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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백운면 운교리 모운정, 진안의 광한루 ⓒ 이완우
[이전 기사] 마당에서 봉황 조각 만들던 아버지가 광한루에 남긴 것 https://omn.kr/2g3tn
남원 광한루 방장정을 1963~1964년에 시공한 이는 아버지인 도편수 이한봉(1912~1979)이었다. 이 기사에 첨부한 사진에 이한봉 도편수가 시공한 다른 건물이 한 채 있었다. 임실 오수의 향토역사탐구가인 김진영 씨에게 기사와 사진을 전송하고, 이 건물을 찾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진영씨는 이 건물이 '진안 백운면 운교리 모운정'이라는 정자 같다고 전해왔다.
지난 25일 아침, 김진영 씨와 현장을 방문했다. 첫눈에 보기에도 남원 광한루 방정정의 장식 기법이 여러 곳 있었다. 옛날 사진과 모운정을 자세히 비교해 보았다. 모운정이 이한봉 도편수가 시공한 건물이 확실한 듯했다.
아버지가 지은 또 하나의 건축물

▲진안 백운면 운교리 모운정의 시공 중인 모습. 1976~1977년 어느 때로 추정. 지붕에는 돌 너와가 올려졌고, 아직 단청은 올리지 않았다. 사진의 가운데 분 이한봉 도편수, 그 왼쪽 분이 전영태씨, 그 왼쪽 분(하얀 두루마기)이 전해산 의병장의 후손인 전종하씨. 좌우에 목수와 석수들이다. (사진 인물, 전호권씨 증언) ⓒ 이완우
우선 처마가 세 겹인 것을 확인했고, 서까래 수를 세어보았다. 서까래가 측면은 20개, 정면은 27개였다. (측면은 기자가 보관한 사진의 서까래 개수와 같았다.) 기둥 위 공포에 조각한 용머리, 연꽃과 봉황새까지 남원 광한루 방장정의 조각들과 비슷하였다.
모서리 기둥에는 용머리가 셋, 중간 기둥에는 용머리가 둘이었다. 중간 기둥 최상단의 용은 여의주 대신에 물고기를 물고 있었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화려한 화반이 공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측면의 화반에는 거북이 등에 토끼가 타고 있는 형상의 단청이 있었다.

▲진안 백운면 운교리 모운정 ⓒ 이완우
진안 백운면사무소를 방문하였다. 면장과 부면장이 친절하게 자료실에서 <백운면지>(2008년)를 찾아주었다. 모운정 건물 정보에 '남원에서 목수를 불러서 건물을 지었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진안 <백운면지>(2008년)의 주요 내용
모운정(慕雲亭)
소재: 운교리 원운교 당산안
규모: 전면 3칸, 측면 2칸
구조: 목조(주심포, 팔작지붕)
재료: 지붕 한식기와, 구조재 단청마감
건립 연대: 1977년
건립 형태: 개인
미재천이 섬진강 상류와 만나는 지점, 당산안과 원운교 사이 천변에 있다. 전송훈의 부친인 고(故) 전영태씨가 지었는데, 전송훈의 조부인 고 전원석이 마을 사람들과 함께 놀 수 있는 정자를 짓고자 하는 생전의 유지가 있었다.
모운정은 주심포 양식의 팔작지붕이다. 세 겹의 처마, 긴 석주의 '활주'와 화려하고 섬세한 단청 등의 수법을 사용했다. 주춧돌 열 개와 활주를 받치는 네 개의 석주가 면 내의 커다란 바위 하나에서 가공한 것이다. 남원의 목수를 불러 지었는데, 준비부터 완공까지 5년 동안 건립하였다. <구술: 전송훈(65, 당산안 주민)>

▲진안 백운면 운교리 모운정 앞의 전호권씨와 김진영씨 ⓒ 이완우
모운정을 지은 전영태씨는 진안 백운면장을 역임했고, 전북 무형유산 매사냥 전수자였다. 수소문하여 모운정을 지은 전영태씨의 조카인 전호권(68, 진안 백운면)씨에게 연락이 닿았다. 모운정 정자에서 만난 전호권씨는 기자의 아버지 이한봉 도편수가 모운정을 시공한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아래는 전호권씨의 증언.
"서울에서 대학교 다니다, 군대 가려고 진안 집에 와서 있을 때였어요. 이 정자를 짓는 데 심부름했죠. (기자가 보여준 정자 건축 중인 사진을 보면서, 전호권씨가 사진 속 인물을 구별했다.) 가운데 분이 이한봉 도편수, 옆에 분이 큰아버지 전영태, 그 옆에 분이 임실 출신 전해산 의병장의 후손 전종하 님이에요. 여기 이분들은 목수와 석수들이고요. 제 고모부가 임실 삼계면 어은리에 살았지요. 이분이 남원에서 이한봉 도편수를 초청했다고 해요.
할아버지(전원석)께서 이곳 바위에 앉아서 "여기다 정자를 하나 지었으면 좋겠다"라고 하셨대요. 그분의 아들(전영태, 전호권의 큰아버지)이 아버지의 뜻을 받들었어요. 그때부터 백운면 이곳저곳의 노송을 하나씩 샀지요(입수선매, 立樹先買). 십 리 또는 이십 리 멀리 있어도 좋은 소나무는 샀어요. 1974년부터 한 그루씩 베어서, 소달구지로 운반했어요.

▲운초거사백범 김구 선생이 진안 백운면 운교리 전원석 선생에게 써 준 묵서. (사진 제공, 전호권) ⓒ 전호권
할아버지의 호는 '운초(雲樵)'이지요. 이 정자 이름 '모운정(慕雲亭)'은 '아버지를 사모하는 정자, 사부정(思父亭)이라는 의미가 되지요. 할아버지께서는 백범 김구 선생에게 몇 점 글을 받았었는데, 두 점이 남았다고 했어요.
이 정자의 기단 석재는 이십 리 밖의 비사랑 지역에서 채취했어요. 할아버지가 운영했던 물레방아 정미소의 소달구지 두 대를 이어서, 긴 사각기둥 화강암 원석을 채취하여 운반했지요. 집옆 논에 작업장을 지어놓고 석재를 가공했어요.
모운정 앞은 원래 논이었는데 삽으로 파내서 연못을 만들었지요. 지게와 달구지를 활용해 오래 작업했어요. 정자에 비해 규모가 작아서 길을 돌려내고, 연못 부지를 확보했지요. 아직 연못은 미완성인 상태예요.
정자 지붕은 처음에 너와를 이었어요. (기자가 보관한 모운정 건축 중인 사진도 너와 지붕이 보인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4km 거리인 비사랑 오른쪽에 산사태 진 비탈에 너와가 많았어요. 지표에 노출되어 풍화로 단단해진 너와를 수집했지요. 세월이 지나서 너와가 깨져서, 청기와를 얹었다가 전통 흙기와로 다시 이었어요.

▲(좌상) 모운정 화반의 거북이를 탄 토끼 단청 (우상) 모운정 주초와 난간 (좌하) 기둥의 명태 문양으로 마감한 송진 채취 흔적 (우하) 모운정 건축 후 남은 석재 ⓒ 이완우
여기, 이 기둥을 보세요. 이곳은 소나무 줄기에서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 있었어요. 도편수가 이 송진 형태를 활용해서 명태같이 재치 있게 마감 처리했어요. 명태가 위로 입을 벌린 모양이죠. 도편수는 "이 명태를 안주 삼아서 이 정자에서 약주를 들면 좋겠다"며 웃으셨죠.
정자의 용머리 등 기둥머리에 장식된 여러 가지 목조각은 도편수가 직접 작업했어요. 단청은 처음 그대로예요. 단청은 전주 풍남문을 보수한 장인들이 왔죠. 그들은 서울 고궁의 단청을 시공했던 실력자라고 했어요.
정자가 있는 이 지역을 회룡동이라고 해요. 저 냇가 건너 앞산이 호두(虎頭)산으로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형국이지요. 이 정자가 있는 이쪽은 용두봉(龍頭)봉 또는 당산봉이라고 해요. 당산봉 앞쪽 들녘에 여의주 바위 동산이 있고요, 이 용두봉에 채계바위(책을 쌓은 듯한 절벽)가 있는데 용의 아가리(입)라고 하죠. 이 지역의 풍수와 정자가 잘 어울리고 있어요."

▲진안 백운면 운교리 모운정 편액과 기둥 상부 장식 목조각 ⓒ 이완우
모운정이 진안의 광한루로 알려지기를
모운정(慕雲亭) 편액은 아버지(전원석)를 그리워하며, '불초(不肖) 영태(永泰)'라고 아들 전영태가 약간의 행기를 넣어 해서체로 썼다. 이곳 마을은 구름다리로 불리는 백운면(白雲面) 운교리(雲橋里)이다. 용이 하늘로 승천하기 적합한 지명이다. 모운정 정자에 수많은 용이 하늘로 승천하고 있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서 있고 울창한 느티나무와 소나무들은 시원스러운 정취를 자아냈다.
모운정 정자 동남쪽 40m 떨어진 산비탈 아래에 작은 집 한 채가 있다. 방이 두 개이고, 가운데가 부엌이 있었다. 이 정자에 와서 쉬면서, 자고 갈 사람을 이곳에서 숙식하라는 배려였다. 이 정자는 누구나 와서 아름다운 풍경을 공유하고 나누는 쉼터로서 넉넉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1980년대에는 이 정자에서 여럿이 와서 쉬려면 몇 달 전부터 예약해야 정도였다고 한다. 정자 마당 서편에는 집수정(集水井)이 있었고, 작은 주차장에는 화장실이 깨끗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전호권씨가 군대에 복무(1976~79)한 기간 중인 1977년에 이 정자가 완공되었다.

▲진안 백운면 운교리 전영태 고택. 이 집의 방에서 이한봉 도편수가 모운정 건축 기간에 머물렀다. ⓒ 이완우
전호권씨는 정자에서 직선거리로 160m 거리에 있는 전영태씨가 살던 집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아버지 이한봉 도편수가 머물렀던 방을 보여주었다. 이한봉 도편수는 1977년에 이 모운정을 짓고, 3년 후인 1979년에 타계했다. 이한봉 도편수는 평생 연마한 도편수 기량을 이곳 정자를 지으며 다 발휘한 듯 보였다.
기자의 임실읍 두곡리 자택에서 동북 방향으로 직선거리 10km 위치에 진안 내동산이 있다. 기자의 집은 동북 좌향이어서 이층 서재에서 창문을 열면, 내동산이 큼지막하게 뫼산(山이)가 형태로 보인다. 이 내동산 넘어 섬진강 변에 기자의 아버지 이한봉 도편수가 건축한 모운정이 있었는데도, 지금껏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기자가 임실에 귀촌한 지 20년 동안 바라본 내동산의 풍경은 아버지의 마지막 건축물인 정자를 조용히 품고 있었다. 모운정이 아버지의 역작(力作)인 것을 47년 만에 확인했으니, 이것이 우연일까 필연일까?
남원 광한루는 도교와 신선 사상에서 달 속에 있다는 궁전인 광한전에서 유래한 것으로, 광한루는 신선 세계를 지상에서 구현한 공간으로 이해된다. 남원 광한루 500년 역사의 정신과 문화를 진안 모운정에 현대적으로 재현시키려 했던 아버지 이한봉 도편수의 마음을 아들로서 느낄 수 있었다.
지난 11월 6일에 국립진안고원산림치유원이 개장하였다. 이곳을 오가는 방문객들 진안 마이산과 함께 진안 백운면의 모운정을 찾아서 이토록 아름답고 의미 깊은 정자를 둘러본다면 여행의 즐거움은 한층 더할 것이다. 이 모운정이 진안의 광한루로 알려지면 좋겠다.
광한루 남원 방장정에서 진안 섬진강 상류 모운정까지 시대와 장소를 넘어 이어진 한 도편수의 전통건축의 예술적이고 문화적인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기를 바란다. 이 모운정이 전통건축의 예술성과 조형 기법을 전승하는 전통 건축 정자로 인정되고,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체계적인 유지 보수가 가능하길 희망한다.

▲진안 백운면 운교리 모운정, 진안의 광한루 ⓒ 이완우
덧붙이는 글 | 모운정 위치: 전북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 8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