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한 아동 문학을 소개합니다. 어른에게도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아동 문학을 통해 우리 아동 문학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문학 속에 깃든 아이들의 마음과 어른의 모습을 들여다 봅니다.
좋은 책은 시대를 가리지 않는다. 책의 사멸을 경고하는 시대에도 기어이 살아남아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킨다. 우리는 이런 책들이 살아남는 이유를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붙여 세대를 아우르는 가치와 정서가 있다면 금상첨화인 셈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먹는 새우과자처럼 맛깔나게 독자를 사로잡는다면 명작임이 틀림없다.
내포 독자의 설정
작가는 자신이 쓰고 있는 글을 누가 읽을 것인가 염두에 두고 글을 써야 한다. 읽을 사람이 어린 독자라면 어린이의 생활과 정서에 맞는 이야기를 써야 하며, 어린이의 어휘력에도 신경을 쓰고 단어를 선택해야 한다. 반면에 읽을 사람이 어른 마니아층이라면 내용의 난이도를 올리고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대중을 위한 글이라면 현 시대 대중이 원하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간파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를 내포 독자의 설정이라 한다. 텍스트가 예상하고 설정한 이상적인 독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설정은 어떨까? 이 또한 내포 독자를 염두에 두고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아동 문학에서 주인공은 이야기 내용과 맞는 나이대의 아이로 설정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이를테면 2학년 아이가 주인공인 이야기는 내포 독자가 저학년인 셈이니 현학적인 단어는 금지다.
아이들이 접할 수 없는 세상이나 접해서 도움이 안 되는 세상 이야기를 굳이 택할 이유도 없다. 이것은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독자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어린 독자가 감정을 이입하고 이야기로 깊이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공감의 장치가 되기 때문이다.
어른 독자 역시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등장인물에 마음이 간다. 하지만, 어른 독자는 때로 어린 주인공을 통해 자신의 내면 아이를 보기도 하고, 나이 든 등장인물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보기도 한다. 그래서 등장인물의 설정이 절묘하다면 어린 독자와 어른 독자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학교, 학생 그리고 선생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2020년), 초판출간 1987년 ⓒ 알에이치코리아(RHK)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다. 학교라는 공간은, 특히 이 책이 만들어진 1980년대는, 권위적인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공간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작가 이문열은 이 점을 이용해 우화 아닌 우화로 그 시대 민주주의의 허점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지금과 같이 학생 인권이라는 개념이 대두되지 않던 시절에 선생님의 권위는 절대 권력에 가까운 것이었다. 자애로운 선생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복종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 학교였다. 이 점을 떠올려 잘못된 권력을 풍자하기로 한 작가의 선택은 신의 한 수다. 이문열은 그해 이 작품으로 '이상 문학상'을 수상한다.
평단은 이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를 '한국의 굴곡진 현대사를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로 은유한 솜씨가 빼어나며, 주인공의 승승장구와 몰락을 통해 쫄깃한 소설적 재미까지 살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이유는 정치 풍자의 역작으로 불리는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을 명작의 반열에 세운 이유이기도 하다.
<동물 농장>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의 사회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스탈린과 당시 정치 인물들을 도마 위에 올린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60년대 우리 정치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 책은 교과서에 실리고, 수능 지문으로 등장하며 독자층을 확장하기 시작한다. 권력 구조와 집단 심리라는 주제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고, 비교적 짧은 서사와 명확한 주제 의식으로 교육에 활용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어린 독자들에게도 학교라는 공간은 우정과 리더십, 따돌림에 대한 공감대를 이끌기에 충분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인터넷 서점 연령 구분 초등 고학년으로 구분된다. 동시에 한국 문학 대중 소설로 구분되기도 한다. 세계 명작의 여러 작품들이 초등 고학년부터 성인 독자에 이르기까지 읽히고 다양한 연령층에 배치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병태와 엄석대
이야기는 소위 '액자식 구성'이라는 형식을 갖고 있다. 주인공 한병태가 30년 전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시작한다. 그리고 현재의 자신과 엄석대의 모습을 설명하며 글을 맺는다.
"자유당 정권이 그 마지막 기승을 부리고 있던 그해 3월 중순, 나는 자랑스레 다니던 서울의 명문 초등교를 떠나 시골의 한 작은 읍내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병태의 전학은 '공무원인 아버지가 한직으로 밀려나' 이사를 하게 된 것이었다. 12살 병태가 권력의 몰락을 처음으로 맛본 일이었다.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시골 초라한 학교에서 병태는 아버지가 겪었을 힘 없는 자의 자괴감을 맛본다. 담임 선생님의 비호를 등에 업고 교실의 최고 권력자가 된 엄석대가 교실 안의 모든 친구를 자신의 졸개쯤으로 부리며 권력자로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본 것이다.
"그때껏 서울에서 내가 보아 왔던 반장들은 하나같이 힘과는 거리가 멀었다. 집안이 넉넉하거나 운동을 잘해 거기서 얻은 인기로 반장이 되는 수도 있었으나, 대개는 성적순으로 반장, 부반장이 결정되었고, 그 역할도 반장이라는 명예를 빼면 우리와 선생님 사이의 심부름꾼에 가까웠다."
작가는 서울의 학교와 시골의 학교를 비교하며 '계몽'의 부재를 드러낸다. 절대적인 권력은 사회적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말한 셈이다.
석대와 학급 아이들과의 관계를 전혀 몰랐던 전학생 병태는 소위 '타깃'이 된다. 점심시간이면 도시락 반찬을 상납 받고, 친구끼리 다툼이 생기거나 학급에 일이 생기면 선생님처럼 처리하는 석대를 이해할 수 없어 엄석대의 '물당번'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병태는 홀로 거대 권력과 맞서는 꼴이 된다. 억울하게 선생님께 혼날 일이 생기거나,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해 일방적 뭇매를 맞게 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선생님마저 석대의 권력을 세워주는 데 절대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작품에서 절대 권력 엄석대가 저항하는 병태를 다루는 방법은 소름 끼친다. 대놓고 폭력으로 점철된 방법을 쓰는 것이 아니라 교묘하게 병태의 심리를 건드린다. 친구들 사이에 따돌림을 당하게 하고, 싸움에서 질 수밖에 없도록 비겁한 방법을 쓰다 가도 자신의 편이 되면 가질 수 있는 혜택들을 슬쩍 느끼게도 해준다.
병태가 창문을 닦는 일을 맡았던 미화 시간, 석대는 병태에게 대놓고 권력을 사용한다. 계속해서 창문 닦는 일을 제대로 못 했다며 보내주지 않는다. 친구들이 모두 하교한 뒤에 어둑해지는 하늘을 보며 홀로 창문을 닦던 병태는 기어이 눈물을 쏟고, 그제야 석대가 나타나 "이만 가도 좋아. 유리창 청소 합격"이라고 한다. 이날 이후로 병태는 석대에게 복종하는 삶을 살게 된다.
최 선생과 김 선생 그리고 아이들
석대의 권력 아래에서 담임 선생님의 존재는 무용했다. 석대는 선생님들께 칭찬 받는 리더십 있는 학생일 뿐이었고, 담임을 편하게 해주는 일 잘하는 반장일 뿐이었다. 병태의 고발은 선생님을 골치 아프게 하고, 학급을 혼란스럽게 하는 어리석은 일이 될 뿐이었다. 최 선생의 묵인에 편승한 석대의 권력은 거의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6학년이 되고, 새 담임 선생님이 오며 학급의 상황은 달라진다. 엄석대가 반장 선거에서 몰표에 가까운 표를 받은 것을 수상하게 생각한 김 선생이 병태를 불러 석대의 비행을 폭로하게 한 것이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굳건했던 석대의 권력은 몰락의 길을 걷는다. 선생님은 석대의 권력 아래 순응하던 아이들을 향해 일침을 가한다.
너희들은 당연한 너희들의 몫을 뺏기고도 분한 줄 몰랐고, 불의한 힘 앞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선생님은 학급의 아이들을 향해 이런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 만들 세상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고까지 말한다. 이 시대 아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새 담임인 김 선생의 무자비한 체벌도 논란의 여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나가 토론 모드로 들어가면 그의 개혁이 민중이 주도하는 개혁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개혁이었기에 영웅주의를 보여줄 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권력, 일그러진 영웅의 처단이라는 명목 만으로도 어린 독자에게 김 선생의 존재는 충분히 의미 있다. 병태는 그렇게 오랜 시간 입을 다물고 석대의 권력에 복종했던 급우들이, 김 선생의 한마디에 봇물 터지듯 석대를 비난했던 그날의 모습을 이렇게 떠올린다.
나는 아무래도 느닷없는 그들의 정의감이 미덥지 않았다....(중략)... 내 눈에는 그 애들이 석대가 쓰러진 걸 보고서야 덤벼들어 등을 밟아 대는 교활하고도 비열한 변절자로밖에 비치지 않았다.
소설과 아동 문학의 경계
결론부터 말하자면 동화, 청소년 소설, 소설을 구분하는 경계를 명확하게 말하기는 힘들다. 장르의 종류라기보다는 독자층과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구분일 뿐이다. 연속선상에 흐르는 색의 옅음과 짙음에 가까운 차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연령 구분은 독자를 안내하는 방법일 뿐 문학적 가치를 논하는 기준이 아니기에 명확한 구분을 제시하는 것도 어폐가 있다.
그렇다면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보는 시선도 조금 넓어져야 할 것이다. 그림책의 독자층을 '0세부터 100세까지'까지라고 일컫는 것처럼, 아동 문학을 향한 시선도 조금 더 열려야 할 것이다.
출간된 지 40년이 가까워진 작품을 다시 읽으며 세계 명작이 아닌 우리 문학의 여러 작품도 명작의 반열에 올려 시대와 세대를 막론하고 읽히길 바라게 된다. 필독서란 이유로 아이들에게 세계 명작을 읽힐 때 우리 문학 속에 숨겨진 보석들을 가려내어 읽히는 정성도 필요할 것이다. 어른들이 함께 읽고 감동하는 좋은 아동 문학도 더 많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