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출신 베케트는 이 작품을 프랑스어로 먼저 쓰고, 다시 영어로 번역했다. 그는 "습득해서 배운 언어가 오히려 스타일 없이 쓸 수 있어 자유롭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는 한동안 그를 프랑스 작가로 오해해 '바케트'라는 이름으로 기억했고, 첫 독서 경험은 서사도 없고 인물들의 반복되는 어처구니 대사와 행동으로 그야말로 책을 던지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눌러야 했다. 세 번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문장 사이를 흐르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
베케트는 2차 세계대전 동안 프랑스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며, 나치를 피해 농가에 숨어 지내는 시간을 겪었다. 그는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자신을,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기다리는 인간 전체'의 보편적 모습으로 확장해 작품 속에 옮겨 담았다.
1953년 파리 바빌론 소극장에서 초연된 이 연극은 300회가 넘는 장기 공연을 기록했고, 50여 국의 언어로 번역되며 연극계에 강렬한 충격을 던졌다. 베케트는 하루아침에 명성을 얻었고, 196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만 베케트다운 부재의 방식으로 시상식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작품의 내용과 형식은 기존 연극의 문법을 과감히 벗어난다. 영국의 연극학자 마틴 에슬린이 이를 '부조리극'이라 명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르트르와 까뮈의 실존주의, 카프카와 조이스, 프루스트에 이르는 초현실주의적 사유는 베케트의 정신적 토양이 된다.
전쟁을 통과한 인간에게 '이성'은 더 이상 구원의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다. 이성은 무너졌고, 세계는 절망을 숨기지 않는다. 베케트는 이 무너진 세계의 공백에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시 세우고, 그 주체성이 견딜 수 있는지 묻는다. 그러나 답은 제시하지 않는다. 질문만을 남긴다. 그 침묵 속에서 관객은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고도를 기다리며서가 한쪽에 놓인 『고도를 기다리며』. 재독할수록 인물들의 행동과 대사가 전달하는 ‘기다림’의 의미를 더 명확하게 이해하게 된다. ⓒ 김형순
무대는 황량한 시골길, 그리고 한 그루 나무. 이 단순한 공간에서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두 늙은 방랑자가 '고도'를 기다리며 하루의 시작과 끝을 반복한다. 에스트라공은 작아서 신기조차 힘든 신발의 이미지와 연결되고, 프로이트식 해석에서는 이드(Id)의 몸짓을 보여준다. 블라디미르는 가려움을 달래지 못하는 모자 이미지와 함께 에고(Ego)의 불안정을 상징한다.
둘은 기다림을 견디기 위해 끊임없이 말한다.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말함으로써 존재를 확인한다. 질문하고 대답하고, 횡설수설하고, 욕하고 공격하고, 장난하고 춤추며, 모자를 바꿔 쓰고, 홍당무를 씹는다. 단순하고 기이하며 지리멸렬한 말과 행동이 어딘가 우스우면서도 섬뜩하게 느껴진다.
그들 곁을 지나가는 토지 소유자 포조의 과장된 허세,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 듣고 또 들어줄 것을 강요하는 그의 강박적 존재감. 뒤따르는 노예 럭키의 쉼표 하나 없이 더듬거리며 지식을 쏟아내는 3페이지나 되는 연설 장면은 인간이 얼마나 비루한 방식으로 의미를 만들어내는 존재인지를 드러내며 씁쓸한 웃음을 자아낸다. 그들의 무기력, 궁핍, 허세, 반복되는 몸짓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목격한다.
극 중반에 고도의 전령인 소년이 나타난다. 오늘 고도는 오지 못한다는 말과, 그러나 내일은 확실히 올 것이라는 약속을 전한다. 이 모순된 말은 고도의 '존재'와 '부재'를 동시에 드러낸다. 고도의 수염 색이 회색인지 흰색인지조차 모른다는 소년의 말은, 고도가 실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둔다.
기다림의 대상은 실체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기다린다. 그 허무의 행위를 지탱하는 것은 무엇일까?
1957년 뉴욕 샌 퀀틴 형무소에서, 단지 여배우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연이 허락되었을 때, 수감자들은 이 작품에 열광했다. 그들에게 '고도'는 바깥 세상이었고, 빵이었고, 자유였다. 'Godot'를 God의 파생어로 해석하는 관점도 존재한다.
어떤 나라에서는 무대의 나무를 십자가로 세워 공연하기도 한다. "고도 곁에서 배부른 채 침대 위에서 습기 없이 잘 수 있다"는 대사는 고도가 육체적·정신적 포만감, 혹은 영혼의 안식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암시를 남긴다.
결국 '고도'는 각자가 처한 삶의 조건에 따라 무한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기다리는 사람의 수만큼 고도의 의미도 달라진다. 친구, 사랑, 성공, 결혼, 이혼, 졸혼, 취업, 대학, 내 집, 건강, 죽음, 구원, 혁명, 평화, 기후 위기 해결. 우리는 무엇인가를 향해 손을 뻗고, 기다리고, 다시 기다린다.
그렇다면 나에게, 당신에게, 지금 이 순간의 '고도'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