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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도서관을 여행합니다. 도서관 노동자가 낯선 도시에서 발견한 도서관의 매력, 그 안에 깃든 웃음과 감동, 삶의 온기를 캐리어에 차곡차곡 담았습니다. 책과 사람을 잇는 여행이 지금, 여기서 시작됩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서울 강동구 천호동이다. 어린 시절, 내게 한강은 바다였고 광진구는 그 바다 건너의 다른 대륙이었다. 광진교 위에서 바라보던 저편의 동네는 가깝지만 아득했고, 마음으로는 쉽게 닿을 수 없는 세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철 5호선이 생겼다. 천호역과 광나루역이 강의 바닥을 뚫고 지나간다니, 광진구는 더 이상 '바다 건너'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역을 지날 때마다 가끔 숨을 꾹 참았다.

오십이 넘은 지금까지도 광진구는 내게 그때의 기분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다. 가까운 듯 멀고, 익숙한 듯 낯선 세계. 그 아스라한 기분이 지난 22일 내가 향한 세 번째 도서관, '아차산숲속도서관'까지 이어졌다. 마치 <헨젤과 그레텔> 동화처럼 아주 낯선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아차산숲속도서관 건물 전경
아차산숲속도서관건물 전경 ⓒ 이인자

우연히 블로그 글을 보다가 '아차산숲속도서관'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색 도서관'을 검색하자 여러 도서관들이 검색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숲 속'이라는 단어가 먼저 내 마음을 당겼다. 돌이켜보니 올 가을 단풍 놀이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첫 에세이집 <삶은 도서관>을 출간하고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가을은 어느새 강 건너편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반드시 챙겨야할 준비물, 운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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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아차산숲속도서관'까지의 길은 1석 2조다. 늦가을 단풍도 보고, 도서관 여행도 할 수 있으니까. 다만 의심 많은 나는 이런 불길한 생각도 했다. '정말 숲 속에 있을까? 혹시 무늬만 숲 속은 아닌가?' 걱정은 금세 사라졌다. 지도에서 찾아보니 주차장도 없는 진짜 숲 속. 그렇다면 오늘 반드시 챙겨야 할 것은 운동화 한 켤레였다.

버스에서 내려 길 찾기 앱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 걸었다. 걷다 보니 어느새 등산객들과 발걸음을 맞추고 있었다. 아차산은 찬연한 늦가을의 단풍이 물들고 있었다. 단풍의 절정은 놓쳤지만 혼자 즐기는 단풍놀이는 절정에 다다랐다. 사실, 혼자라서 더 좋았다. 생각해 보니, 학창 시절에는 도서관을 친구들과 함께 다녔다. 그때마다 엄마는 말했다.

"공부하러 가는 거야? 친구랑 놀러 가는 거야?"

억울했지만 맞는 말이었다. 친구랑 가면 놀기도 했으니까. 떡볶이도 먹고, 자판기 커피도 마시며 노닥거리던 추억은 내가 좋아하던 밀크 커피처럼 진했다. 그러다 친구가 먼저 집에 가고 나만 혼자 남아 마감 시간까지 버티면 왠지 모르게 승리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나보다 덜 공부한 친구 성적이 좋게 나오면 좌절했다. 그래도 친구가 미운 적은 없었다.

'여기는 아차산 관리소인가, 도서관인가.'

혼자 즐기는 단풍 놀이에 심취하다 보니 크지도 작지도 않은 건물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관리소라고 하기엔 크고, 우리가 아는 도서관 치고는 조금 작은 사이즈. 건물에 붙은 현판을 보고서야 비로소 '아차산숲속도서관'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도서관 가는 길 찬연한 가을 단풍
도서관 가는 길찬연한 가을 단풍 ⓒ 이인자

'아차산숲속도서관'은 2022년 8월 개관한 신축 도서관이다. 산등성이처럼 완만한 외관 덕분에 반듯한 2층 건물이 아니었다. 1층에 들어서자 작은 어린이 자료실과 긴 테이블이 놓인 종합 자료실이 눈에 들어왔다. 높은 층고 덕에 실내에 시원한 가을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마음이 시원했다.

'꽤 넓은데?'

하는 착각이 든 것은 벽면의 거울 탓이었다. 벽면 끝까지 걸어가니 등산객 같은 중년 아줌마가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나였다.

계단을 따라 올라간 2층은 다락방 같았다. 그러나 다락이라 하기엔 넓고, 독립 공간이라 하기엔 1층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요즘 예쁜 카페를 닮은 모던한 테이블과 의자들, 한쪽에 놓인 무인 커피머신까지 있었다.

도서관이라기보다 숲 속에 있는 카페에 가까웠다. 도서관 여행자에게 이런 착각은 언제나 기분을 좋게 한다. 이 순간 그리운 것은 어쩌면 책 냄새가 아니라 빵 냄새에 가까웠다.

단풍잎 한 장이 반겨주는 곳

그때였다. 2층에서 나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이 있었다. 손바닥만 한 빨간 단풍잎. 누군가 주웠다가 살며시 두고 간 것일까. 마치 여행지 숙소에 도착하자 나를 반겨주는 '웰컴 드링크(Welcome drink)' 같았다.

단풍잎 누가 두고 갔을까
단풍잎누가 두고 갔을까 ⓒ 이인자

가방을 놓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시집 한 권을 골랐다. 가을만큼 시가 잘 어울리는 계절도 없다. 그날 내가 고른 책은 김혜순 시인의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 내가 시를 쓰던 대학 시절, 그녀는 내게 저 먼 곳에 있는 젊은 시인이었다. 하지만 당시 나에게 그녀의 시는 조금 어두웠다. 중년이 된 지금, 그녀의 최근 시집을 읽는다는 건 또 다른 설렘이었다.

첫 번째 시는 '그리운 날씨'. 시를 읽으며 날씨를 떠올렸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바람조차 불지 않은 날씨. 그 덕분에 액자처럼 고요한 단풍을 즐길 수 있었으니 오늘의 날씨도 언젠가 나에게도 '그리운 날씨'가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동안 2층 자료실 옆문으로 등산객들이 드문드문 들어왔다. 모두들 '산에 이런 곳이 있다니' 하는 표정이었다. 오래 있지는 않았다. 잡지 몇 페이지를 뒤적거리고, 화장실을 가는 이용자가 대부분이었다. 등산객이 나가는 문을 따라 나도 나가 보았다.

밖에는 야외 테이블이 놓인 또 하나의 작은 세계가 펼쳐졌다. 가을 햇살이 포근포근했다. '시집은 역시 이런 자리에서 읽어야지' 싶었지만, 대출하지 않은 책을 밖으로 들고 나가는 건 안 될 일이다. 등산객이 다녔을 길을 잠시 서성이다 사진 몇 컷을 남기고 다시 도서관 안으로 들어왔다. 시집의 마지막에는 '김혜순의 편지'라는 글이 있었다.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 시집 표지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시집 표지 ⓒ 이인자

대부분의 독자님들은 저보다 새 사람이겠지만
저의 고통과 아픔은 정말 새것이라고 자부한답니다
더구나 저를 찾아오는 리듬과 멜로디는 너무 젊지요.
저는 제 고통과 아픔과 리듬을 저의 청춘이라고 부른답니다.
-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 182쪽 발췌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훅 치밀었다. 오십이라는 나이가 단풍잎처럼 붉어지고 스러지는 시기라면, 그 낙엽 사이에서 반짝이는 감정은 여전히 청춘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차마 비웃을까 봐 마음속에만 묻어두었는데, 시인이 그 마음을 가만히 문지르는 것 같았다. 문득, 나도 시를 다시 쓰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도서관에 없는 두 가지

나의 도서관 여행의 마지막은 언제나 같다. 그 도서관의 회원증을 만드는 것. 그 순간 도서관 회원증은 '여행 스탬프'처럼 반짝였다. 지역마다 책이음 회원인 외지인의 회원증을 만드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기존 회원증만 있어도 되는 곳이 있고, 신분증과 온라인 회원가입을 거쳐야 하는 곳이 있었다. 이곳은 후자였다. 회원가입 PC에 내려앉은 햇빛이 너무 강해 블라인드를 내려달라고 할까 망설였지만, 데스크 직원의 평화로운 오후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대로 두었다.

'아차!' 잊으면 안 될 것이 있다. '아차산숲속도서관'에는 두 가지가 없다. 주차장과 쓰레기통. 스스로 가져온 쓰레기는 반드시 되가져 가야 한다. 회원가입을 마치자 작은 책갈피와 볼펜, 책을 담은 종이 가방을 선물로 받았다. 나는 그 봉투에 나의 유일한 쓰레기인 플라스틱 커피 뚜껑을 담았다.

그리고 책상 위에 있던 단풍잎도 조심스레 가방에 넣었다. 이 아름다운 계절이 준 생경한 청춘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아차산에서 만난 가장 조용한 책갈피, 이 작은 숲 속 도서관을 소중히 기억하고 싶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도서관#여행#아차산#아차산숲속도서관#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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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어 끌고 도서관

전직 광고 홍보인. 지금은 도서관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감동적인 글로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2025 경기히든작가 당선, 책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 '삶은 도서관'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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