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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글방수업을 받은 마을 어머님들의 시모음집 출간기념 ⓒ 박향숙
"제가 드디어 약속을 지켰어요. 2년 전 어머님들과 한글 공부하고, 시 읽고 쓰기 공부하면서 꼭 책으로 만들어 드리겠다고 한 약속을 오늘 지키게 되어서 제 자신도 대견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을 만들도록 도와주신 어머님들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 드려요."
말랭이 마을 입주 작가 2년 차였던 2023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마을에 '동네글방'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평균 나이 80세였던 어머님들의 가장 큰 소원은 한글을 배워서 어디서든지 시원하게 글자 한 번 읽어보는 일이라고 했다. 더불어 동사무소나 은행에서 당신들이 직접 이름을 쓰고 서류를 떼보고 은행 일도 보고 싶다고 했다.
10개월간 진행된 동네글방 기초한글 공부 과정엔 '시 읽기'와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쓰기'가 있었다. 어머님들 중엔 초등학교 미 졸업자가 많았다. 그들은 소리나는 대로 글을 쓰는 것과 사투리를 표준어로 쓰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지역시인이 읽어주는 시 낭독과 그림책 읽어주기는 매 시간마다 필수과정으로 진행했고, 한글의 자음과 모음학습을 비롯한 문해교육에 필요한 기초과정을 공부시간에 넣었다. 봄 여름 가을 풍경 사진찍고 글쓰기, 키오스크 사용법 배우고 글쓰기, 야외 꽃놀이 후 글쓰기, 그림책 이야기 듣고 글쓰기, 시 읽고 글쓰기 등, 다양하고 재밌게 한글공부를 했다.
어머니들 마음소리 담은 글 저장고

▲자작시 <해바리가 연정>을 포함한 5편의 시를 수록한 정엽어머니의 환한웃음 ⓒ 박향숙
최고령 87세였던 방자어머니는 한글의 기역, 니은부터 시작했지만 결석 한 번 없는 수업태도를 보이셨다. 마을의 살림꾼 정엽어머니는 동네글방 중, 방송에 나가서 당신의 첫 시 <해바라기 연정>을 발표하기도 했다. 어머니 10명의 스케치북과 노트는 한 권 두 권씩 쌓이면서 당신들의 마음소리를 담은 글 저장고가 되었다.
글방공부 첫 시간 당신들이 잡았던 연필의 떨림과 '우리가 무슨 시를 쓴당가'라고 했던 말들은 어느새 사라졌다. 모이면 글공부 얘기로 꽃을 피웠고, 시 한번 써보자는 격려에 정이 두툼해졌다. 수업 때마다 "우리 시 써서 꼭 책 만들어요"라고 말하면, "긍게. 그까짓 것 한번 써보면 되겄지. 말을 그대로 글로 쓰면 시 아니겄어? 유명한 시인들 시 읽어봉게 그렇고만"이라고 답했다.
서천의 맥문동 축제밭에 갔을 때, 나태주 시인의 <풀꽃>시가 비석에 새겨져 있었는데, 말이 없던 흥자어머니는 한번 읽어보고 싶다면서 시 낭독을 했다. 시가 짧고, 쉬워서 좋다면서, "우리도 이렇게 쓰면 되겄다. 어렵게 말고 그냥 말 나오는대로 썼다가 이상하면 작가님이 고쳐주겄지"라며 시 쓰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해 쓴 작품들과 작년에 쓴 작품들을 모아서 올해 책을 꼭 만들겠다고 선포한 올 여름, 책에 넣고 싶은 작품들의 원고를 가져오셨다. 시간이 지나서 그때의 감정이 다 사라졌다면서 다시 읽어보고 고쳐도 되냐고 묻는, 소위 탈고의 과정을 거친 작품 27편이 모였다. 글방공부를 하면서 어머님들이 느꼈던 소감을 인터뷰한 에세이 형식을 가미하여 여름과 가을내내 책 완성에 몰두했다. 책의 표지에는 시를 써주신 글방어머님 10명의 이름을 '글방시인'이라고 표기했다.
오늘(11.24)은 책 출간회를 자화자찬 하는 날. 말랭이 마을의 대표관광장소인 양조장 앞에서 평상을 폈다. 11월 늦가을인데도 날이 청명하고 바람도 없어서 야외 출간회를 하자고 했다. 시를 읽어주었던 김 선생님은 잔칫날 떡이 빠질 수 없다며 떡을 가져오셨고, 동네 주민은 축하의 꽃다발을 들고 오셨다. 조촐하지만 밤톨같이 알찬 우리들의 가을 잔치상이 꾸려졌다.
우리들의 가을 잔치상
책의 구성을 말씀 드리고, 책 속에 있는 어머님들 이야기 부분의 소 제목을 읽어드렸다.
성심어머니의 <민들레 꽃 거꾸로 봐도 시는 제대로 쓰지>, 방자어머니의 <손아 고맙다, 시인이 되게 해주어서>, 정엽어머니의 <꽃의 향기가 어찌 따라갈까, 사람의 향기를>, 대순어머니의 <엄마가 내 딸로 다시 태어난다면>, 승자어머니의 <그리움 외로움 기다림이야, 사랑이란>, 덕순어머니의 <라인댄스만 잘하나, 시는 더 잘써요>, 정자어머니의 <이산 저산 다 봐도 으뜸멋쟁이 시인>, 명희어머니의 <손잡고 우리 마을 돌며 시를 써봐요>, 흥자어머니의 <방송 아나운서도 놀란 말랭이마을 음유시인>
어머니들 이름 뒤에 '시인'이란 호칭을 넣어서 책 전달식도 하고, 손에 손에 책을 들고 단체 사진, 개인사진도 찍었다. 말랭이 안 마당에 피어난 시인꽃들의 웃음잔치였다.
도종환시인의 <늦은 꽃>이란 시의 일부에 있는 글이다.
"늦게 피었어도 그 짧은 날들이 다 꽃피는 날이었다고 일찍 잎은 지고 그 뒤로 오래 적막했어도 함께 있던 날들은 눈부신 날이었다고"
말랭이 마을에서 어머니들과 함께 글방공부를 하며 수많은 추억들이 쌓여서 피어난 늦은 시꽃. 그 꽃을 피어낸 어머니시인들의 이름이 오랫동안 불려지길 기도했다.

▲말랭이시인들의 시모음집<늦게 피어난 시꽃이 내 이름을 불렀다> 출간 ⓒ 박향숙
"저의 작은 소망 한 가지가 있어요. 우리 마을이 시인의 마을로 불려지길 바라지요. 관광객들이 와서 건물 몇 개보고, 막걸리 한잔 마시고 가는 마을이 아니라, 막걸리 만들고 단호박 식혜를 만드는 어머니들이 바로 시 쓰는 시인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마을 벽화에 써 있는 어머니들의 작품을 오래도록 기억하여 다시 또 놀러오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요. 이 책은 시인으로 가는 길에 만난 첫 문과 같아요. 이제 두 손으로 문을 열었으니, 저와 함께 시를 더 많이 써 보시게요. 그래서 내년에는 개인시집도 만들어봐요. 파이팅!!"
개인시집출간이라는 말에 어느 누구도 '나는 못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미 어머니들은 꿈을 꾸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시인이 될 거야. 나이 90도 늦지 않았어. 단지 늦게 피어날 뿐이야. 내 이름을 불러줄 시꽃을 피울거야.'
* 부탁! 군산 문화마을, 말랭이마을에 오시면 시꽃을 피운 어머님들의 이름을 꼭 불러주세요.
덧붙이는 글 | 마을 어머님들의 동의 하에 얼굴이 공개된사진을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