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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소설의 '시점'에 흥미를 느껴 고전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특히 1인칭 관찰자 시점, 즉 화자가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을 '바라보는' 방식의 소설들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장미의 이름>에서 수련사 아드소는 스승 윌리엄을, <모비 딕>에서 선원 이슈마엘은 선장 에이허브를, <위대한 개츠비>에서 청년 닉은 이웃 개츠비를 바라본다. 공통점이 있다. 진짜 주인공은 직접 말하지 않는다. 그들의 천재성이나 광기는 곁에 있는 평범한 친구의 입을 통해 전달된다.

이 기법의 원형이자 가장 성공적인 사례가 바로 셜록 홈스다. 주인공은 홈스지만, 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화자는 그의 친구 왓슨이다. 저자인 아서 코난 도일은 왜 홈스에게 직접 마이크를 쥐여주지 않았을까? 왜 굳이 평범한 의사 왓슨을 화자로 내세웠을까? 그 방식이 홈스의 천재성을 대중에게 더 잘 알려낼 수 있었기 때문 아닐까 싶다.

빅토리아 시대, 위험한 홈스

 1917년 9월 호 <스트랜드 매거진> 표지에 실린 셜록 홈스
1917년 9월 호 <스트랜드 매거진> 표지에 실린 셜록 홈스 ⓒ 위키미디어 공용

셜록 홈스가 대중적 신드롬을 일으킨 무대, <스트랜드 매거진>은 1891년 창간된 영국의 월간지였다. 6펜스라는 저렴한 가격에 풍부한 삽화를 곁들인 이 잡지는 1892년에 이미 월 50만 부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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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층은 런던의 화이트칼라, 중산층이었다. 그들이 출퇴근길 기차에서 이 잡지를 읽었다. 그 시대는 엄숙함과 체면의 시대였다. 예의범절을 목숨보다 중시하고, 귀족적 권위와 종교적 도덕관념이 사회 질서의 근간이던, 바야흐로 '신사의 시대'였다. 문제는 이런 점잖은 독자들에게 팔아야 할 주인공이 홈스였다는 점이다.

빅토리아 시대 신사의 기준으로 보면 홈스는 단순한 괴짜가 아니었다. '위험한 인물'이었다.

<주홍색 연구>에서 왓슨은 룸메이트가 된 홈스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수첩에 '셜록 홈스의 지식 범위'를 정리한다. 화학과 해부학에는 정통한 데,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은 모른다. 경악한 왓슨이 지적하자 홈스는 태연하게 답한다. "이제 알았으니 빨리 잊어버려야겠군. 내 뇌 용량은 한정되어 있어서 쓸데없는 지식은 버려야 해." 왓슨의 평가는 냉정했다. "그의 무지는 지식만큼이나 놀라웠다."

<네 개의 서명> 첫 장면은 더 충격적이다. 홈스가 코카인 7% 용액을 정맥에 주사하려 하자 왓슨이 정색하며 묻는다. "오늘은 모르핀인가, 코카인인가?" 홈스는 태연하다. "코카인이야. 자네도 해 보겠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마약으로 두뇌를 자극했다. 심심하면 실내에서 권총을 쏴 벽에 'V.R.(빅토리아 여왕)' 문양을 새겼다. 귀족의 권위를 공공연히 조롱했다. 경찰을 "멍청이들"이라며 대놓고 비웃었다.

만약 홈스가 1인칭으로 자기 이야기를 썼다면 어땠을까? "나는 너희보다 똑똑하고, 너희 경찰은 무능하며, 나는 코카인으로 두뇌를 자극한다." 이런 서술이 빅토리아 시대 중산층에게 먹혔을 리 없다. 거만하고 불쾌한 인물. 사회 부적응자. 즉시 낙인찍히고 매장당했을 것이다.

안전한 왓슨

 1892년 12월 <스트랜드 매거진>에 실린 홈스(오른쪽)와 왓슨 삽화.
1892년 12월 <스트랜드 매거진>에 실린 홈스(오른쪽)와 왓슨 삽화. ⓒ 위키미디어 공용

작가 코난 도일은 이 지점에 존 왓슨 박사를 투입한다. 왓슨은 아프가니스탄 참전 용사이자 정규 교육을 받은 의사였다. 예의 바르고 상식적이며, 무엇보다 체제 순응적인 '시스템의 수호자'였다. <스트랜드 매거진> 독자들과 똑같은 도덕관념, 똑같은 사회적 위치를 가진 사람.

왓슨의 역할은 세 가지였다. 첫째, 상식인의 잣대로 홈스를 평가했다. 왓슨이 초반에 홈스를 '이상한 사람'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나중에 드러나는 천재성이 더 극적으로 다가온다. 독자는 왓슨의 당혹감에 공감하며 이야기에 빠져든다.

둘째, 도덕적 견제자 역할을 했다. <네 개의 서명>에서 왓슨은 홈스의 마약 투약을 강하게 꾸짖는다. "자네 재능을 왜 낭비하나? 그건 병적인 과정이야!" 만약 왓슨이 "천재니까 괜찮아"라고 옹호했다면, 독자들은 두 사람 모두를 부도덕한 인간으로 취급했을 것이다. 왓슨이 독자를 대신해 홈스를 꾸짖어 줌으로써, "저토록 바른 왓슨이 인정하는 친구라면 홈스도 근본은 나쁜 놈이 아니겠지"라는 심리가 작동한다.

셋째, 가장 결정적인 역할이 있었다. 왓슨의 '정직한 평판' 자체가 홈스의 무기가 됐다. 단편 <빈사의 탐정>에서 홈스는 전염병에 걸려 죽어 가는 연기를 한다. 그는 왓슨에게 범인을 데려와 달라고 부탁한다. 왓슨은 홈스가 진짜 죽어 간다고 믿고 혼비백산하여 범인을 찾아가 애원한다. 왓슨의 진심 어린 공포를 본 범인은 안심하고 홈스를 찾아오고, 결국 덫에 걸려 체포된다. 모든 게 끝난 후 화가 난 왓슨에게 홈스는 이렇게 말한다. "자네에게 사실을 말할 수 없었네. 자네는 거짓말을 못 하니까. 자네가 진짜라고 믿어야만 범인을 속일 수 있었어."

세상은 교활한 홈스의 말은 의심해도, 정직한 왓슨의 말은 믿는다. 왓슨은 홈스에게 '사회적 면허(Social License)'를 발급해 준 보증인 같은 존재였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설득 방식

 셜록 홈스의 작가 아서 코난 도일 경(1859-1930)
셜록 홈스의 작가 아서 코난 도일 경(1859-1930) ⓒ 위키미디어 공용

이 전략은 문학 역사상 유례없는 성공을 거뒀다. 그 열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코난 도일이 홈스를 죽였을 때 벌어진 소동이 증명한다. 1893년 <마지막 사건>에서 홈스가 모리어티 교수와 함께 폭포 아래로 떨어져 사망하자, <스트랜드 매거진>은 단숨에 2만 명의 정기 구독자를 잃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런던의 젊은이들은 애도의 표시로 검은 리본을 달고 다녔고, 코난 도일의 집에는 항의 편지와 살해 협박이 쏟아졌다. 산책 중이던 그를 양산으로 때리려 한 노부인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왕세자였던 에드워드 7세마저 "홈스의 죽음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홈스가 죽었다고 생각한 왓슨은 그가 남긴 편지를 읽으며 절규한다. "그는 내 평생 가장 사랑하는 친구였다." 독자들은 홈스의 추리력에 감탄했지만, 홈스라는 인물을 '사랑'하게 된 건 왓슨의 눈물 때문이었다. 차가운 이성의 기계가 '누군가에게 목숨보다 소중한 친구'로 느껴지는 순간, 독자들도 함께 슬퍼했다.

코난 도일은 훗날 이렇게 한탄했다. "내가 실제로 사람을 죽였어도 이만큼 욕먹진 않았을 것이다." 결국 10년을 버티다 백기를 든 그는 1903년 <빈집의 모험>에서 홈스를 부활시켰다. 살아 돌아온 홈스를 본 왓슨은 충격으로 실신한다.

이 전무후무한 성공이 홈스의 추리력 때문만이었을까? 아니다. 그 천재성이 왓슨이라는 '주류의 대변인'에 의해 안전하게 번역되고 포장되었기 때문이다. 가장 파격적인 캐릭터를 팔기 위해 가장 보수적인 화자를 내세운 것. 작가 코난 도일의 치밀한 의도였다.

당신의 왓슨은

언젠가 은사 한 분이 지나가듯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홈스 이야기에서 진짜 중요한 건 왓슨이야. 왓슨이 없었으면 홈스는 그냥 마약 하는 미치광이였어." 그때는 웃어넘겼다. 이제야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닉 캐러웨이가 없었으면 개츠비는 출처 불명의 수상한 졸부였다. 이슈마엘이 없었으면 에이허브는 그냥 미친 노인네였다. 아드소가 없었으면 윌리엄 수도사는 말 많은 영국인에 불과했다. 이들 작품이 고전이 된 건 주인공의 비범함 때문만이 아니다. 그 비범함을 세상의 언어로 번역해 준 평범한 화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 옳음을 증명하려 애쓸 때, 한 번쯤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나의 급진적인 언어를 세상의 상식으로 번역해 줄 친구. 나의 왓슨은 있는가?

#셜록홈스#왓슨#코난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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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시립대에서 정치경제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역사와 문학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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