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

▲다운타운 터코마(Downtown Tacoma).타코마의 쇠퇴는 1896년 캐나다 유콘(Yukon) 지역의 보난자 크릭(Bonanza Creek)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시작된 클론다이크 골드러시로 더욱 가속화되었다. 1897~1899년 사이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금을 찾아 유콘으로 몰렸다. 그 인력과 물자들의 출발지가 시애틀이 됨으로서 시애틀은 'Gateway to Alaska'라는 슬로건으로 도시 성장의 계기가 마련된 반면 타코마는 금광 물류 중심지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클론다이크에서 금의 발견은 타코마로서는 쇠퇴의 길로 도시의 운명을 바꾼 사건이 되었다. ⓒ 이안수
타코마(Tacoma)를 즐기는 방법 중의 하나는 '유령투어'이다. 전설이나 괴담, 초자연적인 미스터리 등을 발굴해 해당 지역이나 건물을 저녁에 탐방한다. 미국 시애틀 남쪽에 있는 타코마는 한때 '운명의 도시(City of Destiny)'로 불렸다. 1873년 타코마가 미국 대륙횡단 철도인 북태평양 철도(Northern Pacific Railroad)의 태평양(Puget Sound) 종착지로 선정되면서 붙여진 말이다. 타코마가 철도와 해운의 중심이 되리라는 기대, '이 도시야말로 미국 서부의 운명을 결정할 곳'이라는 자부심과 확신이 반영된 명칭이었다.
실제로 19세기 말, 타코마는 대규모 인구 유입과 산업 발전의 상징적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활황기는 1873년부터 1920년대까지 고작 50여 년에 불과했다. 철도·항만의 중심 역할이 시애틀로 이동하고 항만 물류도 재편되면서 경제 기반이 약화되고 경제 침체로 중산층과 기업들이 시애틀과 벨뷰 등으로 이동하면서 '거친 도시(Grit City)'로 바뀌었다. 대부분 북태평양철도와 항만 도시로 타코마가 성장하던 시기에 지어졌던 건물들은 텅 빈 채 방치되었다.

▲북태평양 철도의 서쪽 종점.19세기 후반 타코마가 국제 해운 항구로 성장하면서 만들어진 'Where the Rails Meet the Sails(철도가 돛과 만나는 곳)'이라는 구호는 여전히 이 도시에 유효하다. 북태평양 철도의 서쪽 종점이 되었고, 이는 미국 내륙이 철도를 통해 태평양과 만나는 물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나타내며 이는 이 도시의 정체성이다. ⓒ 이안수

▲워싱턴대학교 타코마(UW Tacoma).대학 건물 사이의 보행로와 광장은 시민과 학생이 함께 어울리는 열린 공간으로 개방되었다. 타코마는 쇠락한 항구·산업 도시였지만, 최근 수십 년간 산업유산을 재생하여 문화·교육·주거가 어우러진 도시로 변모하면서 쇠락의 길에서 벗어났다. 옛 창고·공장·철도 기반 시설이 복원되어 대학 캠퍼스, 박물관, 워터프런트 커뮤니티로 탈바꿈하며 예술과 교육도시로서 새로운 이미지를 갖게 되었으며 퓨젯 사운드 내륙만의 고유한 바다 풍경과 넓은 공원들은 시애틀보다 물가가 싼 곳에서의 주거로도 주목받고 있다. ⓒ 이안수
타코마의 놀라운 반전
지난 2일, 지인의 초대로 방문한 타코마의 곳곳을 함께 돌면서 이 도시만의 끌림을 경험했다. 시간이 쌓인 산업적 풍경과 깊숙한 내륙만인 퓨젓 사운드(Puget Sound)의 고요한 바다와 자연, 넓은 도시 공원, 도심의 붉은 벽돌 건물들과 앤티크 가게들, 다양한 예술·문화 환경 등은 옛 산업 도시의 모습이나 '시애틀 옆 도시'의 역할로 머무는 곳이 아니었다.
18일 뒤 재방문했을 때는 도시를 걸으면서 구체적인 매력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비워진 채 유령 이야기들의 배경이 된 건물들은 국립사적지명부(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에 등록되어 그대로 살아남았다. 그 역사적 건물들은 시간의 품격을 품은 채 '재생적 활용(Adaptive reuse)'이라는, 건축물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면서 완전히 다른 기능을 부여하는 건축적 복원을 통해 새로운 역할을 맡고 있었다.
옛 타코마 시청(Old City Hall, 1893)은 사무실, 레스토랑, 상가, 주거, 이벤트 공간으로 재생 프로젝트 진행 중이고 옛 철도역(Union Station 1911)은 연방 법원과 문화 행사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엘크 형제회 모임 장소로 지어졌던 엘크스 템플(Elks Temple 1916)은 맥메나민스(McMenamins)에 인수되어 호텔·음식점·양조장·라이브 음악당으로 기능하고 있다.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지어진 골동품 거리의 상가 건물들은 골동품 상점, 갤러리, 카페, 커뮤니티 공간으로 변모했다.

▲타코마 올드 시티 홀(Old City Hall).1893년에 건축된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로, 한때 타코마의 행정 중심지로 도시의 자부심의 상징이었지만 방치와 쇠락을 겪었다. 현재 민간 개발자와 도시가 협력해 복원·재생 프로젝트 진행하면서 도시의 산업유산과 재생을 상징하는 건축물이 되었다. ⓒ 이안수

▲포인트 디파이언스 공원(Point Defiance Park).넓은 도시공원이 있는 타코마. 타코마의 육군기지와 공군기지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 병력의 주요 훈련 및 파병 기지였다. ⓒ 이안수
가장 놀라운 것은 워싱턴대학교 타코마(UW Tacoma) 캠퍼스. 대학 건물들은 도심의 오래된 창고·상업 건물을 재생적 활용 방식으로 재탄생한 것이었다. 대학의 강의실은 원래의 벽돌·철제 구조를 그대로 살렸다. 과거 산업 도시의 분위기가 남은 높은 천장의 강의실과 공용 공간은 마치 세련된 카페에 있는듯 했다. 건물 사이의 보행로와 광장은 시민과 학생이 함께 어울리는 열린 공간으로 개방되었다.
산업 쇠퇴와 함께 남겨진 폐산업 시설을 예술·문화·교육·주거 공간으로 전환한 도시 재생으로 과거의 거친 산업적 흔적을 상징했던 'Grit City'라는 타코마의 별칭이 주민의 끈기와 생존력, 도시의 회복력과 문화적 자부심을 상징하는 의미로 새롭게 브랜딩 되었다.
혀가 기억하는 맛
타코마는 한국과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 타코마 남쪽에 있는 루이스-맥코드 합동기지가 한국전쟁 참전 병력의 주요 거점이었고, 전후 미군과 결혼한 한국 여성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군인 가족 공동체가 형성되기도 했다. 인근 레이크우드(Lakewood)는 팔도월드 같은 대형 마트와 한국 음식점·카페 등 한국인 상권이 형성되어 코리아타운으로 불린다.
이곳의 한식당에서 먹은, 바특하게 끓인 순두부 찌개는 혀가 기억하는 한국이었다. 시애틀 인근의 또 다른 한인 밀집지로는 시애틀 남쪽 페더럴웨이(Federal Way)와 북쪽 린우드(Lynnwood)가 있다. 타코마시는 전라북도 군산시와 1979년에 자매결연을 맺어, 46년째 우호적인 교류를 이어오고 있기도 하다.

▲레이니어산(Mount Rainier).대륙횡단 철도인 북태평양 철도(Northern Pacific Railroad)의 태평양 종착역으로 선정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 커먼스먼트 만(Commencement Bay) 너머로 보이는 레이니어산. 이곳의 원주민인 퓨알럽 부족(the Puyallup people)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이 산을 '물의 어머니(Mother of the Waters)’라는 의미인 '타호마(Tahoma)'라고 불렀고 그 이름은 오늘날 타코마라는 도시의 이름이 되었다. ⓒ 이안수
타코마는 개성적인 붉은 벽돌의 무게로 내 눈에 닿았고 그것이 마음에 남아 쉬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오래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타코마에서는 삶은 쉽게 흔들리지 않고 좀 더 깊어질 것 같다.
4392미터의 활화산, 레이니어 산(Mount Rainier)이 멀리서 타코마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 지역 원주민 퓨얄럽(Puyallup) 부족은 그들의 언어로 레이니어산을 '타호마(Tahoma)'라고 했다. '물의 어머니(Mother of the Waters)'라는 뜻이다. 시애틀로 되돌아오는 늦은 밤, 물의 어머니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는 듯싶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모티프원의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