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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일자리 노인 일자리 안내 프랑카드
노인 일자리노인 일자리 안내 프랑카드 ⓒ 최승우

은퇴자의 시간은 더디면서 빠르게 지나가는 자기모순을 겪는다. 하루의 긴 호흡이 한 해가 지날 때면 "벌써 연말이네"라는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은퇴한 지 5년이 지났다. 은퇴 후 2년 넘어 변화 없이 반복되는 하루하루는 무료함과 권태로움의 연속이었다. 은퇴 후 삶을 준비하지 않은 후유증으로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은 덧없이 흘러갔다.

'시간을 좀 더 의미 있고 알차게 보낼 수는 없을까?', '내가 잘할 수 있고 보람을 느낄 일은 정녕 없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늘 머리를 맴돌았다. 오늘 놀고 내일 쉬는 일상에 대한노인회 전북 취업 지원센터를 통해 2024년 2월 '노인 일자리'를 얻었고 올해도 '공공 기관 도우미'로 일하고 있다.

일상의 무료함을 끊어낸 노인 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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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이인 나는 한 시간의 도보 끝에 일터인 정원문화 도서관에 도착한다.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도서관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깨끗한 환경이다. 출근과 동시에 도서관 바닥 쓸기와 닦기, 화분 물 주기와 서가 정리 후 방문객을 맞이한다.

도서관에는 부모 자녀, 손자녀가 방문하여 책을 읽어주는 흐뭇한 장면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가끔 재미없어하는 아이를 볼 때면 슬며시 책을 권한다. "이 책은 숨어 있는 그림 찾기 책인데 엄마 아빠랑 함께 어떤 것이 숨어 있나 한번 찾아보면 어때?" 호기심이 발동해 책을 들여다보는 아이의 모습에 보호자는 엷은 미소로 답한다.

방문객이 드문 시간, 책 읽기에 몰두하는 방문객에 살짝 다가가 말을 걸기도 한다. "어떤 책 읽으세요?"라는 질문에 "네! 이 책이 요즈음 제 심정을 나타내는 것 같아서 열심히 보고 있네요"라며 자신이 읽는 책의 한 문단을 보여준다. 방문객의 흔들리는 생각을 책 속에 굳게 박혀 있는 글자가 단단히 잡아줄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인다.

가끔 노인이 방문하여 "참 좋은 곳에 근무하네요"라며 부러워하는 경우도 있다. '일하는 곳'이 아닌 '일하는 것' 자체에 대한 부러움이 더 큰 것 같다. 어떤 사람이 '공공 기관 도우미' 이름표를 보고 "실례지만 '공공 기관 도우미'가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할 때 곧바로 서비스 정신이 발동한다. '공공 기관 도우미'에 대한 설명을 넘어 '노인 일자리'에 대해 알고 있는 다양한 정보를 알려준다.

표찰 공공 기관 도우미
표찰공공 기관 도우미 ⓒ 최승우

통계청 2024 고령자 통계(2024.9.26.)에 의하면 '23년 65세 고령자 중 자신의 현재 삶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의 비중은 31.9%로 전년 대비 2.4%P 감소했다. '23년 65세 이상 고령자 중 자신의 사회·경제적 성취에 대해 만족하고 있는 사람의 비중은 26.7%로 전년 대비 4.6%P 줄어들었다. 이미 우리 사회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고, 많은 노인에게 닥친 가난과 외로움, 질병 등은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남아도는 시간에 '할 일 없음'은 노인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이다.

나에게 '노인 일자리'는 오래되고 멈추어진 과거의 시간과 같았던 일상을, 활력 있고 생생한 현재의 시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기관을 홍보하는 재능도 발휘하게 하였고, 일상에서 소중한 진리를 발견하는 기회를 주기도 했다.

대한노인회 전북 취업 지원센터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를 통해 성취감과 만족감 등의 긍정적인 경험을 했고, '할 일 없음'이 '할 일 많음'으로 변해 멀리 달아났던 시간이 내게로 다가왔다. 11월 말이면 2025년 '공공 기관 도우미' 자리가 끝나고 12월 말과 내년 1월에 걸쳐 2026년 '노인 일자리' 참여자를 선발한다. 새해에도 '노인 일자리' 참여를 통해 '할 일 있음'의 시간이 되면 좋겠다.

지금의 노인은 아직 젊다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역할은 가변적이다. 경제적인 이유에서라도 이 역할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무조건 할아버지 할머니로만 살라는 법은 없다. 노년은 베이비시터 역할을 하거나 그리운 추억을 하나하나 곱씹으라고 있는 게 아니다. 나이가 들어도 함께 투쟁하고,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나이 든 사람의 정체성이 아니라 흥미진진하고 보완적인 단계일 뿐이다'라며 남은 인생도 늙었다고 멈추거나 움츠러들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경험과 지혜를 나누며, 행복한 노년의 삶을 가꾸어 나가길 강조하고 있다.

뒷방 늙은이로 자리하기에는 지금의 노인은 아직 젊다. 은퇴자가 더 이상 '잉여 인간'이 아닌 쓸모 있는 인간으로서의 길은 열려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오랜 연륜과 지혜가 어우러진 노인이 일자리를 통해 개인의 무료함을 넘어 국가 발전의 작은 보탬이 되면 좋지 않을까?

국가의 행재정적 지원과 관심, 민관의 협력으로 '노인 일자리'가 확대되면 좋겠다. 젊은 시설의 활기찬 에너지는 아니더라고 경험이 축적된 지혜로운 노인의 길이 열리길 희망한다. 젊은이가 자신의 비전을 펼치고 어른이 흔들리지 않고 버텨내는 묵묵한 그림자가 되는 세상! 생각만으로 가슴이 뿌듯하다.

#은퇴#시간#노인#노인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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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을 정년 퇴직한 후 공공 도서관 및 거주지 아파트 작은 도서관에서 도서관 자원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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