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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기유첩: 그림으로 걷는 안양> 안양박물관 특별전시실, 조선시대 문인들의 안양을 바라보는 시선을 만날 수 있다.
<삼성기유첩: 그림으로 걷는 안양>안양박물관 특별전시실, 조선시대 문인들의 안양을 바라보는 시선을 만날 수 있다. ⓒ 김은진

안양박물관에 들어서면 시대를 넘나드는 새소리가 들린다. 같은 장소에서 현재와 과거가 교차한다. 바로 특별전시관에서 전시 중인 <삼성기유첩> 그림으로 걷는 안양에서 약 200년 전 조선 후기, 이곳 안양박물관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안양박물관은 고려시대 안양사가 있던 자리이다. 현재 안양예술공원과 접해있다. 삼성산 자락에 위치한 안양예술공원을 따라 올라가면 관악산으로 이어진다. 안양사는 자리를 옮겼고 박물관 앞에서 통일신라 시대에 축조한 증초사지 당간지주를 볼 수 있다. 당간지주는 절 입구에 깃발을 달아두는 당을 지탱하는 곳이다.

<삼성기유첩>은 조선 시대 문인 박지수가 지인들과 삼성산과 관악산을 유람하며 남긴 서화첩이다. 1826년 늦봄 운초 박지수는 학파, 청하, 서호, 초현은 시를 짓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이들이 시를 짓는 이유를 밝힌 발문이 전시장 벽면에 적혀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음영하는 것은 모두 천기에서 나오지만, 점차 성장하면서 기가 탁해지고 (중략) 이는 세속의 얽매임에 가려졌기 때문이요, 명산대천으로도 그 궁함을 틔울 수 없는 법이다. 서생 운초는 천기가 얕아지지 않게 하라. 욕심이 깊지 않으면 천기가 깊어질 것이다." - 동해옹의 <발문> 중에서

위 발문의 뜻을 살펴보면 호연지기를 위해 시 쓰기를 권하고 있다. 세상일에 얽매이다 보면 걱정과 근심이 쌓인다. 서화첩을 통해 조선시대 선비들은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박지수 일행처럼 유람을 다니며 그림과 시를 지어 자신의 심신을 지켰던 듯하다.

안양박물관 특별전시장 1층 <삼성기유첩: 그림으로 걷는 안양>을 관람하는 방문객의 모습. 벽면에 운초, 학파, 서호, 청하, 초헌의 시가 적혀있다.
안양박물관 특별전시장 1층<삼성기유첩: 그림으로 걷는 안양>을 관람하는 방문객의 모습. 벽면에 운초, 학파, 서호, 청하, 초헌의 시가 적혀있다. ⓒ 김은진

박지수는 그림과 시가 모두 빼어났다. 서화첩에는 모두 11폭의 실경산수화가 있다. 시는 모두 42수로 운초가 그림을 그리고 시를 적으면 지인들이 뒤이어 운자(韻字)을 따라 시를 지었다. 이를 차운(次韻)이라고 하는데 문우들 사이에 시를 주고받으며 감흥을 나누는 선조들의 멋이 배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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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일행의 유람은 5일 동안 이어졌다. 삼성산에서 시작된 여정은 안양 일대의 사찰을 두루 돌아보고 한강을 지나 관악산 호수공원에서 끝난다.

'남자하'로 표기된 수묵화에는 약 200년 전 안양예술공원 일대와 안양사의 모습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그림에서 증초사지 당간지주와 두 개의 석탑이 보인다. 운초는 시에서 고려시대 부도탑과 기암절벽, 풍부한 강물을 언급한다. 청하는 이곳이 이름난 땅이고 푸른 절벽이 좋다고 했다. 운초와 청하의 시 한 부분을 아래 적어보았다.

부도탑 곳곳에 서 있어 고려 시절의 모습이요,
푸른 봉우리가 겹겹이라 태곳적 얼굴이구나.
누가 아스라한 시골 화가의 붓을 가져다가
바위 사이 한가로운 유여(幼輿)를 그려 내랴.
- 운초 <남자하> 중에서

남쪽 고을의 이름난 땅이 바로 이곳이라
가물가물 푸른 절벽이 좋아 올라갈 만하네
사모관대 단아하게 쓴 듯 봉우리들 늘어서고
패옥을 환하게 하나하나 깎아놓은 것 같네.
- 청하 <남자하> 중에서

그림에 그려진 안양예술공원 일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첩첩산중으로 보이는 점은 현재와 다르지만 비슷한 점이 있다. 바로 익숙한 삼성천의 구부러진 모양이다. 그리고 하상에 커다란 바위들이 자리한 것도 그대로다. 그림 속 위풍이 느껴지는 기암절벽을 보니 박지수 일행을 따라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시 한 수 지어 보고 싶다. 깊은 골짜기에 아직 옛 모습이 남아있어 오래된 바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박지수 일행은 남자하를 지나 염불암, 삼막사, 망해루에서 첫날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염불암은 삼성산에 중턱에 위치한 사찰로 신라시대 윤필거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삼막사는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거사 세명이 암자를 짓고 수도한 것에서 기원한 사찰이다.

망해루는 삼막사의 누각이다. 염불암과 삼막사는 삼성산에 있는 사찰로 지금도 남아있다. 두 곳 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어쩌면 박지수 일행이 그림과 시로 이곳의 경치를 알렸기 때문에 더 유명해진 건 아닐까. 이들은 첩첩산중에 있는 염불암과 삼막사의 모습을 화폭에 담기 위해 높은 곳에 올라 지형을 기록했을 것이다. 절벽을 타고 오르며 산세와 계곡의 모습을 새겨두고 시의 구절을 떠올리며 맑은 정신과 기운을 키웠을 모습이 그려졌다.

박지수 일행은 2일 차에 삼성산에 있는 망월암에 머문다. 그리고 3일 차에 관악산과 삼성산 사이에 위치한 불성사에서 관악산과 삼성산의 가파른 모습을 화폭에 담는다. '불성전록망해'는 '불성사 앞 산기슭에서 바다를 바라본다'는 뜻이다. 불성사에서 바라본 서해와 섬들의 경치를 그렸다. 기암절벽 위에 서 있는 일행의 모습이 작게 그려져 있다. 안양에서 서해를 오가는 배를 보며 자연과 동화된 박지수 일행의 시도 계속 이어진다. '불성전록망해'의 그림 아래에 운초, 서호, 학파, 청하의 시가 적혀 있다. 아래에 학파의 시를 소개한다.

삼호는 술잔 너머로 넘쳐나는데
천 척의 배는 겨자씨처럼 조그맣네.
만 마리 말 달리나 봄 조수가 급하니
파도 소리가 나그네 옷을 적시네.
- 학파의 <불성전록망해> 중에서

안양에서 인천까지 내려다보였다는 사실이 놀랍다. 지금은 그렇게 멀리까지 보기는 힘들다. 아마도 미세먼지와 황사 때문에 그런 듯하다.

4일 차, 일행은 지금의 정부과천청사역 인근인 '동자하'에 이른다. 지금도 이곳에서 관악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많다. 박지수의 그림을 보면 남자하보다 동자하가 더 경사가 급해 보인다. 실제로 과천 방향 길이 더 가팔라 오르기 어렵다.

동자하에서 일행은 '동작강'으로 향한다. 동작강은 지금의 국립현충원 일대인데 그림 속 너울 치며 흐르는 한강에 작은 배들이 떠다니는 모습이 여유롭다.

5일 차에 '북자하'인 현재 서울대입구 관악산에 도착한다. '여기담'을 마지막으로 여정은 끝난다. 이곳은 지금의 관악산 호수공원이다. 힘든 여정을 마치고 여기담에서 한껏 회포를 풀었을 활기찬 선비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박지수가 유람을 떠났던 해는 1826년이고 서화첩을 만든 해는 1828년이다. 지인들과 다녔던 곳을 기록해 두었다가 서화첩으로 옮긴 것 같다. 조선시대 문인들의 시선으로 본 안양은 강과 산이 어우러진 자연 속에서 멀리 서해가 내려다 보이는 아름다운 곳이다.

특별전시실 1층에서 실물을 보았다면 2층에서 미디어를 활용한 실감 영상을 볼 수 있다. 영상은 삼성기유첩에 아름다운 색을 넣어 마치 조선 시대가 배경인 영화 속에 빨려 들어갈 듯하다.

이렇게 멋진 영상을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실물은 유물이기 때문에 박물관에 보존하는 게 맞지만 영상은 다른 장소에서도 상영했으면 한다. 그래서 삼성기유첩의 가치를 알리고 후대의 사람들이 선조들의 풍류를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화첩에 담긴 사찰과 암자는 지금도 안양 일대에 남아 있어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있다. 가까운 곳에 조선시대 핫플레이스가 있다니 더 자주 가보고 싶다. 그곳을 다니며 박지수의 시의 운자(韻字)을 따라 함께 시를 짓고 싶다.

한편 삼성기유첩은 칸옥션 고미술 경매에 출품되었고 지난해 2월 안양시가 안양시의회의 도움을 받아 긴박하게 예산을 편성해 낙찰을 받았다고 한다. 삼성기유첩을 이렇게 한 장씩 볼 수 있는 전시는 2026년 3월까지이다. 이후로는 다시 책으로 묶여진다고 한다.

최대호 안양시장은 전시장 개막식에서 "특별기획전을 통해 안양의 과거와 현재를 경험하고, 그 속에 깃든 예술의 향기도 느껴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해설은 오전 10:30, 오후 2:00, 오후 3:30에 들을 수 있다. 전시실 관람을 마치고 설문에 응하면 푸짐한 사은품을 받을 수 있다. 안양박물관과 더불어 바로 옆 김중업 박물관과 서울대안양수목원도 방문하면 좋다.

안양박물관, 10월 16일 부터 <삼성기유첩> 전시 중, 본관에서 삼성기유첩에 나오는 명소의 현재와 과거의 모습을 볼 수 있고 특별전시장에서 실물과 실감 영상을 만날 수 있다.
안양박물관,10월 16일 부터 <삼성기유첩> 전시 중, 본관에서 삼성기유첩에 나오는 명소의 현재와 과거의 모습을 볼 수 있고 특별전시장에서 실물과 실감 영상을 만날 수 있다. ⓒ 김은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삼성기유첩#안양박물관#안양예술공원#박지수#삼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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