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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와 한반도에는 '양코프스키딱정벌레(Coptolabrus jankowskii jankowskii)'가 산다. 얼마 전까지 학명에 맞춰 부르던 이름이었으나 지금은 '멋쟁이딱정벌레'로 바뀌었다. 밤에 활동하며 작은 벌레를 잡아먹고 사체도 처리하는 청소 곤충이다. 겉날개의 색상 차이가 심해 모아 놓으면 곤충 보석함을 보는 듯 하다. 속날개는 없어져 날지 못하기에 스스로를 지키려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양코프스키는 폴란드 귀족으로서 러시아 혁명 때 연해주에 정착했다. 극동에서 마적단을 소탕하고 범 사냥꾼으로 이름을 떨쳐 우리 겨레가 '네누니(Nenuni)'라고 불렀다. 양코프스키 집안은 동북아 근현대사의 비극을 켜켜이 품고 있다. 150여 년에 걸친 한 가문의 개척사가 한·폴·러·중·일 5개국을 잇는다.

네누니 전설의 시작 시데미 반도

멋쟁이딱정벌레(양코프스키딱정벌레). 천천히 종분화가 일어나고 있기에 금속성 느낌의 지역별 색변이가 크다.
멋쟁이딱정벌레(양코프스키딱정벌레).천천히 종분화가 일어나고 있기에 금속성 느낌의 지역별 색변이가 크다. ⓒ 이상헌

1863년 미하우 양코프스키(Michał Jankowski)는 영지와 작위를 잃는다. 러시아의 압제에 맞서 폴란드 독립 운동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그는 18개월간 죽음의 행군 끝에 도착한 시베리아에서 광부로 살아야 했으며 5년 후 사면을 받아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시데미 반도에 정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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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우는 군마를 개량해 러시아군에 공급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다. 곧이어 올가(Olga Kuzniecowa)와 결혼해 시데미에 영지를 세우고 알렉산더와 유리(Yury)를 비롯한 여러 자식을 둔다. 당시 연해주는 청나라 유민으로 이루어진 마적단이 살육과 노략질을 일삼던 무법지대였다. 미하우는 우리 동포를 고용하고 자경단을 꾸려 마적을 소탕한다. '뒤에도 눈이 달렸다'는 네누니 전설의 시작이다.

양코프스키는 한민족에게 인삼 재배와 녹용 가공법을 배워 큰 부를 쌓는다. 두 아들을 미국에 3년간 유학 보낼 정도로 번창했다. 특히 알렉산더는 식물학자 블라디미르 코마로프의 한반도 탐사를 지원한다. 뒷날 고마로브집게벌레에 코마로프(관련기사 : 석씨 성을 받은 나비와 조씨 성을 따른 나비가 있다?) 이름표가 붙는 까닭이다.

네누니는 동식물학, 지질학, 고고학, 기상학에도 관심을 쏟았다. 블라디보스토크 박물관 설립을 도우면서 여러 과학 및 실용서를 집필한다. 1894년에는 한반도를 탐사해 양코프스키딱정벌레를 비롯해 20여 종의 동식물에 자신의 이름을 남긴다. 기구한 그의 삶은 1912년 소치에서 막을 내렸다.

새로운 땅 노비나의 역사

1907년 유리는 마가리타(Margarita Sheveleva)와 혼인하여 3남2녀를 둔다. 러시아를 장악한 볼셰비키군은 알렉산더를 부르주아로 낙인 찍어 처형한다. 피땀으로 일군 영지를 뒤로 한 채 유리는 가족을 이끌고 함경도로 피신한다. 1922년 주을에 정착한 그는 이모부 보리스 브리너(배우 율 브리너의 부친)에게 자금을 빌려 '노비나(Novina)'를 세운다.

목장이자 휴양지로써 '새 터'란 뜻이며 가문의 문장에 나오는 단검이기도하다. 백석과 이효석은 나라 잃은 슬픔 속에서 노비나를 이상향으로 그리며 여러 편의 글을 쓰기도 했다. <조복성 곤충기>에도 유리가 나온다. 네누니 일가는 생계를 위해 한반도의 곤충을 채집해 외국 수집가에게 팔았기에 첩자로 의심 받았는데 조복성이 혐의를 풀어주어 훗날 노비나에 초대 받는 사연이다.

네누니의 손자 발레리(Valery)는 스웨덴 동물학자 스텐 베리만의 함경도 탐사를 후원한다. 뒷날 베리만이 <한국의 야생동물지>를 출간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양코프스키 가족사는 1945년 내셔널지오그래픽 10월호에 실릴 만큼 이목을 끌었다. 2010년에는 EBS에서 발레리의 장례식 장면을 송출하면서 전파를 탔다.

해방 후 유리와 발레리는 1946년까지 소련군에서 통역으로 복무했으나 스파이로 몰려 강제 수용소로 보내진다.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며 노비나 65년의 역사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유리는 1956년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고 1990년에야 누명을 벗었다. 발레리는 무려 40년 만에 캐나다에서 아내 이르마(Irma Mayer)와 아들 세르게이를 만날 수 있었다.

양코프스키 일가와 메리 테일러가 나눈 편지들. 대한민국 독립 운동에 헌신한 테일러 부부와 양코프스키의 딸 빅토리아가 나눈 편지.
양코프스키 일가와 메리 테일러가 나눈 편지들.대한민국 독립 운동에 헌신한 테일러 부부와 양코프스키의 딸 빅토리아가 나눈 편지. ⓒ 서울역사박물관

네누니의 자취는 서울역사박물관에도 남았다.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힘쓴 앨버트 테일러는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잠들었다. 아내 메리는 유리의 딸 빅토리아의 초대로 노비나에 머문 경험을 바탕으로한 <호랑이 발톱>을 펴낸다. 2021년 앨버트 부부가 살던 딜쿠샤가 개관하면서 메리의 손녀가 기증한 유물에 네누니 일가와 나눈 편지가 등장한다.

1957년 명예를 회복한 발레리는 이리나(Irina Piotrovskaya)와 재혼해 모스크바 남쪽 블라디미르에 정착한다. 가문의 일대기를 다룬 10여 권의 책을 내면서 2010년에 눈을 감았다. 그 해 블라디보스토크 국립도서관은 네누니 일가를 기린 책을 펴낸다. 1991년에는 시데미에 미하우의 동상이 세워졌다. 이곳은 오늘날까지 '양코프스키 반도'라 부르고 있다. 동상 제막 때 비로소 생이별한 가족이 다시 만나 눈물을 쏟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달 후 운영중인 홈(www.daankal.com)에도 실립니다.해당 기사의 사진은 글쓴이의 초접사 사진집 <로봇 아닙니다. 곤충입니다>의 일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멋쟁이딱정벌레#양코프스키#호랑이사냥꾼#고마로브집게벌레#네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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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칼에 끝내는 인문학 곤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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