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반려동물 경매장 폐지를 핵심으로 한 이른바 '한국형 루시법'이 발의되면서 반려동물 생산·유통 구조를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법안은 현재의 유통 체계가 구조적으로 학대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를 바로잡기 위한 개편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반려동물 산업계에서는 시장 혼란과 산업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영국 전신과는 다른 '한국형 루시법'... 핵심은 경매장 중심 유통 구조

▲기자회견2025년 11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동물단체 ‘루시의 친구들’이 반려동물 경매장 폐지를 골자로 한 ‘한국형 루시법’ 발의 환영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루시의친구들
한국형 루시법이라는 명칭은 2022년 경기도 연천의 한 허가 번식장에서 구조된 개에게 붙여진 이름 '루시'에서 비롯됐다. 당시 '루시'는 질탈로 인해 자궁이 빠진 채 방치되었고, 구조 후에도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이 사건은 영국에서 평생 번식장에 갇혀 지내다 구조된 개 '루시'의 사례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시민사회의 공분을 불러일으켰고, 동물단체들은 "제2, 제3의 루시가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구조적 문제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며 법안 이름에 루시를 차용했다.
영국에서 2020년 시행된 원래의 루시법은 업계에서는 '브리더'라고 불리는 번식업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해 제3자 판매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국에서는 이미 전문 브리더 중심의 직거래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제도가 자연스럽게 도입될 수 있었다.
반면, 한국은 브리더 직거래 문화가 거의 존재하지 않고, 번식장과 펫숍 사이를 연결하는 핵심 고리가 '경매장'이라는 점에서 구조가 전혀 다르다. 김영환 카라 정책국장은 "현재와 같은 형태의 반려동물 경매장은 세계적으로 오직 한국에만 존재하는 제도"라고 설명하며 한국형 루시법이 영국 모델과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강조했다.
천 개가 넘는 번식장이 독자적인 판매 경로를 갖지 못한 채 소수의 경매장에 의존하는 정도가 높아지면서, 업계 전반이 경매장의 운영 방식에 따라 구조적으로 움직이는 상황이 형성됐다는 것.
동물단체 '루시의 친구들'은 경매장이 반려동물 유통 구조에서 독과점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경매 구조가 유행 품종의 대량 생산을 유도할 뿐만 아니라 무허가 번식 동물의 신분 세탁 창구로 기능하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경매장 18곳이 시장 좌지우지한다"
김영환 국장은 한국 경매장 구조의 문제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수수료 기반의 경매 시스템은 높은 거래량을 유지해야 수익이 나는 구조이기 때문에 번식장에 과잉 생산 압박을 가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구조는 열악한 환경에서의 대량 생산을 반복적으로 만들어 낸다.
둘째, 소규모로 윤리적 번식을 하거나 소비자와 직접 거래를 시도하는 브리더는 산업계에서 사실상 배제되며, 경매장 체계가 유지되는 한 윤리적 브리더 모델이 성장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셋째, 전국 각지에서 경매가 거의 매일 열리기 때문에 개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하더라도 경매장에서 물건을 떼어 파는 방식으로 펫숍을 쉽게 창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펫숍 난립, 관리 부실, 질병 확산, 소비자 피해가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 국장은 "현행 법령에 따라 지자체가 번식장을 매년 점검하게 되어 있음에도 5~6년 이상 사용된 뜬장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 많다"며 단순한 규제 강화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구조를 유지하는 핵심 고리가 경매장이기 때문에, 구조 개편 없이는 어떤 규제도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위성곤 등 12인 국회의원, 동물보호법 개정안 19일 발의

▲루시의친구들 관계자가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참석자들은 “반려동물 경매장 폐쇄가 구조적 학대를 끊는 첫 단계”라며 입법부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 루시의친구들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9일 한국형 루시법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에는 반려동물 투기 목적 거래 및 경매 금지, 동물판매·수입업의 거래 가능 월령을 6개월령으로 상향, 동물생산자와 구매자의 직접 거래 가능 월령을 2개월령으로 명확화, 동물판매 시 구매자에게 직접 전달 의무 부여, 경매를 통한 거래 알선 및 중개 금지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루시의 친구들'과 동물단체 관계자들은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해당 법안을 환영하며 "구조적 학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입법적 대응책"이라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에서 단체들은 최근 몇 년간 이어진 생산·유통 현장 사례를 언급하며 경매장 폐지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2024년 부산 강서구에서 25년 동안 무허가로 수천 마리의 동물을 생산한 번식장이 적발된 사건과, 2025년 인천 강화에서 불법 시설물에 300여 마리의 동물을 가두고 번식에 이용한 사례, 그리고 2022년 연천 루시 사건 등은 반복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동물단체는 또한 전국 18개 경매장 중 한 곳에서만 월 평균 2500마리의 반려동물이 거래되고 있으며, 낙찰되지 않은 개체가 다시 번식에 이용되거나 폐견으로 전락한다고 밝히며 "과잉 공급 구조를 근본적으로 손보지 않는 한 개선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업계 "펫샵 대량 폐업 우려"… 엇갈린 전망
하지만 산업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한국펫산업연합회 이원호 사무국장은 "한국에서는 브리더와 직거래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경매장을 폐지하면 펫숍의 대량 폐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와의 구조적 차이도 강조했다. 영국에는 수만 명의 전문 브리더가 도심 인근에 위치해 직거래가 용이하지만, 국내 번식장은 산속 등 접근성이 낮은 지역에 있어 소비자가 직접 방문해 입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연합회는 법안이 시행될 경우 분양 가격 폭등, 입양 접근성 저하, 번식장과 펫숍의 연쇄 폐업, 산업 축소 등 우려를 제기하고 있으며, 중국 등 해외에서의 수입견 의존도가 급격히 높아질 위험도 있다고 지적한다.
영국 루시법에서 이름을 빌려왔지만, 한국형 루시법은 한국 반려동물 유통 구조의 핵심인 '경매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이번 법안이 경매장 중심의 유통 구조를 바꿀 수 있을지, 아니면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