환경에서 움직일 수 없는 환자가 배변을 해결하기 위해 간병인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환자의 심리적 위축, 프라이버시 훼손, 간병 노동의 과중함이 동시에 발생한다.
전쟁 중이라면 이해될 수 있는 조건들이 평화로운 2025년 대한민국에서도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마지막 자리에 대한 투자를 얼마나 소홀히 해왔는지를 보여준다.
'후단(後段) 중심' 위생 시스템의 한계... 진짜 문제는 '앞단(前段)'이다
한국의 위생·하수도 논의는 오랫동안 배변 이후의 문제에만 집중해왔다. 수세식 구조, 물 사용량, 하수처리장, 슬러지 처리, 수질관리 등은 많이 이야기됐다. 그러나 위생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배변이 실제로 일어나는 자리, 즉 앞단이다. 그 앞단이 가장 집중되는 공간이 바로 요양병원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다음 문제들을 똑같이 목격한다.
▲배변을 즉시 처리하기 어려운 구조
▲냄새 확산을 막지 못하는 병실 설계
▲환자의 프라이버시 부족
▲간병인의 노동 부담 과중
▲장기 입원 환자의 심리적 위축
▲시설·인력 기준의 명확한 부재
이것은 단지 노인 돌봄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위생 시스템이 태생부터 설계가 잘못되었다는 증거다.
우리는 한국의 도시를 선진국 수준이라 말한다. 헤어숍, 식당, 병원, 카페, 지하철… 많은 시설은 이미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인간이 마지막으로 누울 병상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그동안 감춰져 있던 복지의 밑바닥이다.
마지막 순간에는 미흡한 위생 환경에서 생을 마감하는 아이러니. 이 모순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국가가 반드시 투자해야 하는 '보편적 인프라'
요양병원은 한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잠재적 이용자다. 남녀노소, 부유층·저소득층, 도시·농촌, 건강한 사람·병을 가진 사람 모두가 동일하게 이 시설의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는 일부 사람만 혜택을 보는 특수 시설이 아니라 국가가 반드시 최소 기준을 만들어 투자해야 할 공공 인프라다. 우리는 다음 기준을 세워야 한다.
▲배변 즉시 처리가 가능한 장비와 시스템
▲냄새 차단 구조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는 설계
▲간병 노동을 줄이는 기계·장치
▲장기 환자의 존엄을 지키는 병상 기준
▲위생·안전·간병 표준을 아우르는 '노인 배변·위생 스탠다드'
이 기준은 특별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나를 위한 것, 나의 부모를 위한 것, 모든 국민을 위한 것이다.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마지막 존엄의 문제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배변 이야기를 '수치심의 언어'로 다뤄왔다. 그러나 배변은 생의 마지막까지 지켜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 존엄이다. 요양병원 배변·위생 환경을 개선하는 일은 단순히 노인 복지 정책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품격을 회복하는 일이며, 우리 모두의 미래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우리는 이제 말해야 한다. 그리고 바꿔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요양병원의 배변·위생 문제는 개인이나 한 기관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언젠가 그 자리에 누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곧 우리 모두의 미래다.
이 글은 지난 글들처럼 화장실과 하수도 뒤편의 기술·시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위생이 시작되는 가장 앞단,
환자의 몸이 누워 있는 자리에서 출발해 보려는 시도였다.
말하기 어려워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이 문제를
사회 전체가 함께 바라봐야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이 작은 글이 그 첫걸음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