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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끝자락이다. 요즘 부음 소식을 자주 접한다. 지난 23일 변웅전 전 아나운서가 별세한데 이어 지닌 25일에는 이순재 배우가 운명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우리들의 친근한 얼굴들이다. 고인들도 이 쓸쓸한 가을을 견디기 힘들었나 보다. 실제 늦가을 환절기와 겨울철에 사망자가 많다고 한다.
지난 26일 학교 후배의 아버지(93)상 부고를 받았다. 이럴 때 웬만하면 만사 제치고 유가족을 찾는다. 내 경조사 철학이다. 최근에는 망자 대부분 고령의 장수인이다. 두 어달 전 문상한 곳의 고인도 97세였다. 두 빈소 표정은 슬프기보다 차분한 느낌이다. 물론 유가족의 슬픔은 한없이 찢어지는 마음일 것이다.
살아보니 빈소를 찾아 유족들을 위로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여쁜 일이다. 장례식장애 가면 한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생각해 본다. 그러면서 칭찬은 듣지 못해도 부끄럽게 살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요즘 부고 소식이 많이 들린다. 장례식장을 찾아 유족을 위로하기도 하지만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 이혁진
그런데 내가 진정 장례식장에 가는 이유 중 하나는 그곳에서 평소 자주 못 보던 선후배나 지인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인의 생전 화제로 추모도 하지만 우리들의 추억과 이야기도 공유하는 시간이다. 진정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려면 빈소를 찾아가라는 옛말도 있다.
말기 암 환자로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수 없이 들어도 기적적으로 살고 있는 입장에서 장례식에 가서 유가족에게 묻는 것이 꼭 있다. 고인의 사인이다.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떠난 사람마다 그 이유가 분명 있을 터. 나는 이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태어난 것의 이유는 묻지 않아도 저승 가는 이유는 궁금하기만 하다.
그러면서 죽음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는 습관이 생겼다. 매일 살고 있다는 것이 또 다른 기적이라는 사실을 체험하면서 한 사람의 죽음과 장례에 대해 슬퍼하면서도 경건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처럼 부음을 접하면 생각이 많아진다. 나만 그런가 싶은데 그렇지 않다. 한 선배는 장례식장에 오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다고 말한다. 조문이 인생의 의미를 찾는 시간여행이라는 것이다. 나 또한 고인의 살아온 내력과 유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교훈을 얻기도 한다.
빈소에서 문상객들과 서로 안부를 확인하면서 이야기 하다 보니 불현듯 집에 계신 아버지가 떠오른다. 귀가를 서두른다. 장례식장에서 아버지를 생각하는 것이 다소 부질없는 일이지만 부모를 모시고 있는 자식이라서 그런 것 같다.
내가 아버지에게 평소 말 하지 않는 것이 있다. 누가 돌아가셨다거나 상가에 다녀온다는 말은 삼가고 있다. 말씀드리는 것이 하등 도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나중에 사연을 전해드리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서운하거나 나쁘다고 탓하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마지막 남은 아버지 초등학교 동창이 돌아가셨다. 이때도 아버지께 부고를 알리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난 후 조용히 말씀드렸다. 이에 아버지는 잠시 현기증을 느끼셨지만 자식의 입장을 헤아려주셨다. 부음 뿐 아니다. 집안의 좋지 않은 소식도 가급적 알리지 않는 편이다.
어제 후배 아버지 장례식에 다녀왔다. 빈소에는 자손들과 조문객들이 많았다. 유족들도 덕분에 슬픔을 이기고 있었다. 고인과 유가족의 입장이 되어 그들이 어떻게 슬픔을 극복할 것인지 상상했다.
가만 생각하면 고령의 아버지가 건강하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귀가하여 나는 조용히 아버지 방에 들러 인사드렸다. 상가에 다녀왔다는 말은 함구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내 곁에 오래 계시길 기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