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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통장에는 두 종류의 돈이 찍힌다. 죽지 않기 위한 돈과 무너지지 않기 위한 돈이다. 통장에 들어왔다가 이내 빠져나가는 지출의 얼굴들, 나는 그것을 '생존비'와 '유혹비'로 부른다. 이 둘을 나누어 보기 시작한 건 정년 이후다.
강의가 없는 날이면 집 근처 M커피숍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습관처럼 은행 앱을 켠다. 잔액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얼마 남았나"가 아니라 "이번 달엔 어디에 썼나"라는 지출 항목이다. 그 습관은 정년 무렵, 통장이 한 번 크게 비워졌던 경험에서 시작됐다.
퇴직금 받아 아이들 대출 부담 덜어주고나니

ⓒ 오마이뉴스
그해 나는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았다. 그 돈은 두 자녀의 새 출발을 돕는 자금으로 대부분 흘러갔다. 아들은 드럼 교습소에서 학원으로 확장하는 자금이 필요했고, 딸은 신혼집 마련 비용의 일부가 필요했다. 아내는 "새 출발만큼은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주자"고 말했다.
결국 우리는 아이들의 대출 부담을 덜어주는 쪽을 선택했고, 그 결정은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받는 이유가 됐다. 하지만 대가는 컸다. 텅 빈 퇴직금 통장을 마주하는 순간, 가슴 한쪽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 들어서다. "아이들 새 출발은 시켜놨는데… 정작 내 노후는?" 누구를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럼에도 가슴 한쪽이 서늘해지는 감정까지는 완전히 부정할 수 없었다.
퇴직 4년 차에 들어선 지금, 내 수입 구조는 단순하다. 들쭉날쭉한 강의 수입, 이달부터 받기 시작한 국민연금 그리고 소박한 유튜브 수입이 전부다. 강의가 많은 달과 적은 달이 다르고, 한 번 빠져나간 돈은 예전처럼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통장을 열 때마다 이런 생각에 닿게 된다. "내가 지금 쓰는 이 돈은 대체 어떤 돈일까." 그렇게 해서 내 통장 속 지출은 두 이름을 갖게 되었다. 생존비와 유혹비.
통장 앱을 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생존비'다. 주거 관련비, 세금, 장보기, 교통비, 보험료, 통신비, 부모님 용돈, 병원·약국비…. 어떻게 살아왔든, 앞으로 얼마를 더 벌 수 있든 상관없이 매달 어김없이 빠져나가는 돈이다. 현역 시절에는 생존비가 조금 늘어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월급이 들어오면 통장도, 마음도 금세 제자리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강의가 부족한 달에는 생존비만으로도 한 달 상한액을 훌쩍 넘기도 한다. 그 숫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어깨에 저릿한 무게가 얹힌다. "아, 이건 줄이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줄일 수 있는 돈이 아니구나." 전기료를 조금 아끼고, 장보기를 조금 줄인다고 해서 확 줄어드는 종류의 돈이 아니다. 어쩌면 노후라는 시간은 이 생존비의 무게를 매달 새로 받아들이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생존비만큼은 아니지만 유혹비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없어도 사는 돈이다. 하지만 막상 없애려니 마음이 불편해지는 돈이 있다. 그것이 바로 '유혹비'다. 한 잔이면 될 커피를 세 잔 마신 날들, 강의를 마치고 돌아와 스스로에게 주는 야식, 몇 번이나 미루다 결국 다녀온 짧은 여행, 이런저런 구독 서비스들…. 머리로는 안 써도 되는 돈이라는 걸 안다.
그런데 손은 자꾸 쓰게 만든다. 덕분에 통장 내역을 볼 때마다 작은 한숨이 따라온다. "이건 안 써도 되는 돈이었는데." "조금만 참았으면 아낄 수 있었는데."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이 돈들을 그냥 '쓸데없는 낭비'라고만 말하기가 어렵다.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나름의 이유와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생존비가 몸을 지키는 비용이라면, 유혹비는 마음을 지키는 비용이다"라는 생각이 점점 더 설득력을 갖는다. 물론 선을 넘지 않는 조절은 필요하다. 전체 지출에서 어느 정도 선까지는 허용하고, 그 이상은 스스로에게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숨구멍조차 허락되지 않는 노후라면 너무 삭막하지 않을까. 나는 적당한 유혹비를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마음의 통풍구라고 믿고 싶다.

▲스마트폰 홈 화면 금융 거래 파일생존비와 유혹비를 잊지 않기 위한 금융(지출 화두) ⓒ 이종범
은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모범답안처럼 돌아오는 말이 있다. "노후 준비를 미리 했어야죠." "젊을 때 좀 더 아껴두지 그랬어요."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세대를 설명하기엔 너무 많은 것들이 빠져 있다. 부모를 부양하고,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결혼과 주거까지 돕다 보면 정작 자신의 노후는 늘 맨 마지막이 된다.
회사 생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구조조정과 빠른 세대 교체 속에서 그저 오늘 자리를 지키는 게 먼저였다. 그런 상황에서 "나중을 위한 준비"를 입에 올리는 건 사치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정년을 맞으면, 월급은 그달로 끊기고 국민연금은 한참 뒤에야 따라온다.
퇴직연금도 일시금과 연금형 중 선택이지만, 생활에 쫓기면 결국 일시금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준비를 못 해서 그렇다"는 말만 꺼내기엔 현실이 너무 거칠다.
"은퇴해도 지역에서 한 달에 100만 원 정도는 벌 수 있다더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막상 발을 들여놓으려 하면 조건은 까다롭고, 무엇보다 일이 꾸준히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그래서 "월 100만 원 이상 벌 기회가 있다"는 말과 "그 돈이 대부분의 은퇴자에게 안전망 역할을 한다"는 말 사이에는 꽤 큰 간극이 있다.
결국 노후 불안은 개인의 성실성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우리가 살아온 구조와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비롯된 면이 크다. 그래서 더욱 생존비와 유혹비를 직접 확인하는 일에 집중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달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

▲Unsplash Image ⓒ poeti8 on Unsplash
퇴직 후 통장 내역을 살필 때마다 나에게 묻는 질문이 있다.
"지금 나가는 이 돈은 내 삶을 버티는 생존비인가, 아니면 마음을 지켜주는 유혹비인가."
이 질문을 품고 지출을 보면 숫자들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생존비는 누가 뭐래도 내가 책임져야 할 삶의 무게다. 하지만 유혹비는 "조금은 쉬어가자"는 마음의 신호일 때가 많다. 결국 은퇴 이후 써온 돈의 흐름을 돌아보면 생존비는 삶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돈이고, 유혹비는 마음을 버티게 했던 돈이라는 걸 알게 된다.
퇴직 이후의 시간은 매달 통장 숫자를 보며 두 가지 돈의 경계를 다시 그리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늘 이런 결론과 마주한다.
"이번 달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은 ○○만 원까지."
노후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생존비와 유혹비의 경계를 잊지 않고 직접 확인하는 순간, 막연한 공포 대신 "그래도 이 정도면 버틸 수 있다"는 마음이 조금은 생겨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노후 준비는 거창한 계획이나 멋진 재테크 비법이 아니다. 오늘처럼 통장 앞에서 한 달을 다시 복기하는 일,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