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북 단양군 도담삼봉에 있는 정도전 동상. ⓒ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조선왕조를 창업한 사람은 이성계지만 설계자는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이다. 그는 새 왕조를 개창하면서 <조선경국전>과 <경제문집> 등을 지어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존중하는 민본정치의 지침을 제시하고, 한양의 궁궐과 종묘, 대·소문, 그리고 거리 이름을 짓는 등 많은 역할을 하였다.
그는 신 도읍의 토목공사가 시작되자 <신도가>라는 노래를 지어 공역자들의 피로를 들어주고 흥을 북돋우었다.
때는 양주고을이여
시위에 신도 경승이 샀다
장다운재 담금 경갓 다오저
성주 만년하사 만민이 향락이샷다
아으 다롱지리
앞은 한강수여, 뒤는 삼각산이여
덕중하신 강산 좋으매
만세 누리소서.
한국인이면 누구라도 찾는 창경궁을 설계한 정도전의 글이다.
경복궁
신(臣)이 고찰하여 보니 궁궐은 임금이 신하로부터 국정에 대한 일을 듣고 보는 곳입니다. 온 세상이 우러러보는 곳이므로 신하와 백성들이 함께 만드는 집입니다. 그러므로 그 제도(制度)는 웅장하게 하여 존엄함을 보이고, 그 명칭은 아름답게 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중국에서는 한(漢)·당(唐)시대 이래로 궁전의 이름을 간혹 이어 받기도 하고 또는 새로 만들기도 하였으나, 모두 사람들로 하여금 우러러보게 하고 감동을 느끼게 하는 것에 대하여서는 그 뜻하는 바가 한가지였습니다.
전하(殿下:이 태조)께서 왕위에 오르신 지 3년째 되던 해에 한양(漢陽)으로 천도하시어 먼저 종묘를 세우시고 다음으로 궁궐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1395년) 10월 4일에 전하께서는 몸소 곤룡포와 면류관을 착용하신 뒤에 돌아가신 선왕후(先王后:목(穆)·익(翼)·탁(度)·환(桓)과 그 후비들)를 새 종묘에 모시고, 새로 만든 궁궐에서 여러 신하와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는 조상신(祖上神)의 은혜에 감사하고 후손들의 복록을 빌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날 술이 세 순배 돌아간 뒤에 전하께서 신, 도전에게 이르셨습니다.
"지금 이곳에 도읍을 정하여 종묘에 제사드리고 새 궁궐을 준공하여 군신들과 함께 여기서 잔치를 베풀게 되었다. 그러니 경은 마땅히 이 궁궐의 이름을 지어서 이 나라와 함께 그 아름다운 이름이 영원히 없어지지 않게 하라."
신은 이 명령을 받고 삼가 손을 모아 절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시경>의 '대아'편에 실려 전하는 "술에 실컷 취하고 덕(德)에 배가 불렀다. 훌륭한 사람, 만년 동안 큰 복(景福)을 누리리라."하는 노래에서 '경복(景福)'이라는 글자를 따 와서 새 궁궐의 이름으로 삼자고 청하였습니다. 경복궁은 전하와 전하의 자손들이 만년 동안 태평하게 누릴 곳이며, 사방의 신민(臣民)들이 역시 영원히 이 궁월을 보며 숭앙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공자께서 편찬한 <춘추(春秋)>를 보면 백성의 힘을 중히 여겨 건축하는 일을 삼가라고 하였습니다. 어찌 임금이 되어 부질없이 백성의 노력을 빌려 자신의 안락만을 취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하오니 앞으로 이 넓은 궁궐에 거처하실 때에는 빈한하게 사는 선비들을 비호해 줄 것을 생각하시고, 여름이 되어 집안에 서늘한 기운이 들거든 어떻게 하면 온 백성에게 이 서늘한 기운을 골고루 베풀까를 생각하십시오. 그렇게 만백성과 신하들에게 은혜를 베풀 것을 생각하신다면, 그들이 결코 임금을 봉양하는 마음을 저버리지 않을 것임을 아울러 여기에 기록해 둡니다. - <삼봉집(三峯集)>
덧붙이는 글 | [붓의 향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